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좌우 진영의 샌드백 신세가 된 윤석열 대통령
총선에서 여당을 자처한 국민의 힘이 충격적 패배를 당하면서 나자빠졌다. 늘 문제가 발생하면 희생양을 찾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을 희생의 제단에 올렸다.
제왕적 리더십 운운하는 비판은 일종의 애교에 속한다. 졸속·불통·독주, 직진형 리더십, 극단적 정치실종, 독선, 오기, 파렴치…. 한겨레신문 논설실장 출신의 오태규라는 언론인은 윤석열 대통령을 ‘최악의 리더십’이라고 난타했다.
장수찬 목원대학교 명예교수는 윤석열 리더십의 특성을 권위주의(authoritarianism)와 나르시즘(narcissism)으로 정의했다. 위계질서, 패거리주의, 집단이기주의로 요약되는 검찰 경험을 그대로 용산 집무실로 옮겨놓았을 뿐만 아니라, 자수성가의 성공 신화로 인한 자기방식에 대한 강한 확신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란다.
부유한 집안의 독자로 태어나 엘리트 검찰 생활을 통해 뿌리 내린 윤석열 대통령의 나르시즘은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므로 망상과 과대확신, 자기과시성이 있으며, 유아적이고 정서적 미성숙과 불안정성을 보여 준단다.
나쁜 리더십의 전형에 해당하는 단어들을 총동원하여 대통령을 물고 뜯고 씹어댄다. 이런 비판의 도도한 흐름에 소위 보수우파를 자처하며 나라 걱정에 잠 못 이루시는 분들도 대거 가담한 결과가 지난 4·10 총선의 참혹한 결과다. “제발 좌익 공산주의자들의 손아귀에 넘어간 이 나라 좀 구해 달라”고 등 떠민 게 언제 적 이야기였던가? 민심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어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이다.
#.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을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윤석열 대통령이 능수능란한 정치꾼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의대 정원 문제라든가, 이종섭 장관의 출국에 따른 후속조치 등등 판단착오도 더러 있었고 에러도 자주 냈다.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그런 에러의 질과 양과 수준을 이재명·조국·문재인의 사례와 비교해 보시기 바란다. 그래도 윤석열을 비판한다면 당신은 보수우파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각설하고 그의 재임 2년 간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자유’에 대한 뜨거운 의지를 들여다본다.

윤석열 대통령이 즐겨 사용한 용어는 자유·시장·혈맹·희생 등이 꼽힌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 ‘자유’란 단어가 35차례 등장했다. 지난해 4월 24일부터 30일까지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을 국빈 방문했다. 윤 대통령이 백악관·의회·경제 단체·대학교 연설에서 수없이 되풀이 강조한 문구가 “자유 시장의 번영”, “자유 수호 동맹”이었다.
한겨레신문은 5박 7일간의 방미 일정에서 157번의 ‘자유’가 더해졌으며, “이로써 2022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사 이후 ‘자유’는 494번 불린 단어가 됐다”라고 비난했다(한겨레신문, ‘윤 대통령의 494번의 “자유”는 누굴 위한 자유인가?’, 2023년 5월 5일).
좌파 진영에서는 ‘자유’가 참으로 불편한 단어로서 귀에 거슬릴지 모르겠으나 필자의 귀에는 그것이 복음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이승만 대통령 퇴임 후 이 나라 지도자 중에 공개석상에서 공식적 메시지를 통해 ‘자유’를 전파한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이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정책 면에선 전임 문재인 정부가 질식사 시키려 했던 탈원전 정책을 전면 폐기, 친원전 정책으로 회귀했다.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도 거의 모든 규제를 철폐하는 쪽으로 물꼬를 돌렸다. 대북 정책도 문재인 정부가 한국을 무장 해제시키기 위해 북한과 체결한 9·19 군사합의를 파기함으로써 절정을 이루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정쩡한 줄타기를 빙자한 반미-친중국 외교 노선도 한미일 3국 공조를 통한 중국 견제라는 선명한 노선으로 전환했고, 난마처럼 얽혔던 한일 관계도 정상화했다. 문재인 정부가 개판 쳐놓은 것을 정상화하고 원상복구 한다는 의미에서 ABM(Anything But Moon)이 윤석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로 떠올랐다.
보수우파는 이런 정책을 오매불망 갈망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보수우파마저 앞장서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비판의 돌팔매질에 열심인가?
