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땅에 정착한 이후, 계속적으로 주변 이방인들에게 지배와 압박을 받아왔다. 그리고 그러한 위기때마다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사를 통해 구원받았다.
한편 사사기 말기엔 블레셋 사람들의 세력이 급속히 증대됨으로써 이스라엘은 그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당시 블레셋은 지중해 진출에 실패하게 되자 방향을 바꾸어 팔레스틴 지역을 장악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들은 일찍부터 국가적 체제가 정비되었고, 또 철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이처럼 우수한 문화 속에서 세력을 키워왔던 블레셋과는 달리, 이스라엘은 종교적인 타락과 불신앙의 죄악만을 일삼아, 선민 공동체가 와해될 지경이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압제를 받고 있으면서도, 불신앙과 무사안일에 빠져 더 이상 해방을 위한 의욕도 상실한 실정이었다. 이로인해 이스라엘은 40년동안 블레셋의 지배 아래 억압을 당해야만 했다.
● 나실인으로 태어난 삼손
이러한 때에 삼손은 소라땅 단지파 마노아란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20년동안 사사로 활동한다. 삼손은 이스라엘의 12사사 중에서 마지막 사사이며, 가장 특이한 인물이다. ‘삼손’은 히브리 말로, ‘작은 태양’ 혹은 ‘태양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가장 낭만적인 사람이다. 그의 담대하고 호방한 성품, 엄청난 힘, 큰 무공, 뛰어난 계략, 그리고 그의 비극적인 복수와 참혹한 죽음 등은 누구보다도 극적이어서 일반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다.
삼손의 어머니는 자녀를 잉태할 수 없는 여인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 삼손의 출생을 통보한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성별된 나실인이 되어 여호와께 봉사할 것이며, 장차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할 것이다.” 그래서 삼손의 어머니는 임신 중에 술을 마셔서는 안되며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야 했다.
삼손은 이처럼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택되어 구별된 태교를 받고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아이는 자라면서 머리에 칼을 대어서는 안되며 나실인으로서의 구별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13:24)” 하나님께서는 삼손과 함께 하셨다. 삼손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잉태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기 위해 준비되고 있었다.
● 사사로 활동한 삼손
이처럼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종에게는 승리가 약속되어 있었다. 그의 엄청난 ‘힘’은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은사였다.
삼손의 엄청난 힘에 대해 성경에 처음 기록된 것은, 삼손이 결혼하기 위해 딤나에 내려갔을 때였다. 삼손은 딤나의 포도원에서 울부짖는 어린 사자를 만나자, 맨손으로 염소 새끼를 찢듯 찢어버렸다.
그리고 결혼식 과정에서 삼손은 핑계를 만들어 블레셋 사람들을 무찌르기 시작했다. 15장에 보면, 여우 300마리를 붙들어 꼬리를 서로 묶어 불을 붙여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밭을 다 태워버리기도 했다.
화가난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잡으러 왔을 때, 계략을 써서 블레셋 진중으로 잡혀들어가는척 했다가,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일천명을 한자리에서 죽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보면, 삼손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명으로 용맹스럽게 블레셋 사람들을 무찌르고 에담 바위 틈에 숨자, 블레셋 사람들이 처들어 왔는데, 이에 유다 사람들은 삼손을 도와 블레셋을 무찌르기는커녕 오히려 블레셋의 침입에 겁을 먹고, 삼천명이나 올라와서 삼손을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겼다. 하나님의 선민임에도 불구하고 해방의 의욕을 상실한 동족들에게 삼손은 멸시를 받고, 동족에 의해 적의 손에 넘겨지게 된 것이다. 이때 삼손은 블레셋을 무찌르기 위해 아무런 저항없이 자기 동족에게 결박되어 블레셋에 끌려가기까지 했다.
이처럼 때로 진리를 위해, 또 주의 일을 위해 애쓰고 수고할지라도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어이없는 일을 겪기도 하고, 낙심할 수도 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주께서 주신 사명을 다하기까지 묵묵히 고난도 감수하는 자가 되어야한다. 그러면 장차 이같은 고난은 족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영광을 하나님께로부터 얻게 될 것이다.
하여튼 이 일로 인해 블레셋 사람들은 물러가게 되었고, 삼손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20년간을 다스리게 된다.
삼손의 힘은 막강한 블레셋의 군사력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여호와의 신, 성령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했기 때문에, 그 어떤 세상적인 힘으로도 삼손의 힘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처럼 엄청난 힘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 어찌하여 비참한 자리에 떨어지게 되었을까?
● 어리석은 용사 삼손
삼손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고 보호하는 본래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충성하고, 또 나실인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는 동안은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아, 대적을 무찌르고 민족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가 나귀의 턱뼈를 손에 들고 블레셋 사람 1천명을 무찌를 때가 그의 전성기였다. 그 후 20년동안 블레셋은 그의 힘에 눌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년은 긴 세월이다. 청년기의 삼손은 이제 어느새 중년이 되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삼손에게 심각한 문제가 16장에 들어서면서 발생한다. 16:1에 보면 삼손은 이방 땅 가사에 내려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간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별된 사사가 눈의 유혹에 이끌려 이방 기생에게 들어갔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가?
삼손이 사사로 지낸 20년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성경은 기록해 놓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삼손에게 일어난 변화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삼손은 위대한 장사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았으나, 그 역시 평범한 한 사내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특히 삼손의 치명적인 약점은 이성의 눈물과 유혹에 약하다는 것이다.
