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세상읽기/칼럼

[김용삼 칼럼] 헌법 전문(前文)에 넣겠다는 ‘5·18 정신’이 뭐지?

성북동 비둘기 2024. 5. 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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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가 개원되면 가장 먼저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이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할 것 같다. 의석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범야권을 비롯하여 대통령과 여당인 국민의힘도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상황이니 실현 여부는 국회의원들의 의지에 달렸다

#. 정체성(identity)

 

이번 4·10 총선 결과를 접하면서 대체 국민의힘이란 정당의 정체성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가진 유권자는 필자 한 사람뿐만이 아닐 것이다.

 

정체성(identity)이란 나는 누구인가? 나는 그들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를 가름하는 기준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된 존재라고 설명되어 있다. 쉽게 풀이하면 한 국가(혹은 조직·정당·단체)의 근본 성격이나 가치·제도·정책 등에 대해 구성원이 공유하는 믿음과 일체감을 뜻한다. 국가나 조직 구성원이 공유하는 믿음과 일체감이 존재해야만 그 국가·조직의 존립이 가능하다.

 

해당 국가의 정체성은 국민 합의에 기초한 최고의 문서인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 정당이라면 당헌·당규가 헌법과 비슷한 존재일 것이다.

 

#. 국민의힘의 당헌을 들여다 보니

 

그렇다면 국민의힘이 무엇을 지향하는 정당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당헌을 찾아보았다. 국민의힘 홈페이지에 들어가 당헌과 강령을 클릭하니 2020 9 2일 전면 개정한 모두의 내일을 위한 약속이 떠오른다. 주요 부분을 소개한다.

 

우리는 모든 국민이 공정하고 다양한 기회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임을 깊이 인식하고, 입시와 취업, 병역 등 우리 사회 전반에서 반칙과 특권이 허용되지 않도록 한다. 국민 누구나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를 보장할 것이며, 개인의 존엄과 창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제도를 마련한다.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여 경제민주화를 구현하고, 사회적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며, 편법과 부정부패에 단호히 대처하여 공동체 신뢰를 회복한다.

 

우리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하며 진영 논리에 따라 과거를 배척하지 않는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 운동 등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산업화 세대의 조국 근대화 정신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히 한 228 대구 민주운동, 38 대전 민주의거, 315 의거, 419 혁명, 부마항쟁, 518 민주화 운동, 610 항쟁 등 현대사의 민주화 운동 정신을 이어간다.”(밑줄은 필자가 친 것이다)

 

당헌과 강령을 보는 순간 아찔해진다. 국민 기본소득, 경제민주화? 5·18이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히 했나? 보수우파 정당이라면 당연히 포함되어 있어야 마땅한 건국정신은 어디로 갔을까? 대체 이 정당이 무엇을 지향하는 정당일까?

 

#. 김영삼과 민주자유당

 

한국의 보수우파 정당은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으로 뿌리가 이어져 왔다. 오늘날 보수우파를 자처하는 국민의힘의 근원은 1990 2 9일 출범한 민주자유당이 신한국당을 거쳐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이 그 뿌리다.

 

여소야대 정국에 시달리던 노태우는 김영삼, 김종필과 손잡고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켰다.

 

1990 1 22일 노태우 대통령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민주정의당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은 민주 발전과 국민 대화합, 민족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 오로지 역사와 국민에 봉사한다는 일념으로 아무 조건 없이 정당법의 규정에 따라 새로운 정당으로 합당을 발표했다. 민주자유당의 출범이다.

 

3당 합당은 노태우의 말처럼 민주 발전과 국민 대화합, 민족 통합이 목적이 아니라 김영삼의 본심 토로처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집권 일념 때문이었다. 즉 김영삼은 대통령 당선을 위해 잠시 보수우파 위장막을 걸치기로 한 것이다.

3당 합당 후에도 계파 갈등으로 인해 민정계·민주계·공화계는 한 지붕 아래 세 가족이 동거하며 바람 잘 날 없는 형국이었다. 지지층의 차이가 너무 현격한 데서 오는 이질감도 극복하기 힘든 과제였다.

