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갈라디아서 강해(17)/ 돌아갈 수 없는 신분(4장 8-11절)

성북동 비둘기 2024. 8. 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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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강해(17)/ 돌아갈 수 없는 신분(48-11)

 

1.예수를 믿고 나서 놀라운 은혜를 받았고 주를 고백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자기 중심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자기 하수인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가 나의 중심이 되고 나의 주가 될 때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은 이렇게 예수를 자기 중심적으로 믿는 사람들을 위한 말씀이다.

 

2.옛날로 돌아가려고 할 때 우리가 기억해야 될 말씀들

(1)첫째는 너희들은 종이었다고 한다.

종은 자유가 없다. 생각의 자유, 가치관의 자유, 의지의 자유도 없다. 끄는대로 끌려가는 인생이다. 그런데 이제 아들이 되었다. 그런데 왜 다시 종으로 돌아가려 하느냐 말도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2)전에는 우상을 섬겼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 전에는 우상이 끄는대로 끌려가는 비참한 인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 웃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것이다.

(3)전에는 율법에 매여 있었으나 이제는 은혜로 말미암아 자유를 얻게 되었다.

율법의 강한 속박에 매여 있다가 자유를 얻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하나나의 자녀의 특권을 누리고 살아왔는데 어느덧 율법주의자가 되어 버렸다.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4)전에는 유치한 자였는데 다음에는 성숙한 자가 되었다.

전에는 율법교사(몽학선생) 밑에 있었던 어리석은 자였으나 지금은 성숙해졌다. 그런데 왜 유치한 곳으로 다시 가느냐 말이 되지 않는다는 바울의 논리요 책망이다.

 

3.우상에게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자들을 향한 바울의 권면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8)

(1)우상에게 종노릇한다는 뜻이다.

우상은 대단하게 보이지만 우상은 없다. 귀신을 섬긴다고 하지만 섬기는 그것은 없는 것이다. 마치 있는 것처럼 섬길 뿐이다.

(예화)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과정은 참으로 우습다. 조상님이 와서 잡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밥에 물을 말아 숟가락까지 얹어 놓는다. 잡수실 동안에는 분을 닫고 밖에 나가 있는다. 그런데 잡숫기는 무엇을 잡수시는가? 생각해 보면 너무 웃기는 것이다. 없는 것을 꼭 있는것처럼 만들어서 하는 것이다.

 

(2)우상은 우리를 협박한다.

이러한 저주가 있고 이런 액운에 빠진다. 무엇이 잘못된다 협박을 한다. 어느날은 장가가면 안되고 이사가면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그믐날이면 트럭을 구하기가 힘든다고 한다. 너도나도 이날로 몰아서 이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으로 웃기는 일이다. 누구나 귀신을 반가워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무서워서 할 수 없이 섬길 뿐이다. 그런데 이처럼 우상을 섬기다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자유함을 얻었다는 이야기다.

(3)우리 교회사의 전도 이야기

우리 교회가를 살펴보면 우상을 많이 섬기는 때였다고 한다. 그래서 전도가 잘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귀신 섬기느라고 고생하지 말고 하나님 귀신 예수 귀신만 섬깁시다.”라고 전도했다고 한다. 가만히 들어보면 기가막힌 전도방법이었다.

 

4.다시 우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들

 

(1)하나님이 나를 먼저 아셨기 때문이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9)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먼저 알고 선택하시고 불러주셔서 믿는 것이다.

(예화)아기가 자라면서 엄마 아빠를 알아본다. 그러나 아기가 날 알아보네 하면서 부모들이 좋아한다. 그런데 사실 아기가 부모를 알아보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부모가 아기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것이다. 사실 처음믿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큰 소리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끌어내어 꼼짝 없이 믿게 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나를 먼저 알고 불러주셨는데 왜 다시 돌아가는가 말도 안된다는 바울의 말이다.

 

(2)약한 초등학문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다시 악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9)

율법으로 돌아는 것을 말한다. 율법은 능력이 없다. 자꾸 너는 죄인이다. 구원할 능력이 없다고 우상처럼 협박만 하지 능력이 없다. 자꾸 말만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는가? 협박은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것이다. 사람이 불안에 떨면 점점 나약해진다. 우리가 교육을 할 때도 자꾸 지

적만하면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격려와 칭찬이 오히려 큰 효과를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천한 율법이기 때문이다.

천하다는 헬라어로 <프토카>이다. 이는 거짓모양’ ‘거지꼴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율법자체도 초라하고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시달리는 사람들도 초라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은혜의 복음은 사람을 아름답게 행복하게 귀한 사람으로 만들어간다.

 

(4)형식만 남기 때문이다.

너희가 날과 달과 해를 삼가 지키니”(10)

-이는 유대인들의 3대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을 가리킨다.

-이것들을 열심히 철저히 지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열심있게 지키다보니 자기 행위만 남는다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중에 열심있는자가 문제다. 자기 의만 남아서 교만해지고 남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새벽기도 하다가 누가 이것을 만들어서 말썽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자는 초신자는 없다. 꼭 직분자가 이렇게 말을 한다. 이렇게 말하면 율법주의에 빠진 것이다.

-율법주의에 빠지면 기쁨이 사라진다. 사랑이란 기쁨이 따라가야 사랑이다. 혹시라고 억지가 따라가면 사랑이 아니다. 모든 일을 자유로이 지켜야 한다. 그뜻을 알고 지켜야 한다. 말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그 말에 담겨 있는 의미가 중요하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12:11-12) 하나님께서는 안식일과 십계명을 주실 때에는 분명히 사랑으로 주시고 복받으라고 주신 것이다. 만일에 이것을 무리한 마음으로 저주를 받을까봐 두려움으로 억지로 섬긴다면 율법주의, 형식주의, 바리새주의, 율법주의에 빠지게 된다.

 

5.결론/ 아들의 믿음을 갖고 살아가라

그러므로 우리는 아들의 신분에서 잠시라도 종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은혜로 살것이요 율법에 빠져서는 안된다.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으로 하여 살아야 한다. 한순간이라도 나 중심적인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모든 일에 감사가 있어야 한다. 순종에도 감사, 봉사에도 감사, 심지어 순교에도 감사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런 감사와 찬송의 삶이 옥문을 연다. 이렇듯 율법주의로부터 벗어나게 될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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