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민지원 기피, 위험한 작전도 ‘부모동의 필수’

5월은 ‘농사(農事)의 계절’이다.
여러가지 농사일 중 가장 많은 인력, 사람이 필요한 것은 모내기였다. 수십명이 한꺼번에 논에 들어가 줄을 대고 일일이 손으로 모를 심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매년 봄 볕집모자에 바지를 걷은 채 모내기를 하고 논두렁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은 대한민국의 봄을 상징하는 풍경이기도 했다.
요즘은 이양기 한 대가 수십명의 일을 대신해주는 등 기계화로 농사에 일손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봄철 농촌에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과거, 경기 북부와 강원도의 모내기는 군인들이 전부 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드넓은 철원평야 같은 경우, 인근 군부대 장병들 없이는 모내기가 불가능했다.
어느 집 모내기를 먼저 해주느냐를 놓고, 논 주인과 부대 간부들간에 ‘짬짜미’가 벌어질 정도였다. 군인들 대부분이 농촌 출신이다 보니, 모내기 같은 농사일도 척척 잘했다.
장병들도 이같은 대민지원을 즐겼다. 부대에서 훈련하는 것 보다 농사일이 편했고, 특히 군대의 ‘짬밥’ 대신 농가에서 제공하는 ‘사제밥’에 막걸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즘 군인들의 모내기 지원은 완전히 없어졌다. 이양기의 대중화로 더 이상 모내기에 많은 인력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못지않게 농사일 보다는 훈련같은 부대생활이 훨씬 편하고, 짬밥의 식단이 사제밥 못지않게 좋아진 것도 큰 이유다. 이제는 일반 병사들도 평일날 외출해서 삼겹살에 소주정도는 마실 수 있는 월급도 받는다.
군인들의 농사일 대민지원은 거의 없어졌지만, 마을에서 긴급히 인근 군부대에 지원을 요청하는 일은 자주 있다. 밤사이에 폭우가 쏟아져서 도로와 하천둑이 유실되면 긴급히 복구를 해야만 하는데 젊은 일손이 없다보니 군부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의 한 마을 이장은 작년 초가을, 밤새 폭우로 마을은 물론 군부대 인근도로까지 포장이 벗겨지고 돌로 뒤덮이자 군부대에 복구지원을 요청했다.
그런데 다음날 나타난 군부대 장병은 10명이 채안됐다. 일반 병사는 한명도 없었고, 하사부터 상사까지 모두 간부, 직업군인들이었다.
병력을 인솔해온 상사는 이장에게 “병사들까지 왔으면 수십명은 됐을텐데 그냥 우리끼리 왔다”고 말했다. 이 부대에서는 과거 군인들을 대민지원에 동원하는 것을 두고 한 병사가 부모에게 전화로 불평을 하자 부모가 국방부에 직접 항의하는 바람에 말썽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몇 달전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작전 및 훈련과 관계없는 일체의 대민지원을 중단하고, 불가피할 경우 반드시 상급부대에 보고하고 허가를 받을 것”이라는 지시가 하달된 상태였다.
그러다보니 이 부대는 병사들을 상대로 자원자를 구하지 않고, 부대장과 간부들끼리 “우리만 다녀오자”면서 나타난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군대는 일반 병사들을 위험한 임무로부터 적극 격리시키고 있다. 육군의 경우 군인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사격훈련외에 위험이 따르는 임무에 간부가 아닌 병사를 투입할 경우 반드시 부모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공병부대 병사를 지뢰매설 또는 제거 임무에 투입할 경우 반드시 사전에 본인은 물론 부모에게 이를 설명해서 동의하지 않는 병사는 제외시키는 식이다. DMZ에서 실탄과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수색 정찰임무를 하는 전방사단의 수색대대원이 되기 위해서도 해당 병사의 자원(自願)은 물론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해군은 지난 2010년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을 다시 건조해 지난해 호위함으로 재취역 시키면서 일반 병사는 없이 간부들로만 운용하도록 했다. 해군은 호위함 뿐 아니라 1,2차 연평해전 등 서해 NLL에서 북한군과 자주 전투를 벌이는 고속정도 간부들로만 작전을 펼치는 시범운용을 하고 있다.
각종 미사일 등 첨단장비에 대한 전문성 유지 등 임무숙달 못지않게 해병대 채상병처럼 원해서 군인이 되지않은 일반 병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다.
최근 국회는 해병대 채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병사를 급류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위험한 임무에 투입하면서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것에 대한 지휘관들의 책임과 사후 대통령실 등 군 수뇌부의 은폐 여부를 규명하겠다는 것이다.
6·25전쟁을 겪은 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건강한 젊은 남성은 모두 의무적으로 군대에 보내 나라를 지키게 하는 국민 개병제(皆兵制)를 실시해왔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병력자원이 점차 줄어들고, 병사들 대부분이 외아들, 독자(獨子)가 되다보니 군인이지만 위험한 임무는 가급적 피해야 하는 딜레마가 가중되고 있었다.
여기에 해병대 채상병 사건까지 발생함으로써 추후 병영(兵營)문화는 물론 군 전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모병제 전환, 여성 군복무 문제 등 대한민국 군대의 미래를 위한 근본적이고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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