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의 뼈아픈 역사적 과오
尹정권 몰락하면 포스트 1987년 체제
구축 주도권 좌파에게 넘어가
尹, 정치에서 타이밍 놓친 대가 치르는 중
좌파 가운데 누구와 손 잡는 게 나을까?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패배하자 그 원인을 분석하고 향후 전망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논의가 활발하다. 대부분 근거가 있는 얘기들이지만 그 내용에서는 아쉬움도 남는다. 과연 이런 얘기만 하는 게 맞을까? 이 글은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현재의 정국 진단에서 2%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을 나름대로 채워보려는 노력이다.
1. 윤석열 책임론이 맞는가
지금 분위기는 '윤석열 만능설'에 가깝다. 윤석열 만능설이라고 했지만,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윤석열 씹기 만능설’이다. 윤석열 대통령만 비판하고 윤 대통령에게만 책임을 돌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이다. 과연 그럴까?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윤 대통령의 잘못이라고 지적되는 내용 가운데 정책적인 오류라고 지적되는 부분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국정 운영의 기본 방향에 대한 이의 제기는 그다지 많지 않다. 민주당은 당연히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전반을 비판하지만 실제로 그 비판의 대부분은 정파적 시비일 뿐이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특검을 보면 이 사실이 보다 분명해진다. 김건희 여사 특검, 채상병 특검, 이태원 참사 특검 등이 과연 윤 대통령의 핵심 국정 기조에 관한 이의 제기인가? 그냥 정파적인 이슈이고 국민들의 말초적인 의혹과 분노를 자극하는 내용이라고 봐야 한다. 이들 사안에서 윤 대통령의 실수나 착오가 있었다고 해도 그 문제를 지금처럼 정권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로 몰아가는 게 맞는 접근인가?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정략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이너스 정치에 대한 지적이다. 이준석, 안철수, 나경원 등 대선 필승조를 대통령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뼈아프고 타당한 문제 제기라고 본다. 하지만 정략은 말 그대로 수단의 문제이다. 잘못된 수단과 방법론을 선택했다는 지적은 필요하지만 그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이 문제가 정권의 본질은 아니지 않은가. 어떤 경우에도 이 본질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권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2016년 촛불과 박근혜 정권 탄핵에 이은 문재인의 집권 그리고 조국 사태와 박원순 오거돈의 성추문 등에 대한 총체적인 국민적 심판의 결과라는 점이다. 좌파 패권에 대한 지지가 착오였다는 국민적 각성의 결과라고 해도 좋다. 지금 와서 윤 대통령의 정략적 실패가 있다고 해서 윤 정권의 이런 역사적 의의가 부정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윤석열을 비판하더라도 최소한 이런 중심 정도는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넘어선 무차별적인 비난은 우파의 뼈아픈 역사적 과오를 떠오르게 만든다. 바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등 우파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우파의 잔인한 태도를 말한다. 이들 우파 정치 지도자 가운데 현재 정치적으로 살아남은 인물이 누가 있나? 단 하나도 없다.
우파는 자신들의 정치적 위기 탈출을 위해 이전 지도자를 정치적으로 참수형에 처하곤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정희가 이승만을 매장했고 김구를 국부의 위상에 올린 것이다. 이후에도 이런 일은 비슷하게 되풀이됐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우파 진영이 이제 와서 이승만을 복권시키려 노력하지만 잘 먹혀들지 않는 것만 봐도 그 역사적 부채를 청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 우파의 특기는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일시적인 위기 탈출을 위해 훗날 더 심각한 데미지를 불러올 조치를 서슴치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자기 지도자를 자기들이 직접 정치적 단두대에 올려 참수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결국 좌파의 명분을 살리고 스스로의 입지를 극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과오를 계속 되풀이해야 하나?
지금은 1987년 체제가 끝나고 새로운 체제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과도기다. 윤석열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새로운 체제 구축의 주도권을 우파가 쥘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윤석열 정권이 격렬한 저항에 직면한 것도 낡은 체제와 새로운 체제의 충돌이라는 성격이 있다.
윤석열 정권이 몰락하면 포스트 1987년 체제 구축의 주도권은 좌파에게 넘어가게 된다. 사실 문재인 정권이 좌파 주도의 포스트 1987 체제 구축을 시도한 바 있다. 개헌안을 준비했던 것이 그 사례이다. 여러 가지 한계 때문에 포기했지만 이번에는 더 강력하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일단 여기에서 좌파가 개헌 작업에 승리하게 되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이승만이 건국하고 박정희가 발전시킨 나라가 이제 김대중이 건국하고 노무현 문재인이 정체성을 다진 나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좌파가 주도하는 포스트 1987 체제가 완성되면 우파가 그런 구조를 다시 뒤집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한민국 내부의 구조와 국제 정세의 변화가 맞물리기 때문이다. 이씨조선 500년의 그 비참한 세월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고 봐야 한다. 이 문제가 현재 상황의 핵심이다.
윤석열의 여러 가지 문제를 외면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그 문제들을 놓고 정권을 흔들기에는 상황이 너무 위중하다. 윤 대통령을 비판할 때 비판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이제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그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판단일 뿐이지만 윤 대통령은 의외로 학습 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2. 영수회담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필자는 2022년 연말부터 몇 차례에 걸쳐 윤석열 대통령이 영수회담에 나서라고 건의한 바 있다([주동식 칼럼] 윤석열 대통령이 영수회담 먼저 제안하라).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해 듣기로는 윤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완강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해는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입장에서 범죄 피의자와 공식 대화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도 문제고, 특히 이재명의 범죄 혐의를 두고 정치적 거래가 있을 것이라는 오해를 사는 것도 꺼려졌을 것 같기는 하다. 특히 평생을 법치의 영역에서 일해온 윤 대통령의 배경도 이런 판단을 더욱 강화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는 본질적으로 법치를 뛰어넘는 영역에 존재한다. 기존의 법치가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을 다루는 영역이 정치라는 얘기이다. 당연히 법치의 관행과 질서가 작동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통령이 임기 초에 이재명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랬다면 국정 운영도 보다 원활했을 것이고 이번 총선 결과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본다.
