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성경인물설교(18) 사무엘 / 박영철 목사

성북동 비둘기 2023. 6. 2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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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 여러 사람의 사사가 등장하여 일시적으로 치리했으나, 그들 대부분은 인격이나 자질이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이끌어 나아갈만한 지도자가 못지는 못했다. 그리고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은 온갖 죄악과 불신앙의 만연으로, 혼돈과 무질서가 극에 달했으며, 계속되는 위기 속에 지파 간의 연대의식조차 와해된 상태였다.

 

더구나 당시 이웃해 있는 블레셋 족속은, 철제 무기와 농기구를 독점한 채, 가나안 땅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 이스라엘은 신앙이 흔들리고 생활도 곤궁해져서 선민으로서의 능력과 자격을 상실한 채 비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을 필요로 했다. 이러한 시대적인 요구에 따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바로 사무엘이었다. 사무엘은 어려운 때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움받은 민족의 구원자요 강력한 정치적, 영적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사무엘의 등장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신앙부흥의 일대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고, 사무엘 시대에 드디어 이스라엘 왕국이 탄생되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서, 에브라임 산지에 살았던 경건한 레위 족속 제사장 엘가나와 한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사무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 구한다라는 뜻이다. 그의 출생과 젊은 시절의 헌신과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 등은 전형적인 하나님의 사람의 면모를 보여준다.

 

1. 유년시절

 

사무엘의 모친 한나는 자식이 없어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한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시면 그를 나실인으로 키워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서원한다. 이렇게 해서 한나가 잉태하여 사무엘을 낳았는데,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최선을 다해 사무엘을 신앙으로 양육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바친다.

 

사무엘은 젖을 뗄 때까지 어머니의 믿음과 기도 가운데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 어머니 한나가 사무엘을 어떻게 키웠는지는 삼상2장에 나오는 한나의 기도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삼상2:1-10읽기) 이 한나의 기도는 겨우 젖을 뗀, 좌우를 분간하지 못하는 서너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의 성전에 맡기면서 드렸던 기도이다. 이 기도문은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뜨거운 마음과 민족의 미래를 예견하는 놀라운 찬양이 포함된 유명한 기도찬양이다.

 

어린 사무엘을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에 맡겨놓고, 1년에 한 번 사랑하는 아들을 만나러 갔는데, 그때마다 한나는 어린 사무엘이 성소에서 입을 수 있도록 겉옷을 지어다 주었다.

 

일년에 한번 부모님과 만나는 날을 어린 사무엘은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리고 그 부모의 심정 또한 어떠 했을까? 아마, 아버지와 어머니가 들려주시는 말씀은, 부모님이 떠난 다음에도 그 한마디 한마디가 오래도록 사무엘의 가슴 속에 남아서 외로움과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어린 아이가 혼자 늙은 제사장 앞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당시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불량자들이었는데, 제사 제물을 함부로 취급할뿐만 아니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할 정도로 폐역하였다. 따라서 이런 부도덕한 환경 속에 어린 사무엘을 남겨두고 가는 부모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적으로 훌륭한 부모 아래 태어나 잘 양육받았고, 특별히 그 모친 한나의 헌신적인 수고와 기도로 반듯하게 자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2. 소명

 

이렇게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기도, 기대 가운데 점점 자라던 사무엘이, 어느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당시는 엘리 제사장이 나이가 들어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했으며, 제대로 성소를 지킬 수 없을만큼 노쇄해 있었다. 그리고 시대가 어두워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였던 때였다.

 

얼마나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인가? 선민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절망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신 것은 듣는 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목소리를 준비된 한 사람을 통해 들려주셨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어린 사무엘은 성소 안에서 등불을 지키며 자고 있었다. 그곳은 엘리와 그 아들들이 순번대로 돌아가며 지켜야 할 곳이었다. 하지만 저들은 자신들의 직무를 감당하지 않고 그 자리를 이탈해 있었다. 물론 몸이 불편했던 제사장 엘리는 성소 바로 곁에 천막을 치고 기거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비록 어린 아이였지만,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엘리 제사장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비록 나이들어 제사장의 직무를 젊었을 때와 같이 감당하지 못했지만, 엘리는 적어도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그래서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처음 듣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아듣지 못했을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는 일에 능숙한 나이 많은 제사장 엘리가 사무엘을 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사무엘이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에서 엘리는 사무엘의 가장 중요한 스승이었다. 사무엘은 엘리를 통해 모든 제사법과 율법을 배웠다. 어쩌면 엘리는 폐역한 자신의 아들들 대신 어린 사무엘에게 자신의 모든 직무를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면 엘리의 결정적인 실수가 무엇인가? 그것은 삼상 2장에 잘 기록되어 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삼상2:29)

