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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강해(14)바울의 율법 이해(갈3장 19-22)

갈라디아서강해(14)바울의 율법이해(갈3장 19-22) 1.기독교의 복음중에서 가장 귀중한 복음은 ‘구원의 복음’이다. 갈아디아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귀중한 진리에 대한 변증의 말씀이다. 많은 사람들은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대립적 관계로 보는 미숙함 속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법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함부로 한다는 말은 당치 않는 말이다.  (예화)남편을 사랑하면 무서워서가 이혼당 할까봐 잘하는 것이 아니다. 남편의 법을 소중하게 여기고 나아가 지타치듯 무심한 한마디 한 것도 관심을 가지고 잘 받들어 섬기는 것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란 말이 이런 의미이다. 2.바울의 율법의 이해(1) 범법함으로 더한 것 “범법..

신약성경 2024.07.28

갈라디아서 강해(13)/ 확실한 언약(3장15-18절)

갈라디아서 강해 13 확실한 언약(3장15-18절) 1.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확실한 은혜와 약속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까지 오직 믿음, 오직 은혜만이 구원의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경험과 성경적인 지식을 근거로 이 주제를 열심히 설파했다.  2.그런데 오늘본문에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15절)라고 말씀한다. 오늘 본문은 지금까지의 분위기와는 다소 예외성을 보여준다. (1)다시 말해 인간적인 상식과 지식으로도 이해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과 비판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자연계시적인 것이다. (2)그러면서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말하고 있다. 바울은 일단 따뜻하게 불러놓고 권면하면서 변론하고 있는 것이다. (3)주님도 요한계..

신약성경 2024.07.28

갈라디아서 강해 (12)/ 율법에 속한 자(3장10-14절)

갈라디아서 강해 12 율법에 속한 자(3장10-14절) 1.율법에 속한자는 저주 아래 있다.오늘 본문은 10절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1)율법에 속해있다는 말은 율법에 꼭 매여 있다는 말이다. 행위도 의식도 생각도 매여 있다. 이런 사람이 참으로 많다. 율법에 매여 언제나 벌벌 떨면서 살아간다. 예수를 믿어도 참 힘들게 믿는다. 기쁨이 없다. 은혜도 없다. (2)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첫째는 다른 사람에 비해 정결하게 산다고 할 수 있는데도 기쁨이 없는 이유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만큼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불안하다. 둘째는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비판한다. 자기와 비교해서 ‘저 사람 저래서 되겠나’ ‘참 한심하다’고 비판한다...

신약성경 2024.07.28

갈라디아서 강해(11)/ 아브라함의 의(3:1-9)

갈라디아서 강해11  아브라함의 의(3:1-9) 1.요한계시록에서도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너희가 첫사랑을 버렸느니라”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좋은 것을 계속 지속시켜 나가는 것이 힘이 든다. 왜 그럴까? (1)지속시키기 위해서 처음의 감격과 기쁨을 합리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지식화해야 한다. (2)의지화해야 한다. 즉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감격이 지속될 수 있다.  2.오늘의 본문은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3절) 말씀하고 있다. (1)하나님의 은혜를 분명히 체험하고 있다. 감격이 있었다. (2)그러나 지식화가 없었다. 체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합리적으로 소화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풀이하고 믿음으로 해석하여 해답을 얻..

신약성경 2024.07.28

갈라디아서 강해(10)/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2:18-21)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2:18-21) 1.오늘 본문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말씀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안에서 옛사람을 벗고 이제 죄에 대하여 완전히 자유를 얻는 자의 당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2.사람에게는 과거 지향적인 면이 있다. 신앙도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회귀성이 있다. 그래서 온전히 벗어나기가 힘들다. 잠재의식속에 감추어져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나타나고 운명을 좌우 하기도 한다. (1)호랑이도 우유를 가지고 어릴 때부터 키우면 순한 양같다. 그러나 같은 동족인 호랑이를 만나면 순식간에 맹수로 돌아간다. 잠재의식과 습성이 이렇게 무섭다. (2)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한국사람을 만나지 말아야 한다. 만나 한국말을 하면 노력한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3.영..