 

3당 합당의 대원칙은 내각제 개헌이었다. 하지만 대권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건 김영삼이 자신의 대권욕을 포기하고 내각제 개헌에 따라줄 것으로 믿은 것은 너무나 순진하고 무식 단순한 착각이었다. 김영삼은 내각제 개헌에 합의한 적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더니, 자신을 대통령 후보로 밀지 않으면 탈당하겠다고 노태우를 겁박했다. 단순한 탈당이 아니라, 평화민주당으로 들어가 김대중을 지지하여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언론계 곳곳에서 암약하던 김영삼 장학생들이 김영삼이 나라를 구할 적임자라고 쌍나팔을 불어댔다. 언론의 위세를 등에 업은 김영삼을 대선 후보로 내세우지 않으면 언론 쿠데타라도 일으킬 기세였다. 민주계라는 소수 세력의 대표였던 김영삼은 다수 세력인 민정계의 반대를 뒤엎고 대통령 후보를 쟁취하는 데 성공했고, 1992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보수우파 정당, 김영삼에게 타살 당해

 

자신의 정부를 문민정부로 선포한 김영삼은 군부통치 시대를 종식시킨다는 명목으로 하나회를 숙청했고, 민족주의 파시즘을 바탕으로 반일 광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취임 초부터 바다·육지·하늘·지하에서 연이어 초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해 국민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소수 계파였던 민주계의 몸집을 불리기 위해 김영삼은 재야세력 및 운동권을 적극 영입하여 몸집을 불렸다. 김영삼은 민중당 핵심 세력을 대거 입당시켜 자신의 우군으로 포진하면서 민정계와 공화계는 소외 세력으로 전락했다. 1995 2 9일 김종필 계파가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면서 3당 합당은 껍데기만 남은 상태가 되었다.

 

이 와중에 1995 6·27 지방선거 참패로 내분 사태가 심화되었다. 대구·경북의 TK 세력 중심으로 반()김영삼 기류가 형성되어 민정계 인사들이 탈당하자 김영삼은 민주자유당을 깨버리고 민주계 중심으로 신한국당을 출범시켰다. 민주자유당이 정치적으로 타살 당함으로써 대한민국에 정치적 세력으로서의 보수우파를 표방하는 정당은 씨가 말랐다.

 

신한국당의 핵심 본질은 민주화로 위장한 좌파였다. 단지, 자신들의 이념적 색채를 위장하기 위해 보수우파를 표방했을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민주화란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자신들 패거리가 돈과 권력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이런 일을 위해 머릿수가 부족하자 민중당 세력을 끌어들여 우군화했다.

 

#. 노태우의 입을 막아라

 

김영삼은 노태우로부터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제공받아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야당 대표 김대중도 노태우에게 상당액수의 비자금 받아 챙겼다. 그런데 3당 합당의 판이 깨지면서 두 사람은 공멸의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만약 노태우가 자신들에게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제공했고, 자신들이 이 자금을 받아 챙긴 사실을 발설하면?

 

김영삼 정권은 단숨에 붕괴되고, 5·18 민주화의 영웅 김대중은 살인마 집단의 괴수에게 뇌물을 받은 파렴치범으로 몰리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시급히 노태우 입에 재갈을 물려야 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노태우의 입이 언제 열릴 것인지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던 1995 8 1, 김영삼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서석재 총무처장관이 기자들에게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비자금 4천억 원을 100억 원 단위로 쪼개 시중은행 40개 차명계좌에 분산 예치해놓았다라는 경천동지할 내용을 흘렸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런 해괴하고 황당한 얘기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잘 참는 나도 이젠 못 참아라며 반격에 나섰다. 노태우가 강력하게 치고 나오자 화들짝 놀란 김영삼은 서석재 장관의 발언을 해프닝으로 간주, 그를 장관직에서 해임하는 것으로 간신히 미봉했다.

