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갈라디아서 강해(6)/ 복음의 자유성(2장1-5절)

성북동 비둘기 2024. 7. 2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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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강해(6)

 

복음의 자유성(21-5)

 

1.바울에게는 사도된 사명이 있었다. 이 사명과 역할은 오늘날까지 매우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지만 이방에 전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히브리 문화권 아에서 계시된 복음을 깊이 이해하고 이것을 다시 당시의 문화인 헬라 문화라는 그릇에 담아서 전하는 사명이었다. 복음은 변하지 않는데 그것을 담을 그릇, 곧 문화는 다른 것이었다. 복음은 똑같다. 예수도 같다. 신앙고백도 같다 그러나 스타일은 다를 수 있다.

 

2.오늘 본문은 유대 스타일과 이방의 스타일이 부딪혀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교회사에서 제일 큰 분열은 동서 로마이 분열이었다. 바로 헬라와 라틴의 분열이었다, 카톨릵과 희랍정교의 분열이었다. 그 분열은 스타일의 차이에서 왔다. 이해하고 보면 스타일이 달라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의 눈에는 히브리적인 전통만이 전통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형식일 뿐이었다. 이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교회는 영원히 하나될 수 없다. 바울이 회심후 아라비아 3년 시간을 보내고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은 스타일의 조화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 조화란 바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자유문제였다. 그래서 예루살렘 지도자들과 만나 이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예루살렘 공의회에 나타난 것이다.

 

3.공의회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교회)3가지 문제만 지키면 문제없다는 공식적인 확답을 받아내게 된다. 그것은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는 것, 목매어 죽인 짐승이나 혹은 피를 먹지말라, 음행을 하지 말라. 이 세가지만 금지하고 나머지 문제는 자유가 허용된 것이었다.

 

4.이 때 바울은 디도를 데리고 회의에 참여를 했는데 디도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의 상징이었다. 그는 헬라사람으로 할례를 받지 않았다. 디도는 부모 양쪽이 다 헬라사람이었기 때문에 할례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즉 유대주의자였던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는 예수가 없었기에 이렇게 소란을 피운 것이었다. 예수 구원의 절대신앙이 없었기 때문에 교회에 들어와서 소란을 피운 것이다.

 

5.그 소란이 내용은 이렇다. 예수만 믿어서 되나 할례도 받고 행함도 있어야지...그러나 여기서 양보해서는 안된다. 바울은 절대적인 진리앞에서는 칼같이 양보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절대진리 앞에서 양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껍질만 남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행함으로 인해 그 행함이 없는 또는 그 행함이 온전치 않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교만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기도 봉사 선행 열심을 내다 보면 마지막에는 예수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다 내 공로요 내 선행이요 내 의요 나중에는 율법주의자로 전형적인 인물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6.은혜는 자유이다. 죄로부터의 자유, 사망과 사단과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그러나 방종은 아니다. 우리가 만일 정말 은혜로 산다면 이 은혜가 율법을 초월하게 된다. 은혜에 감격하며 사는 동안 오히려 더 선하게, 의롭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율법적으로 죄를 안지으려고 또 선을 행하려고 바둥바둥 인간적으로 애을 쓰면 쓸수록 오히려 뒷걸음치다가 죄를 더 많이 짓게 된다. 거기에 플러스 알마로 교만죄 까지 추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은혜로 사는 세계가 훨씬 더 의롭고 선하다. 은혜속에는 자유의 질서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의 유명한 말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은 내 마음대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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