 

엘리 제사장은 결단력이 부족하고 유약한 사람이었다. 특히 제사장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감당함에 있어 자식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기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2:25에 보면 엘리 제사장이 아들들을 꾸짖는데도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자녀들이 다 커 버리면 그 때는 이미 늦었다. 부모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성품은 어릴 때 결정된다. 이점이 바로 사무엘의 부모와 엘리 제사장과의 차이점이다.

 

젊은 부모님들은 잘 들으시기 바란다. 아이들이 품을 떠나기전, 온 힘을 다해 신앙으로 양육하고 말씀으로 훈계하고 좋은 모범을 보여 바르게 키우기 바란다. 엘리 제사장은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바르게 양육하지 못했다. 저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린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하나님과 인간(제사장)을 충실히 섬기고 있는 동안에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게 되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을 줄을 알았더라.”(3:19-20)

 

그리고 또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람은 타고난 우수한 재능과 완벽한 교육에 의해 되는 것은 아니다. 최대의 요건은 하나님의 소명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훌륭한 종교 교육을 받아도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3. 엘리 가의 전멸

 

사무엘은 이스라엘 중흥의 아버지이며, 또한 그 왕국의 건설자이기도 하다. 건설에는 파괴가 따른다. 새 것을 건설하려면 낡은 것을 파괴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에벤에셀에서 블레셋인과 싸워서 패배하자,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진중에서 꺼내왔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것을 상징하는 이 궤를, 자기들의 전쟁의 도구로 이용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크게 패하여, 하나님의 언약궤는 빼앗기고, 이 전쟁 중에 엘리 일가는 엘리를 비롯 그 아들과 온 가문이 전멸되고 만다.

 

그렇다고 언약궤 자체가 그 본래의 위력을 상실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블레셋군에게 운반되자 다곤을 분쇄하고, 블레셋인들에게 재앙이 내렸다. 그리하여 언약궤는 이스라엘에게 되돌아왔다.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과 순종이 사라지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거룩한 사역을 일으킬 수가 없다. 그리고 타락한 하나님의 백성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 역사를 훼방하는 것은 없다. 그후 20년 동안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압박을 받게 된다.

 

4. 미스바의 부흥

 

여호와의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20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20년 동안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각처를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백성들은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 사무엘은 그들에게 말했다.

 

저희가 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국가의 진정한 부흥은 신앙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이스라엘군이 미스바에 모여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블레셋인이 잠자코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들은 이스라엘군을 한꺼번에 무찌르기 위해 일제히 쳐들어갔다. 당시에 이스라엘군은 블레셋인에게 무장이 해제되고 무기를 만드는 철공은 모두 생업을 잃어 심지어 쟁기, 괭이, 도끼, 낫 등을 만들 경우에는 블레셋인의 손을 빌어야 했으며, 후년에 이르기까지 사울과 요나단 이외에는 검이나 창을 가진 자가 없을 정도였다.

 

이스라엘인은 무기가 없는 백성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고양이 앞의 쥐처럼 블레셋인이 무서웠다. 그래서 그들은 사무엘에게 호소했다.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인을 위해 기도한다고 해서 무조건 다 응답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계신가를 이 한 말씀으로 짐작할 수 있다.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으로 정평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무엘의 기도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선민 자체의 회개가 따라야 한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하라고 가르치는 한편 열심히 기도를 올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멀리 떠난 자기들의 불찰을 깊이 뉘우쳤다. 그리하여 사무엘의 기도에 드디어 응답을 내리셨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한지라.” 검 한 자루 없는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천재지변으로 적을 격퇴시켰던 것이다.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하나님이 귀히 보시는 한 사람의 존재는 어떤 군비보다도 위력이 있는 국방력이다.