 

한쪽에선 노태우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그를 12·12 5·18로 엮어 처벌이 가능한지 법적 검토를 극비리에 지시했다. 그 결과 공소시효 문제로 현행법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여 특별법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를 눈치 챈 김윤환 민자당 대표는 1995 10 18일 국회 정당대표 연설에서 초법적 소급 입법을 반대한다고 정면에서 치고 나왔다.

 

 

#. 김대중의 물귀신 작전

 

김윤환 대표 연설 다음날 박계동 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노태우 비자금 4천억 원 사실을 폭로하면서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켰다. 박계동 의원의 노태우 비자금 발언 내용은 1995 10 19일 서석재 장관 발언과 동일한 내용이었다.

국회에서 노태우 비자금 4천억 원을 폭로한 박계동 의원.

 

서석재 장관 발언 때는 그의 해임으로 불길을 덮었지만, 이번엔 파괴력이 심각했다. 박계동 의원의 폭로 9일 후인 10 27일 노태우는 재임 중 통치자금 5천억 원을 조성했고, 남은 돈이 1700억 원이라며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발표했다.

 

그런데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에스컬레이트 되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직전, 중국을 순방 중이던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급거 귀국한 것이다. 그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14대 대선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비자금 20억 원을 받았다라고 이실직고를 해버린 것이다.

김대중 총재가 중국에서 급거 귀국하여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비자금 20억 원을 받았다고 자백한 내용을 보도한 TV 뉴스 화면.

 

노태우에게 비자금 수수는 김대중의 정치 생명이 끝장날 수도 있는 핵폭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은 왜 묻지도 않았는데 20억 비자금 수수 사실을 자백하고 나선 것일까?

 

김대중이 노태우 비자금 20억 원 수수 사실을 자백하자 이연석 의원(민자당 부대변인) “5·18 광주학살 주역이라고 비난했던 노 씨로부터 돈 받은 건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본 헌병에게 돈 받은 것이나 다름없어라며 날선 공격을 가했다

 

사실 김대중의 이실직고는 물귀신 작전의 일환이었다.  나는 20억 원 외에 노태우에게 단 한 푼도 안 받았다. 김영삼 대통령과 관련한 점 명백히 밝혀라라고 역공을 가한 것이다. 이 발언의 참뜻은 야당 대표인 내가 이 정도 액수를 받았는데, 노태우 아래서 대통령 후보가 되어 당선된 김영삼 너는 얼마나 엄청난 돈 받았겠는가. 검찰이 조사하면 김영삼 당신도 무사하지 못하니 알아서 막으라라는 강력한 시그널이었다.

 

김대중 대표가 김영삼 대통령의 대선 자금을 시비 걸고 나서자 강삼재 민자당 사무총장은 김대중은 노태우로부터 20억 원보다 더 많은 비자금을 받았다라며 ’20+α을 제기하고 나섰다. 김대중도 이에 맞서 김영삼은 노태우 자금 받아 대선 치른 공범이라고 날카롭게 응수했다. 결국 노태우 비자금은 김영삼의 심장을 겨냥한 칼날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 5·18 특별법은 정치자금 수렁 탈출 위한 ()의 한 수

 

만약 노태우 비자금을 성역 없이 추적하면 김영삼 대선자금은 물론 김대중이 노태우에게 받은 ‘20+α의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날 위기에 처했다. 검은 자금으로 얼룩진 김영삼·김대중의 정치적 생명에 대한 공멸의 시한폭탄이 작동을 개시한 것이다. 그 시한폭탄의 기폭장치 쥐고 있는 사람은 노태우였다.

 

노련한 정치적 고수들이 당신들이 노태우에게 받은 검은 돈의 실체 밝혀라라는 불같은 여론을 한 방에 잠재울 핵폭탄 급 이슈가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견원지간이면서도 위기가 닥치면 한 몸이 되는 사이였다. 두 사람을 정치적 수렁에서 탈출하여 반격의 결정타를 날릴 회심의 카드가 5·18 특별법이었다.

