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정신: 민주와 법치의 조화
민주국가의 중심적 가치는 주권자인 국민의 인권(기본권)이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며, 국민을 위한다는 것은 곧 국민의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면서 그 보장 및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권 중심의 헌법질서를 만들어가기 위하여 다양한 헌법원리들이 인정되지만, 그 중심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이다. 헌법의 양대 기본원리, 헌법질서를 이끌어가는 쌍두마차로 일컬어지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마치 바퀴 빠진 마차처럼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사에 기초하여 국가질서를 형성하는 헌법원리이다. 이를 위해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수렴하는 다양한 민주적 장치들이 만들어졌다. 특히 현대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의 형태로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의제를 중심으로 정당의 역할, 선거를 통한 정당성의 부여, 선출된 대표자에 대한 각종 통제 등이 매우 복잡한 메커니즘 속에서 정교하게 작동하여야 한다.
법치주의는 민주적 정치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법을 통해 다시금 정치의 안정성과 내용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기능을 하고 있으며, 헌법의 중요 가치들이 다수에 의해 침해되는 것을 막으며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다수결을 앞세워 포퓰리즘에 빠지기 쉬운 민주주의를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마치 정치와 법, 입법부와 사법부가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상호 통제의 기능을 하듯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한 헌법은 민주의 과잉도, 법치의 과잉도 아닌 양자의 균형과 조화가 잘 이루어진 헌법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의 과잉으로 법치가 힘을 잃게 되면, 포퓰리즘이 득세하게 되고, 자칫 나치나 베네수엘라 등과 같이 국가 전체를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다. 법치의 과잉으로 국민들의 의사가 존중되지 못하면, 법이 인권보장이라는 본질적 목적을 망각하고 법을 위한 법, 법률가를 위한 법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다극화된 사회에서는 합리적 균형과 조화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더욱이 오늘날 대한민국처럼 진영 갈등이 극단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애초에 여러 가치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균형과 조화를 찾으려는 사람보다 특정한 진영의 논리에 매몰되어 독선적인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탄핵 만능주의, 헌법상 권한이니 마음껏 행사한다?
최근 이런 문제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거대 야당에 의한 탄핵소추의 남발이다. 헌법 제65조에 명시된 탄핵소추권은 국회에 있는 것이 분명하며, 과반 의석을 갖고 있는 거대 야당은 –대통령을 제외한 경우- 일방적으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의결까지 할 수 있다. 이를 과반 의석의 힘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의 탄핵소추 남발에 대해서는 탄핵소추권의 본질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가 하면, 이에 대해 민주당은 헌법상의 요건과 절차를 거쳤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대응하고 있다. 심지어 그 위헌성 또는 불법성이 지적되는 사항에 대해서도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태연하게 답변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탄핵은 예외적이고, 비정상적인 통제수단이다. 즉, 고위공직자들의 불법이 심각하게 문제되고 있음에도 일반적인 징계절차를 통해 파면시키기 어려운 경우에 탄핵을 통해서 고위공직자를 파면시킬 수 있도록 헌법이 특별한 예외적 징계수단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탄핵제도는 미국보다 독일의 탄핵제도가 가깝다.
미국의 탄핵제도는 하원이 소추하고, 상원이 결정한다. 탄핵의 요건은 헌법이 정하고 있지만, 소추뿐만 아니라 결정까지 정치적 기관인 의회가 담당하기 때문에 정치적 탄핵제도라고 지칭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탄핵제도는 국회에서 소추할 뿐, 탄핵의 결정은 사법기관이 헌법재판소에서 한하는 점에서 독일과 유사하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탄핵제도는 사법적 탄핵제도이기 때문에 엄격한 법적 기준과 절차에 따라 헌법재판소에서 사법적 판단을 통해 결정한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헌법재판소 판례에 의해 확인된 바와 같이 정치적 무능, 정책의 실패 등 정치적 평가는 탄핵심판의 고려사항이 아니며, 오직 헌법 제65조에 규정된 바에 따라 직무집행에서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 것만이 탄핵심판의 고려 대상인 것이다.