 

사무엘이 사는 동안에....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라마로 돌아왔으니....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사무엘은 안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밖으로는 동족을 치리하였다. 그에게는 종교와 정치가 하나로 융합되어 있었다. 그의 염원은 이스라엘에 신정 정치의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이었다.

 

5. 그의 만년

 

사무엘은 가정적으로 하나의 언짢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사무엘이 늙으매 그 아들들로 이스라엘 사사를 삼으니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에게 어찌하여 이런 아들이 생기게 되었을까?

 

사사요 대제사장인 엘리는 자기 아들이 곁길에 접어든 것을 알면서도 방치하고 하나님 보다도 그 아들을 귀히 여겨 드디어 그들은 방종으로 말미암아 멸망의 길을 재촉하게 했다. 그러나 사무엘은 결코 엘리와 같은 연골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의 생애에 아들을 감화시키지 못한 어떤 결함이라도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생애를 바르게 살았다. 그는 선민의 지도자로서, 백성들 앞에서 서슴지 않고 말했다.

 

나는 늙어 머리가 희었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날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내가 뉘 소를 취하겠느야 뉘 나귀를 취하겠느냐 누구를 속였으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그에게 대답했다.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엿고 뉘 손에서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다.”

 

사무엘은 이렇게 바르게 살았다. 또 그에게는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이 깃들어 있었다. 후년에 사울이 다윗의 적이 되어, 사무엘과 함께 있는 다윗을 붙잡으려고 사자를 세 번이나 보냈지만, 그들은 번번이 성령을 받고 선지자들처럼 예언을 하고 돌아갈 줄 몰랐다. 드디어 사울 자신이 갔으나, 마찬가지로 사무엘 앞에서 예언하고 종일 밤이 새도록 벌거벗은 몸으로 눕게 되었다.

 

이와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그 아들을 교화시킬 수 없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무엘의 생애는 일에 몰려 너무나 분주했다.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고 가르치기에 언제나 시간이 모자랐고, 각처를 순회하느라고 집을 비우는 때가 많았던 것 같다. 따라서 자녀 교육은 모두 아내에게 맡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정의 중심은 역시 어머니이다. 그리하여 가장 강한 영향력을 주는 것은 역시 어머니이다. 사무엘의 아내가 어떤 여자였는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히 기록한 성경 기자가, 그의 아내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상적인 아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식은 어머니의 반사경이기도 하다. 두 아들은 아버지를 닮지 않고,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만년에 사무엘이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부터 그의 손자들은 그의 교화를 받을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그의 손자 헤만은 성전에서 음악을 주관하고, 또 다윗 왕국의 공로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아무튼 사무엘의 아들들의 타락은,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요구하는 구실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사무엘에게 말했다.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이것은 사무엘에 대해서는 일종의 배척 운동이다. 이 말을 사무엘이 달갑게 여기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화를 내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계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알게 하라.”(삼상8:7-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의견에 못마땅했으나 버리지 않고 관용을 베푸셨다. 사무엘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용의주도하게 대처했다. 그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왕의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그들이 왕의 종이 될 것이라고 실례를 들어 경고하고(삼상8:9-18), 다음에 그들을 위해 사울왕을 택하였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을 때에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선민을 다스릴 왕을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사울은 사무엘의 기대에서 멀리 벗어났다. 사무엘은 이것을 알고 크게 우려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드디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사울 대신에 왕으로 삼게 되었다.

 

사무엘의 안중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이스라엘의 행복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자기를 배척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도,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이라고 말하고 있다(삼상12:23). 남을 위해 기도도 잘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각박한 세상에서 사무엘과 같은 관대한 태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사무엘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마다 비탄에 잠겼다. 그의 존재가 얼마나 그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는가는 그가 죽은 후에 비로소 통감했을 것이다. 사울왕은 죽은 그를 다시 살려, 그의 도움을 받으려고까지 했다. 사무엘의 영향력은 후세에도 미쳐 그가 기름을 부은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 왕국의 기틀을 견고히 하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를 장식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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