#. 아직도 종족주의가 판을 치는 나라
선거란 한 나라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다.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세계 선진국 투표 양태와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종족주의적 준봉투표와 도덕 쟁탈전으로 갈라파고스 섬처럼 고립의 길을 걷고 있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역시나’ 하는 체념과 실망감으로 도배질 되고 말았지만, 이번 총선은 한국인들이 어느 정도나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정치적 판단을 내릴지를 판가름하는 시험대였다.
자유민주 선거제도가 도입된 지 76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은 아직도 지연·학연·혈연이 모든 판단의 기준을 초월하는 가치로 왕성하게 작동 중이다. 후보자의 정책과 능력, 정견으로 후보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향과 출신학교, 씨족 집단의 일원 여부를 판단의 준거로 삼는 종족주의가 판을 친다.
한국의 선거는 누가 더 도덕적으로 정당한지를 가리기 위해 피를 흘리는 전쟁이다. 도덕 쟁탈전의 적나라한 양상을 폭로한 사람이 일본의 오구라 기조(小倉紀蔵) 교토대 교수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은 모든 구성원들이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거대한 극장이다. 권력투쟁은 도덕을 앞세워 권력을 쟁취한 세력이 얼마나 부도덕한가를 폭로하는 싸움이다. 도덕을 장악한 자는 완벽한 절대선(善)이라는 최고 지위에 등극한다(오구라 기조 지음·조성환 역,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모시는 사람들, 2017, 136쪽).
도덕 쟁탈전에서 무소불위의 살상력을 자랑하는 무기는 ‘민주화’다. 민주화 세력은 자신들이야말로 1960년대 이래 민주화·반독재 운동을 위해 투쟁하고 희생한 집단이므로 지고지선의 권위를 차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외친다. 민주화가 다른 모든 권위를 압도하다 보니 아무리 형수에게 입에 담기 민망한 육두문자를 사용하고, 부부와 자녀까지 나서서 철면피한 거짓말을 밥 먹듯 해도 그들의 도덕적 권위는 조금도 훼손되지 않는다.
이것이 자유민주선거 76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종족주의적 준봉 투표가 횡행하는 현실적 이유다.
#. 메시아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사람들
리더십이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지지와 도움을 얻는 지도력을 뜻한다. 말하자면 구성원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성과를 창출하는 능력이다.
지금까지는 리더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존재이고, 조직 구성원(팔로워)은 리더십에 복종하는 종속적 관계로 인식해 왔다. 이런 시대에는 뛰어난 리더만 등장하면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고, 복잡한 일도 쾌도난마식으로 해결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리더십 전문가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바버라 켈러먼 교수는 기술 진보와 민주주의 진전 덕분에 전 세계의 모든 리더들은 심각한 권위 손상, 영향력 감소라는 도전에 직면했다고 말한다. 리더십 부재, 리더의 영향력 감소는 한국에서만 일어난 특수 현상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 공통적으로 등장한 보편 현상이란 뜻이다.
오래 전부터 이 나라 유권자들은 걸출한 리더십과 불꽃 튀는 카리스마로 무장한 전지전능한 리더를 손꼽아 갈망했다. 무지몽매한 양떼를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줄 모세 같은 존재의 등장을 기원했다.
불행하게도 엘리트 리더 한 명이 수많은 무리를 먹고 살게 해주는 낭만의 시대는 종언을 고한 지 오래다. 소셜 네트워크(SNS)로 언제 어느 때나 상하좌우가 자유롭게 연결되는 세상에서, 수직적 권위를 토대로 한 리더십은 더 이상 설 땅이 없어진 것이다.
이 난세에 알렉산더나 나폴레옹, 박정희, 리콴유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를 어디 가서 구해올 수 있겠는가. 리더십 부재의 시대라고 하니 리더 없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위해 등장한 것이 리더십 대체이론(Leadership replacement theory)이다. 리더의 영향력과 권위가 날이 갈수록 약화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팔로어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팔로워는 리더의 지시에 순응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이 리더 역할을 대신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팔로워십의 중요성이 등장한다.
미국의 리더십 학자인 카네기멜론스쿨의 로버트 켈리(Robert E. Kelley) 교수는 자신의 저서 『팔로워십의 힘』에서 조직의 성공에서 리더의 기여도는 20%에 불과하며, 나머지 80%는 팔로워의 기여에 의한 것이라고 설파했다.
