성도의 세상읽기/칼럼

[황인희의 역사 산책]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우리 역사상 최초의 선거

성북동 비둘기 2024. 5. 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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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10일 – 5‧10선거 실시
건국 당시의 국회의사당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저절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다. 해방된 후에도 제대로 된 나라를 세우기 위해 수많은 진통을 겪었고 수많은 사람이 각고의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비로소 만들어진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을 자주 독립국으로 만들기 위한 중요한 법적 절차는 1948년 5월 10일 우리 역사상 처음 실시된 국민 총선거로부터 시작되었다.

 

1947년 11월 14일 유엔 총회에서 한국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의가 채택되었다.

 

- 남북한 전 지역에서 유엔 감시 아래 인구 비례에 의한 자유 선거로 국회를 구성한다.

 

- 그 국회가 남북에 걸친 통일 정부를 수립한다.

 

- 선거를 준비하고 감시하기 위해 유엔한국임시위원단(유엔위원단)을 구성한다.

 

다음 해 1월 유엔 총회 결의에 따라 유엔위원단이 서울에 왔다. 하지만 유엔위원단은 소련군의 거부로 북한에 들어가지 못했다. 2월 말, 유엔 소총회는 남한에서만이라도 총선거를 실시하도록 결의하였다.

 

남한의 좌익은 유엔위원단의 활동을 막기 위해 격렬한 파업과 시위, 폭동을 일으켰다. 변전소를 파괴하고 전깃줄을 잘라버렸으며 기관차를 부숴 열차 운행을 막았다. 농민들은 경찰지서를 습격하였고 학생들은 동맹 휴학하였다. 이런 사태가 2주간이나 계속되어 100여 명이 사망하고 8,000여 명이 체포되었다. 하지만 이승만 등 우익 진영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유엔위원단은 1948년 5월 10일 이전에 남한에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했다.

 

선거를 치르기 전에 미 군정은 국회의원선거법을 발표하였다. 이 법은 제1조에서 “국민으로서 23세에 달한 자는 성별, 재산, 교육, 종교의 구별 없이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음”을 선언했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법률에 의해 자유롭고 평등한 정치적 주체로서 ‘국민’의 범주가 만들어졌고 그 국민은 보통‧자유‧직접‧비밀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우익 진영, 미 군정, 유엔위원단은 최선을 다해 총선거를 지원했고 그 결과 5‧10선거는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인 이승만 대통령

 

투표가 무효로 된 지역도 있었지만 전국 대부분의 유권자는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유엔위원단의 자료에 따르면 총유권자 대비 투표율이 71.6%나 되었다. 이는 우리 국민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선거 결과 198명의 국회의원이 당선되었다.

 

5‧10선거는 전국 200개 선거구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중 제주도 두 개 선거구 주민들은 투표하지 않고 한라산으로 올라갔다. 좌익이 이끄는 인민 유격대는 선거인 명부를 빼앗고 투표소를 습격해서 그곳에서는 선거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 두 선거구의 국회의원은 1년 뒤 선출되었다.

 

5‧10선거에서 당선된 의원들은 5월 21일에 헌법을 만들기 위한 국회를 열었다. 이 국회의 임기는 2년이었는데, 헌법을 만들고 정부를 세우는 것이 이 국회의 임무였기 때문이다. 국회의장에는 이승만이 뽑혔고 열띤 논쟁 끝에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정해졌다. ‘대한민국’은 임시 정부 이름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 아니라 국민의 손으로 새로 뽑은 국회의원들이 다수결로 정한 ‘새 이름’이다.

 

정부의 형태를 결정하는 문제도 녹록지 않았다. 국회의 의석을 많이 차지한 한민당은 내각책임제를 주장했다. 그런데 이승만은 대통령중심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신생국에서는 강력한 정치적 지도력이 발휘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이다. 이승만은 헌법기초위원회에 나아가 위원들을 설득하였다. 헌법기초위원회는 이승만의 뜻을 받아들여 정부 형태를 대통령중심제로 정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회가 뽑도록 정했다.

대한민국이 자주 독립 국가로 탄생하는 본격적인 과정은 5‧10선거로부터 시작되었다.

 

 

진통 끝에 7월 17일, 드디어 건국 헌법이 탄생했다. 건국 헌법은 제1장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라고 밝혔다. 이 짧은 문장에 중요한 의미들이 담겨 있다. 우선 우리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이라는 점과 우리나라는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이며 국민이 뽑은 대표자가 통치하는 ‘공화국’이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제헌 이래 지금까지 헌법이 아홉 차례 고쳐졌지만 이 제1장 제1조의 글귀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건국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라고 선언함으로써 통일의 의지를 확실히 밝혔다. “모든 국민은 법률 앞에서 평등하며 성별,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서 정치적, 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는다. 모든 국민에게는 신체의 자유, 거주와 이전의 자유, 신앙과 양심의 자유, 언론 ․ 출판 ․ 집회 ․ 결사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가 보장된다”라는 등의 조항으로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이념을 확고히 하고 있다.

 

이 헌법을 중심으로 1948년 8월 15일, 우리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날 밤 열두 시를 기해 미 군정으로부터 통치권을 넘겨받았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자주 독립 국가가 되었다. 5‧10선거로부터 시작된 대한민국의 건국 절차가 드디어 마무리된 것이다. 

 

황인희 작가(다상량인문학당 대표·역사칼럼니스트)/ 사진=사진작가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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