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갈라디아서 강해(11)/ 아브라함의 의(3:1-9)

성북동 비둘기 2024. 7. 2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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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강해11

 

아브라함의 의(3:1-9)

 

1.요한계시록에서도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너희가 첫사랑을 버렸느니라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좋은 것을 계속 지속시켜 나가는 것이 힘이 든다. 왜 그럴까?

(1)지속시키기 위해서 처음의 감격과 기쁨을 합리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 지식화해야 한다.

(2)의지화해야 한다. 즉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감격이 지속될 수 있다.

 

2.오늘의 본문은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3) 말씀하고 있다.

(1)하나님의 은혜를 분명히 체험하고 있다. 감격이 있었다.

(2)그러나 지식화가 없었다. 체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합리적으로 소화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풀이하고 믿음으로 해석하여 해답을 얻어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감격만 있었지 실제로 사건 하나하나를 믿음으로 풀이하고 해석할 만큼 지식이 부족했다.

(3)믿음의 생활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믿음이 흐지부지 되어 버렸던 것이다.

 

3.나도 모르게 율법주의가가 되는 과정

처음에는 은혜도 받아 감격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믿음으로 살려하고 선을 행하려고 애를 쓰다보면 두가지 못제가 초래된다.

(1)첫째는 원하는 만큼 다 이루지 못하여 가슴이 답답하다.

(2)둘째는 한편으로는남을 비판하게 된다. ‘저렇게 허술하게 믿어도 되는 건가남의 믿음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다.

 

4.신앙의 변질을 책망하고 있는 바울의 권면과 해답(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1). 바울은 신앙의 변질을 가져온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제일 먼저 십자가를 말하고 있다. 그러면 십자가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십자가에서 우리는 두가지 모습을 깨닫게 된다.

(1)십자가는 내가 큰 죄인이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구원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그 죄인이 이제와서 의를 행하고 선을 행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십자가는 바로 내가 큰 죄인임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2)십자가의 댓가를 지불하고 구원할 만큼 내가 귀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렇듯 십자가는 내가 큰 죄인이며 동시에 그토록 귀한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쳐다보아 한다.

 

5.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은혜

(1)만족성-십자가 중심의 신앙, 신학, 그리고 십자가를 개인적인 계시로 받아들이게 될 때 우리는 만족하게 된다.

(2)승리성-십자가를 똑바로 보고 십자가와 나와의 바른 관계만 맺으면 모든 시험을 이긴다. 갈라디아 교인들의 최대의 문제는 십자가를 이해하고 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6.갈라디아 교인을 향한 바울의 해답(2)- 성령의 체험

바울이 이해하고 있는 성령은 무엇인가?

(1)성령은 십자가를 이해하게 한다. 십자가의 계시성을 내게 설명해준다.

(2)성령은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마음이다.

(3)성령의 가장 큰 역사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어떤 고난도 이 큰 사랑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다.

(4)성령은 말씀을 듣게 하고 이해하게 한다. 말씀이 없이 아무리 떠드는 사람들은 아직 성령을 못받은 사람들이다.

(5)우리가 선을 죽도록 행한다고 해도 그로 말미암아 마음에 진정한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쁨과 감격과 감사의 삶을 체험하게 된다.

 

7.갈라디아 교인을 향한 바울의 해답(3)-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함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4)

(1)율법의 행위에서 얻어지는 것은 언제나 두가지이다. 절망과 교만. 그리고 두려운 마음이다. 율법의 행위는 아무리 많이 행하여도 만족할만한 은혜를 경험할 수 없다. 반면 성령으로는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되고 감격이 있다.

(2)예수를 믿은지 16개월이 안된사람이 제일 많이 전도를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 사람들은 예수께서 나의 죄를 사하셨다. 예수로 말미암아 내가 구원을 받았다. 문자 그대로 십자가 신앙이다. 이 감격으로 누구든지 붙잡고 전도하니 전도를 많이 하게 된다. 신앙은 이렇게 끝까지 단순해야 한다.

(3)언제는 나의 의로 살았는가? 나의 의지하고 전도를 할 것인가? 나를 닮으라고 할 것인가? 잘못된 생각이다. 오직 십자가 신앙만이 중요한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3) 시종일관 십자가 믿음을 갖기를 권면하고 있다.

 

8.아브라함과 믿음의 조상

(1)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2)아브라함은 자기 자신이 구제불능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실 때 그대로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3)탕자도 집에 돌아왔을 때 전혀 자격이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호의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4)그래서 창세기 156절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이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복을 주셨다. 아브라함은 의롭다함을 먼저 받고 그 다음 14년후에 할례를 받았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할례가 먼저가 아니다. 의식에 빠질 필요가 없다.

(5)우리가 행하는 선, 우리가 지키는 율법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지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아니다.

(6)이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고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마땅히 그 율법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준행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오늘의 본문의 중요한 맥락이다.

(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1:17)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끝까지 믿음으로 행하는 아브라함의 후예가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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