#. 기러기의 V자형 편대비행 교훈
눈에 보이는 팔로워십의 전형은 바다 건너 수만 km를 이동하는 기러기 떼에서 찾을 수 있다. 기러기 떼는 이동할 때 V자형으로 무리를 지어 날아간다. 무리의 선두에 선 대장 기러기가 공기저항을 줄여줌으로써 뒤따르는 무리는 쉽게 비행이 가능하다. 이런 방식으로 30%의 에너지를 절약하여 혼자 이동할 때보다 70% 이상 더 멀리 날 수 있다고 한다.

기러기 편대비행의 교훈은 구성원 모두가 리더이자 팔로워란 사실이다. 학자들의 관찰 결과 기러기의 V자형 편대비행에서 핵심은 공기 저항을 줄여주는 선두의 대장 기러기다. 기러기들은 끊임없이 재잘대며 비행하는데, 이것은 선두에서 무리를 위해 헌신하는 대장을 응원하는 시그널이다. 선두의 대장 기러기가 지치면 후미로 가고, 힘을 축적한 두 번째 기러기가 선두에서 무리를 이끈다.
한 마리가 뒤처지면 동료 기러기 두 마리가 함께 이탈해 동료를 끝까지 돌봐주고 회복시켜 무리에 합류한다. 리더와 팔로워가 힘을 합치는 방식으로 장거리 비행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보수우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선출했으니, 그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고 손 털고 일어나 소가 닭 보듯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윤석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무 위에 올려놓고 열심히 흔들어댄다. 이렇게 되면 나무에 올라앉은 이는 어지럼증으로 나무에서 떨어져 허리가 부러지거나 머리가 깨져 자멸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편대 비행하는 기러기 떼처럼 선두에서 희생하는 대장 기러기를 돕기 위해 응원하고, 리더가 지치면 내가 리더 역할을 대신하는 팔로워십을 왕성하게 발휘할 때 그 시대를 담당한 대통령은 큰 성과를 낼 수 있지 않겠는가.
#. 리더는 세상을 바꾸고 팔로워는, 리더를 바꾼다
세상에 훌륭한 리더는 드물지만, 나쁜 리더는 차고 넘친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팔로워는 드물지만 나쁜 팔로워는 차고 넘친다. 바버라 켈러먼 교수는 좋은 팔로워는 “좋은 리더를 지지하고 나쁜 리더에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나쁜 팔로워는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비효율적이고 비도덕적인 리더를 지지하며, 효율적이고 도덕적인 리더에 반대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좋으나 싫으나, 미우나 고우나 이번 총선의 결과 건전한 한국인들은 입법 권력을 장악한 좌파 정권의 나쁜 리더십을 적나라하게 체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쁜 리더십을 바로잡고, 그런 리더십의 등장을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켈러먼 교수는 나쁜 리더는 나쁜 팔로워들이 빚어낸 작품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팔로워들이 개과천선하지 않는 한 절대로 나쁜 리더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켈리 교수의 말처럼 리더의 역할은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팔로워의 몫이다. 이것을 국가에 대입하면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리더인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응원·지지·협조해야 소기의 목표 달성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나쁜 팔로워는 나쁜 리더를 반영한다. 나쁜 리더는 나쁜 팔로워를 반영한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다. 나쁜 리더 한 명을 제거했다고 해서 사회가 곧바로 정화되지 않는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리더를 탓하고, 갈아치운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도 없다.
나쁜 리더에게 권력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려면 훌륭한 팔로워들의 인식과 결단,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좋은 리더십은 마른하늘에서 번개 떨어지듯 어느 날 불현 듯 나타나지 않는다. 팔로워들의 뜨거운 후원과 지지, 상호 책임지는 팔로워십이 왕성하게 작동할 때 좋은 리더는 자연스럽게 등장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어떤가? 수학여행 가는 학생을 태운 배가 항해하다 침몰해도 대통령 탓, 할로윈 데이에 압사사건이 나도 대통령 탓, 비가 안 오거나, 물가가 올라도 대통령을 탓하며 탄핵을 외쳐대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비뚤어진 팔로워들로 넘쳐나는 사회에서 좋은 리더는 나타날 수 없고, 한국이 성공을 향해 달리는 일도 불가능해진다.
리더는 세상을 바꾸고, 팔로워는 리더를 바꾼다. 팔로워는 변하지 않으면서 리더가 바뀌길 기대하는가?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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