신약성경 2024.07.28

갈라디아서 강해(9)/ 율법의 종말(2장 14-17절)

율법의 종말(2장 14-17절) 1.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이며 예루살렘의 기둥이자 으뜸가는 지도자였지만 바울은 이 베드로를 가차없이 책망하고 있다. 베드로의 이방인에 대한 선교신학에 대한 미숙으로 책망을 받은 것이었다. 초대교회는 현실적으로 두 문화권 속에 있었다. 하나는 유대사람이 모이는 교회요 또 하나는 비 유대 사람, 다시말해 이방인의 교회였다.  2.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이 예수를 믿기 위해서는 지켜야할 규범을 정하였는데 그것은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맹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는 것이었다(행15:20). 즉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은 굳이 할례 받을 필요가 없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던 사람은 그냥 주일을 지키면 된다고 허락했다.  3.현대교회도 사실 스타일이 서로 많이 다르다. 그러나 서로 ..

카테고리 없음 2024.07.28

갈라디아서 강해(8)/ 신앙인의 외식(2:11-13)

갈라디아서 강해(8)/ 곽선희 목사 신앙인의 외식(2:11-13) 1.복음이란 무엇인가? 적어도 바울과 신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복음의 골자는?(1)첫째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복음은 출발한다. 인간의 방법,인간의 의, 인간의 노력, 인간의 공로로써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물에 빠져 떠 내려가는 사람이 물위로 올라가려고 제 손으로 제 머리끄덩이를 아무리 잡아당겨도 소용이 없다. 이것을 전적 타락(Total corruption)이라고 한다. (2)둘째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그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3)세째는,‘오직 그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의를 받아들이고 또 ..

신약성경 2024.07.28

갈라디아서 강해 (7)/ 내게 주신 은혜(갈라디아서 2:6-10)

갈라디아서 강해 (7)/ 내게 주신은혜(갈라디아서 2:6-10) 1.신앙은 모름지기 수직적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가 바로 되어야 한다. 이는 독립성과 사회성의 문제이다. 이 조화를 잘 이루어가는 것이 신앙이다. 바울은 하나님과의 관계, 즉 신앙과 신학에 관한한은 절대 양보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도들과의 관계나 다른 교회와의 관계 등 선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원만하고 폭넗은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2.그러면 왜 바울은 하나님과의 관계인 신앙과 신학에 흔들림이 없었던 것일까? 어떻게 누구의 협력도 없이 혼자서 그 확고한 믿음을 변함없이 지켜 나아갈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4 가지가 바탕이 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1)계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신약성경 2024.07.28

갈라디아서 강해(6)/ 복음의 자유성(2장1-5절)

갈라디아서 강해(6)  복음의 자유성(2장1-5절) 1.바울에게는 사도된 사명이 있었다. 이 사명과 역할은 오늘날까지 매우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지만 이방에 전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히브리 문화권 아에서 계시된 복음을 깊이 이해하고 이것을 다시 당시의 문화인 헬라 문화라는 그릇에 담아서 전하는 사명이었다. 복음은 변하지 않는데 그것을 담을 그릇, 곧 문화는 다른 것이었다. 복음은 똑같다. 예수도 같다. 신앙고백도 같다 그러나 스타일은 다를 수 있다.  2.오늘 본문은 유대 스타일과 이방의 스타일이 부딪혀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교회사에서 제일 큰 분열은 동서 로마이 분열이었다. 바로 헬라와 라틴의 분열이었다, 카톨릵과 희랍정교의 분열이었다. 그 분열은 스타일의 차..

신약성경 2024.07.28

갈라디아서 강해(5)/ 사명자의 길(1:18-24)

갈라디아서 강해(5) 사명자의 길(1:18-24) 1.바울은 원래 철저한 기독교 박해자였다. 그러한 그가 예수를 믿고 예수의 제자가 되고 사도가 되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를 만났고 예수의 음성과 지시를 들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사건을 계시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소명(召命)으로 압니다. 그리고 그의 가슴속에 소중한 은혜로 기억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이 소명을 사명으로 받아 한평생 헌신하게 된다. 그러면 바울은 은혜받은 후 소명의 후속행위, 즉 사명자로서 어떻게 살아나갔는가?  2.첫째로 그는 아라비아로 갔다. (1)이는 그가 종교적 경험을 지식화 한 다음에 신학화하고 그 다음에 사명화하여 마침내 행동화 한 것이다. (2)바울의 신학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

신약성경 202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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