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죽으리라 1부 단3:17~18 ▣ 안이숙 여사 관련글 모음
안이숙 사모
살아있는 순교자로 알려진 안이숙은 1908년 평안북도 박천에서
무역상을 경영했던 부호 안중호의 넷째 딸로서 팔삭둥이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상당한 재력으로 풍요롭게 자라난 그녀는
아들이 없어 가문의 대를 잇지 못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불협화음을 경험하며 자라게 됩니다.
자라면서 총명이 남달리 뛰어난 안이숙은,
박천 공립보통학교를 거쳐 평양 서문여고를 졸업한 후에
그 당시 보통 사람들로는 더구나 여자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본 유학을 떠났으며
일본 경도여전과 귀족학교인 동경가정학원 연구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러므로 일본에서의 생활은 그 후 안이숙의 사역과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이숙이 21세가 되던 1929년에 귀국하여
대구 여자 고등보통학교 교원으로 임용되어 근무했고,
1937년에는 평북선천 보성여학교에서 음악 및 일어교사로 교편생활을 했습니다.
한반도가 신사참배문제로 요동치기 전까지 안이숙은
그런데로 큰 어려움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1930년대 들어 일본이 신사참배를 강요하게 되었고,
안이숙이 근무하던 선천 보성여학교는 선교사가 세운 기독교 계열의 학교였지만
학교를 경영하기 위해 동방요배를 허용한 상태였습니다.
안이숙 선생은 음악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음악을 통해서 신앙을 넣어주는 것이
큰 즐거움이오 보람이었습니다.
특히 약 40명이나 되는 음악부원들은, 음악을 좋아하고 잘하며, 성적과 품행이 우수했기에
그들의 인도자인 안 선생은 모든 학생들과 선생들의 주목을 끌게 되었습니다.
보성 여학교는 매월 첫날 교사와 학생들이 신사참배에 참여했지만
안이숙은 매월 초하루날 아침마다, 선천의 남산 위의 신사엔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안이숙 선생을 본받은 적지 않은 학생들이, 동방요배를 하는 조회에 나오지 않았고
산에 올라갈 때는 모두 도망쳐서 숨어버려 신사참배를 거절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사참배를 격려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일본인의 비위를 맞추어서
학교를 계속 경영하고자 하는 몇몇 선임 남자선생들이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래도 신사참배를 안 하고 도망가는 학생들은 점점 더 생겨났고
그런 학생들은 안이숙 선생을 따랐습니다.
하루는 다른 선생들이 자기들끼리 비밀리에 쑥덕쑥덕 하더니
안이숙 선생을 빼놓고 직원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가결하기를, '모든 학생들이 안 선생 말만 듣고, 안 선생만 존경하고
자기들은 놀리고 거역하고 업신여기고 있으니, 안 선생을 기어코 신사참배 시켜야 한다.
만일 그렇게 못 하면 자기들이 선생 노릇을 그만두든지
안 선생이 사직 하든지 해야 한다.'
안이숙 선생은 선생들의 공론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언제나 쉬지 않고 바쁘게 일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어머님께 모든 얘기를 해 드리고,
그런 일을 위하여 항상 간곡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학교의 공기는 점점 더 노골화되고
심지어 학생들이 아침에 그녀를 등교길에서 만나면
먼 데서도 보고 뛰어와서 '굿모닝!' 하고 인사를 하면서도
다른 선생들을 보면 인사도 안 하고, 슬쩍 피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되니 선생들은 모두 다 분개했고
특히 여선생 중에서도 안이숙을 시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멀리하려는 선생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징조를 통해서 안이숙은, 믿음을 지키는 것과, 지키지 않는 것의 차이가
이렇게 나타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믿음을 지킬 때는.. 먼저 하나님이 평안을 가는 곳마다 주시고, 마귀도 순종케 하셨지만,
믿음의 절개를 잃으면,, 평안이 없고, 마귀가 조롱하고 멸시하고, 놀려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초하룻날이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섰고
선생들은 모두 헤어져서 신사참배를 안 가려고 도망가서 숨은 학생들을
각 교실과 기숙사와 창고와 심지어 화장실에까지 가서 붙잡아가지고 왔습니다.
그때 안 선생은 피아노실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뚜벅뚜벅 구두 소리가 나더니
누가 찾아 올라왔습니다. "여기 안 선생이 있어요?"
그녀는 대답 대신 문을 열고 복도를 나가니, 흥분한 얼굴의 교장이 서 있었습니다.
"오늘 (매달) 초하루인 줄 아시죠? 초하루마다 우리 학교 선생들과 학생들이
선천 남산으로 신사참배 가는 것 기억하지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교장은 계속해서 날카로운 음성으로
"나도 크리스천이요. 다른 모든 선생들도 다 크리스천이고,
안 선생 혼자만이 크리스천인 게 아니지 않소?
또 학생들도 모두 크리스천 가정에서 거의 다 왔어요.
이 학교 자체가 기독교 학교요.
그런데 우리는 이 학교를 경영해 나아가기 위해서
일본인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안 선생만 법에 복종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니
학생들이 모두 안 선생만 좋게 알고, 다른 선생들은 다 멸시해요.
우리 학교가 계속 유지되려면, 선생들이 모두 태도를 같이 해 주어야 되지 않겠어요?"
안이숙 선생은 교장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조용히 말했습니다.