현재 대한민국 1987년 체제의 승자이자 오너는 좌파 연합(호남-주사파 연대를 중심으로 하는)이다. 우파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우파가 장악한 영역은 극히 협소하다. 말 그대로 행정부 권력 그것도 일부만 접수했을 뿐이다. 윤 대통령의 처지는 비유하자면 물 위에 뜬 기름 같은 신세이다. 굳이 계량화하자면 우파의 영역은 현재 대한민국의 5% 내외라고 본다. 나머지는 모두 좌파가 장악하고 있다. 국회 절대다수 의석은 그 일부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을 차질없이 운영하려면 반드시 좌파의 협력이 필요하다. 좌파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와는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협력의 대상이다. 좌파 가운데 누구와 손을 잡을 것인가. 좀더 적나라하게 말해서 문재인과 이재명 가운데 누가 좀더 협력 파트너로 적절한가 하는 얘기이다.
필자는 당연히 이재명이 협력 파트너여야 한다고 봤다. 이 대목에서 우파 진영 대부분이 반발했던 것 같다. 그들의 눈에 이재명은 파렴치한 범죄자요 인격 파판의 막장 인생이요 무엇보다 반(反) 대한민국 성향의 주사파이기 때문이다. 이런 진단 대부분에 필자도 동의한다. 다만, 이재명의 주사파 성향에 대해서는 좀 다르다. 주사파 성향이라는 것은 맞을지 몰라도 이재명의 본질을 보다 강하게 규정하는 것은 다른 요소라고 봤던 것이다.
이재명의 그 본질을 필자는 ‘생계형 잡범’이라고 표현했다. 주사파 이념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은 본인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 이상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1980년대 거대한 좌파 이념의 광풍이 몰아치던 때 그 이념의 세례를 받은 보통 좌파들과는 이재명의 성향 자체가 다르다는 얘기이다. 그런 관점에서 문재인은 훨씬 악성 주사파라고 봐야 한다.
윤석열-이재명 관계에서 대통령의 임기 초에는 당연히 윤 대통령이 칼자루를 쥐고 있었다. 이재명이 계속 영수회담을 제안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영수회담을 통해 이재명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일반적인 국정에 대한 협력을 포함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까지. 그게 과연 무엇일까. 필자가 영수회담을 건의한 본질적인 목적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것은 호남과 함께 민주당의 핵심을 장악하고 1987년 체제의 주인 노릇을 해온 반(反) 대한민국 세력 주사파와의 절연이었다. 말도 안되는 요구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는 이념 따위는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이재명의 성향이 오히려 하늘이 준 기회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 비해 문재인은 훨씬 더 이념 지향적인 성향이 강하다 거래가 어렵다고 봤다.
당연히 이재명이 이런 시도를 거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이런 제안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1987년 체제 성립 이후 우파 진영이 이런 이념 공세를 취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의 주류 이념을 담지한 진영이 항상 이념적으로 주눅 들어서 좌파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이런 이념적 열세는 계속 악화됐다. 만일 윤석열이 민주당에게 주사파와의 절연을 요구하고 이재명이 이런 공개 제안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본인과 나아가 민주당 자체가 반(反) 대한민국 주사파 세력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백하는 결과가 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정치 공세의 소재가 된다.
필자는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에 대해 ‘정치인은 사법 절차로 죽이지 못한다’고 되풀이해 얘기해왔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나. 이재명을 구속시키지도 못했고 결국 이재명의 정치적 체급만 키워줬다. 설혹 구속시켰다 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재명을 김대중급 거물 정치인으로 만들어주는 결과가 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이재명 구속에 실패한 것이 윤 대통령을 도와준 결과라고 봐야 한다. 그 대신 영수회담을 통해서 이재명을 견인하거나 혹은 그 정체를 폭로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이제 칼자루는 윤 대통령이 아닌 이재명이 쥐고 있다. 영수회담의 주제도 과거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 영수회담의 핵심 주제는 국정 운영을 둘러싼 협치겠지만 더욱 근본적인 이슈는 권력 분점일 수밖에 없다. 이제 윤 대통령이 가진 권력을 상당 분량 이재명과 나눠 갖지 않으면 정국은 쉽사리 안정되지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정치에서 타이밍을 놓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다만 어느 경우에라도 정치는 줄다리기의 성격을 갖는다. 상황이 바뀌었지만 윤 대통령도 항상 이재명에게 들이밀 카드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 카드의 하나로 민주당과 이재명의 이념적 지향에 대한 문제 제기는 유효하다. 반(反) 대한민국 주사파와의 척결은 언제라도 요구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이다.
이와는 별개로 윤 대통령은 정책 이슈와 정치 이슈를 구분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치 이슈 즉 채 상병 특검이나 이태원 특검, 김건희 여사 특검 가운데 한두 개는 양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정책 이슈 즉 전국민 25만원 민생 지원금이나 노란 봉투법 등은 결코 양보해서는 안된다. 이 문제를 두고 이재명과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국민들을 직접 설득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치와 정책 두 가지 영역을 구분해서 접근하는 방식으로 대통령의 진정성을 인정받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前 국민의힘 광주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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