더욱이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판례에 따르면, 그러한 헌법과 법률의 위배는 탄핵대상자를 파면시켜야 할 정도의 중대한 불법이어야 한다. 즉, 가벼운 불법을 이유로 탄핵결정을 내려서 파면하는 것은 비례성원칙에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탄핵심판에서는 매우 중대한 불법이 있는 경우에만 탄핵소추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최근 탄핵소추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런 점들이 충분히 반영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탄핵제도가 미국과는 달리 사법적 탄핵이라는 점을 무시하고 미국보다도 오히려 더욱 심하게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탄핵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건 및 민주당 돈봉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에 대한 표적 탄핵은 말 그대로 정치공세이며, 검찰 수사에 대한 방해이며 압박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탄핵소추권이 헌법상의 권한이니 마음껏 행사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도 헌법상의 권한인데 마음껏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민주당은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 행사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 자신의 탄핵소추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탄핵의 본질과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탄핵소추 남발의 문제점
더욱이 민주당의 검사 탄핵은 앞서 검토한 바에 비추어 볼 때, 불법의 의심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증거를 갖춘 것도 아니고, 불법의 중대성이 인정되어 탄핵소추 사유가 헌법재판소에서 사실로 밝혀진다 해도 탄핵소추에 대해 인용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무리하게 탄핵소추를 계속하는 의도는 어디 있을까?
이미 임성근 전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가 헌법재판소에서 각하되었고, 이어서 안동완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도 기각되었다. 특히 안동완 검사의 경우에 비교할 때, 이번에 새로 탄핵소추가 발의된 4명의 검사들에 대해 혐의가 더욱 중대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런 와중에 이재명 대표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을 꼭 집어서 표적탄핵이라니….
아마 민주당도 이번 검사 탄핵은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탄핵소추를 발의한 것은 해당 검사들을 직무에서 배제시킴으로써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를 지연시키고, 나아가 검찰에 대한 강한 압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관철 가능성이 별로 없음에도 검찰청법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 것도 같은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언론에서 검사 탄핵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많아지면서, 민주당은 탄핵소추안을 본회의에서 바로 의결하는 대신에 법사위에서 조사하는 것으로 결정함으로써 시간을 확보하고 있다. 자칫 예상보다 강한 후폭풍이 닥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민주당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고 하니, 국민 여론에 따라 무리하게 강행하지 않을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분명한 점은 이번 검사 탄핵은 민주당의 무리수가 분명하다는 것이며, 그로 인하여 민주당의 탄핵 남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크게 나빠졌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뻔하게 이재명 방탄을 위한 탄핵임을 드러내면서 국민들이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도대체 국민들을 얼마나 무시하는 것인가?
이미 검사 탄핵이라는 무리수를 둠으로 인해 민주당의 지지율이 내려가고 있다는 언론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 탄핵 청문회를 열어서 검사 탄핵에 대한 물타기를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것도 큰 호응을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민주당의 의석수로 발의는 할 수 있지만 의결하기 불가능한 상황에서 또 하나의 정치공세일 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법사위에서 증인 채택과 관련하여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것도 문제다. 국회법 제13조에 따른 조사건, 국회법 제65조에 따른 청문회건 증인 채택에 관해서는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고, 이 법률이 준용하는 형사소송법 제148조에 따라 증언거부권(묵비권)이 인정되는데, 이에 해당되는 검사들 및 김건희⋅최은순 여사 등의 증인 채택 및 출석 강제는 불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남용을 절제할 것인가? 국민의 심판을 기다릴 것인가?
헌법상 국회의원의 특권으로 인정되는 불체포특권도 이른바 방탄국회라는 이름으로 그 오남용이 문제되면서 국민들은 특권 폐지를 주장하였고, 국회 내에서도 특권 포기에 관한 서명운동까지 있었다. 그런데 이재명 방탄을 위한 탄핵소추권의 오남용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국회를 좌지우지하는 과반 의석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의 정치적 힘이 강력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힘이 국민 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외면할 경우 민주당의 힘은 급속히 약화될 것이며,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 후폭풍으로 당시 민주당이 크게 기울었던 경험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
그때와 달리 총선 직전이 아니라 직후이고, 당분간 선거를 앞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재명 방탄을 계속하려면 적어도 다음 대선까지 유사한 문제들이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데, 국민들이 시간 지나면 금방 잊어버릴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지금 민주당이 주도하는 탄핵 정국은 그 자체로서 국정의 혼란 및 탄핵소추 대상자들이 담당하는 업무의 연속성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낳고 있지만, 그것이 정부⋅여당의 부담일 뿐이고, 민주당에는 아무런 부담이 아니라고 볼 것은 아니다. 탄핵 정국이 장기화되면 될수록 국민들의 마음은 민주당에서 떠날 것이고, 다음 선거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제 민주당은 선택해야 한다. 탄핵소추의 오남용을 절제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의 심판을 기다릴 것인가?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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