삼손이 사사로 있는 동안 어떻게 결혼을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런데 삼손은 분명히 나실인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나실인 사사가 이방 기생에게로 들어갔다는 것은, 하나님께 부름받은 나실인으로서, 또 사사로서의 위치를 망각하고 성적 방종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위대한 영웅이었으나, 자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인간적인 욕망에 따라, 죄악의 길에 들어서고 만 것이다. 삼손은 일찍이 블레셋 여인과 혼인했을 때도, 여인이 계속 울며 재촉하자, 수수께끼의 비밀을 가르쳐 줌으로써 곤란을 겪기도 하였다.
가사의 이방 기생에게로 들어간 날, 가사 사람들이 삼손을 죽이기 위해 매복하였고, 삼손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한밤중에 그 성의 성문짝과 두 설주와 빗장을 빼어 모두 어깨에 메고 60km 나 떨어진 헤브론으로 가져간다. 물론 이것은 삼손의 힘이 엄청났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이제 자신의 타락으로 인해 이방인의 손아귀에 빠져들어가는 신호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경고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로 이어 다시금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들릴라가 어떤 일을 하는 여인인지 성경은 선명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들릴라’라는 이름이 ‘애처로운 사람, 약하게 하는 자, 신봉자’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보아, 또 돈을 받고 삼손을 넘긴 점 등으로 보아, 이방 신전에서 봉사하는 음탕한 블레셋 매춘부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삼손이 들릴라를 사랑했다고 할 때 사용된 ‘아하브’라는 단어가 합법적인 부부간의 사랑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불륜적 관계를 의미하고 있음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나실인 사사 삼손은 청년 때에 순수한 열정과 헌신의 마음이 퇴색되고, 어느새 정욕에 눈먼 타락자로 변해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도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돈에 매수된 들릴라의 집요한 요구에 삼손의 자신의 힘의 근원이, 나실인으로서의 표징인 긴 머리에서 나온다고 누설하고 말았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잠언]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더이상 용사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적은 그의 약점을 찔러 그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 “자기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 이렇게 되면 적이 쉽사리 쳐들어와 점령하게 된다.
결국 삼손은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잠든 사이, 힘의 원천인 머리칼을 잘리우고 말았다.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왔다는 말에 잠을 깨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힘을 쓰려고 했으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떠나신 것을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서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힘을 얻게 된다. 하나님을 떠나면 그 힘은 곧 사라지게 마련이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성공이 지속되면 그것이 마치 자기 힘으로 된 일인 줄 착각하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와같은 자만심은, 아무리 성공한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추락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리하여 삼손은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굴욕의 진흙창으로 떨어지고 만다.
● 삼손의 최후
하나님을 떠난 삼손의 비참한 모습을 보라. 적은 그의 양쪽 눈알을 도려내고 전에 그가 성문 기둥을 뽑아버린 적이 있는 가사 성에 끌고 가서 놋줄로 매고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했다. 블레셋 사람의 방백이,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붙였다”하고 그 우상을 찬양하고 축하하면서 삼손을 불러내어 노리개감으로 삼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얼마나 큰 치욕인가?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대해 얼마나 큰 모독인가? 비록 육체적 욕망에 눈이 어두워 타락했던 삼손이었지만, 두 눈이 뽑힌 채 이방인들의 조롱을 받으며 맷돌을 돌리는 그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시간이 흘러, 하나님의 사람의 상징인 그의 머리칼은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어느날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잔치를 벌일 때, 삼손을 끌어내어 재주 부리게 하며 희롱하였다. 이때 삼손은, 집을 버틴 두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내가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합니다.”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다. 이것이 성경이 전하는 장사 삼손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런데 육체적 힘이 강하다고 정신적인 힘까지 그에 비례해서 강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육체적인 힘이 강하면 교만해지기 쉽고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힘이 약해질 있다. 삼손은 힘이 강한 반면에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약한 사람이었다. 삼손의 힘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할 때 발휘하는 힘이었다. 삼손에게 주어진 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도록 주신 힘이었다. 그 힘을 올바르게 쓰지 못할 때 오히려 무능한 자가 되어 버렸다. 사람의 힘과 능력, 재주는 모두 자신의 것이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명심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그 힘과 능력이 우리를 넘어뜨릴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삼손이 이처럼 인간적 실수 투성이였고 범죄한 영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들어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는 능력을 베푸셨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하심을 다시한번 찬양하게 된다. 또한 우리의 약점을 외면치 않으시고, 진실로 회개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끝까지 힘주시고 사명을 감당토록 하실 하나님을 믿으며, 겸허한 마음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더욱 강구해야 할 것이다.
● 교훈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부름받았고, 또 성령의 감동으로써 영웅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특별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나실인의 규례를 어기고 이스라엘의 사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방 풍습을 따르는 등 무분별한 행실을 함으로써 여러 가지 실수를 범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택함받은 자라 할지라도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않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택함받은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날마다 구별된 자답게 살아가야 하겠다.
이 삼손의 모습은, 그대로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고 변화시켜나가야 할 사명자로 교회를 불러 주셨는데, 삼손이 자신의 정욕에 사로잡혀 그 엄청난 힘을 잃고 예언자의 시력을 빼앗기고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하지는 않았는가? 그리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짓밟히고, 더러워지고,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교회는 속수무책으로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본래의 사명을 자각하고, 잠에서 깨어나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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