 

김영삼은 ‘5·18 특별법을 제정하여 노태우·전두환을 군사 반란, 광주시민 학살, 비자금을 조성하여 사욕을 채운 악덕 파렴치범으로 몰아 간단히 구속해버렸다. 전두환·노태우를 악덕 파렴치범으로 몰아 자신들을 겨냥한 정치자금 시한폭탄의 기폭장치를 제거했고, 소위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을 통해 좌익을 지지층으로 끌어안는 부수효과도 덤으로 거두었다.

 

5.18 특별법 제정을 알리는 언론보도.

 

김대중은 호남 주민들의 숙원이던 ‘5·18 특별법을 간단히 쟁취하는 해결하는 조연 역할을 훌륭히 수행함으로써 노태우 비자금 20+α로 추락했던 명예를 회복하고 호남 맹주 자리의 수성에 성공했다.

 

김영삼은 자신을 향한 대선자금의 칼날을 부러뜨리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동원하여 5·18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 법으로 전두환·노태우를 잡아넣어 비자금의 칼날을 피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합법적인 수사행위인 12·12를 군사반란으로 둔갑시키는 역사적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5·18을 성역으로 만들어 대한민국 정체성 파괴에 결정적인 변곡점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한국인들은 이런 부류의 인간들을 민주화 영웅으로 둔갑시켜 추모하고 있다.

 

#.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위한 개헌 카운트다운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자는 의견은 1987 6월 항쟁 이후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처음 제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진 2017년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대선 공약으로 5·18정신 헌법 수록, ‘임을 위한 행진곡 공식 기념곡 지정을 공약했다.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대선 후보 홍준표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5·18 정신의 헌법 수록 문제에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2020 8 19,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당 지도부와 함께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았다. 이들은 방명록에 “5·18 민주화 정신을 받들어 민주주의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썼다. 이어 무릎을 꿇고 너무 늦게 찾아왔다. 벌써 백 번 사과하고 반성했어야 마땅한데, 이제야 그 첫걸음을 뗐다라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김종인은 자신이 신군부가 설치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재무 분과 위원으로 참여한 사실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했다.

 

이날 국민의힘은 5·18 운동을 부정하는 극우 세력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광주 민주화 운동이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의 시발점이란 점을 분명히 선언했다. 이쯤 되는 정당이다 보니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인 2021 11, “5·18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정신이고, 우리 헌법 가치를 지킨 정신이기 때문에 헌법이 개정될 때 당연히 헌법 전문에 올라가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지난해 5 15일 유승민 국민의힘 의원은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원 포인트든 대폭 개헌이든 똑같은 절차를 밟아야 하는 만큼 진정성 있는 개헌안에 빨리 합의할 수 있다면, 그 개헌에 5·18 정신을 포함시키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화답하듯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5 17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고 민주당의 공약이기도 했던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지킬 때가 됐다 원 포인트 개헌을 내년 총선에 맞춰 할 수 있도록 정부·여당이 협조해 달라고 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광주를 방문, "헌법 전문에 5.18 정신 수록"을 밝혔다.

 

지난 1 4일 광주를 방문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우리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이 들어가면 헌법이 훨씬 더 풍성해지고, 선명해지고, 자랑스러워질 것 같다고 선포한 바 있다. 당의 핵심 주역들의 5·18 입장이 이렇게 선명하다 보니 자신들이 지역구에 공천을 한 도태우 변호사의 5·18 관련 발언은 당연히 망언으로 규정되어 공천 취소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제 22대 국회가 개원되면 가장 먼저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이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할 것 같다. 범야권이 의석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하고 있고, 대통령을 비롯해 여당도 동의하는 상황이니 실현 여부는 국회의원들의 의지 문제다. 이를 현실화하려면 개헌이 필수적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국민의힘은 보수우파 정당이 아니라 김영삼이 보수우파 정당을 타살시킨 후 급조한 좌파 2중대 정당이다. 이런 이념 구도하의 국회에서 개헌을 추진하게 된다면 그들은 과연 5·18 정신만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원 포인트 개헌으로 만족할까?

 

그런데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대체 5.18 정신이 뭔데 이 야단일까?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hanm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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