"교장선생님, 그러면 저는 사직을 할 테니까 염려 마세요."
"안 선생, 오늘이 초하루인데, 산에 가지 않고 사직 한다면 일이 어찌되겠어요?
더욱이 군수한테 엄한 명령이 내려와서, 오늘 단 한 사람도 빠지면 안 된다고요.
우리가 지금까지 학교를 경영하기 위해서 일본인에게 복종한 것인데
생각 잘 하지 않으면, 우리 학교는 폐교 당하게 될 것이요!"
하면서 학교 문제까지 돌리려고 했습니다.
안 선생은 수백명의 자녀들을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교육한다는 책임을 가진 교장이
이렇게 말하는데,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흥분하지 않고 조용히 분명한 어조로
"그렇다면 염려 마세요. 저도 오늘은 산에 올라가지요.
산에 올라가서 크리스천은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더 분명히 보여드리지요."
교장과 함께 나오는 안 선생을 본 학생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했습니다.
끝내 굴복한 줄로 알고, 어떤 학생들은 실망했고, 또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이도 있었습니다.
안이숙은 학생들 앞에 서서 걸어가면서, 눈은 하늘 한 곳만을 주시하고
다니엘서를 생각하고 입으로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브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않을 것을 아옵소서" 단3:17~18
안이숙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라는 이 구절을 자꾸자꾸 외우고
또 수십번 되풀이해서 외웠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마음이 강해지고, 자신에게 다니엘의 세 친구들과 같은 기회가 왔다는
것을 생각하자 굉장한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땅 위에 가득한 우상들을 모조리 뿌리뽑을 수 있는 특권까지 주소서' 기도하니까,
이 더러운 귀신들을 모두 불 지르고, 칼로 목을 베어 없애버리고
그 위에다 변소를 만들만큼의 용기도 생겼습니다.
'자 나와라, 귀신들아 나와라. 일본에 가득 차고, 이 땅 위에 가득 찬
수없이 많은 귀신들아 나와봐라. 이 몸이 불에 타서 없어질지라도
나는 너를 섬기지 아니하고, 절하지 아니하고, 나는 너를 부수고 불을 질러 태워 없앨 것이다!'
▲안 선생은 이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기 모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학교 선생과 학생들뿐 아니라
이 선천 고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경찰과 헌병이 두려워 앞서 올라와 있었습니다.
안이숙 선생은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부를 수 없으나, 그래도 제법 큰 소리로
「주 예수 이름 높이여 다 찬양하여라
금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힘있게 낮은 음성으로 발걸음에 맞춰서 4절을 전부 불렀습니다.
'오 주여, 오늘 이 여종이 분명히 예수님께 속하고, 마귀에게 속하지 않은 것을
나타내려 하오니, 힘을 주시옵소서!'
그러나 자신의 기도만 가지고는 어딘지 약한 것만 같아서
소리를 내어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문을 외웠습니다.
몇 번을 외운 후 마태복음 5장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도 암송했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힘써 외운 성경 말씀이
이 때를 따라 속에서 울려 나오고, 힘을 주고, 기쁨을 샘솟게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가지각색의 음식을 창고에 준비해 놓았다가,
먹고 싶은 것을 내다가 먹는 것 같았고,
또 가지각색의 물건을 쌓아놓고, 필요에 따라서 척척 쓰는 거부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녀는 성경 구절을 외울수록 힘이 나고, 빛이 나서, 생기가 돋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산 위에 다다랐습니다. 산 위에서 도착해서 살펴보니
벌써 산에는 일본인은 물론, 모든 시민들과
특히 이름 있는 목사와 장로, 집사들, 각 학교 선생들과 학생들,
군청과 각 관청의 공무원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앞에는 높은 단상을 만들어 놓고, 군수와 이 고을의 유지들이 둘러섰고
경관과 사복한 형사들이 각 열을 호위하고 서 있었습니다.
안이숙은 학교 대열의 제일 선두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중년의 관리가 일본 말로 "차렷!" 하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모두가 동쪽을 향해서 차렷 자세로 섰습니다.
안이숙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호령 소리가 크게 들려왔습니다.
"살아있는 신이신 천왕 폐하와 황태신공을 향해 최경례!"
*최경례 : 가장 존경하는 뜻으로, 정중히 경례함
그러자 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호령과 동시에 허리를 90도로 숙여서
동쪽을 향해 절했고, 그 자세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안이숙은, 처음부터 섰던 그대로 똑바로 하늘만 바라보면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바로!" 하는 호령이 울려퍼지니
모든 사람들은 비로소 머리를 들고 허리를 똑바로 폈습니다.
이것으로 오늘의 신사참배는 끝난 것이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한 안이숙은 점차로 불안해졌습니다.
그 모든 경관들이 천황폐하와 황태신궁에게 최경례하는 것을 거역한 그녀를 보았을 것입니다.
'일이 앞으로 어찌 될 것인가?' 하는 불안은 차차 더해가기만 했습니다.
자신을 잡아다 두들겨 패고, 코에다 고춧가루 물을 붓고,
더러운 욕설을 퍼부을 것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기에, 이제 용사가 되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임금이신 예수님의 지도에, 절대 복종해서
하늘나라에 들어설 그 순간까지 싸우고 또 싸워야만 했습니다.
안이숙은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구름들이 모두 자신을 응원해 주는 것 같았고
삼라만상을 둘러보니 모두 자신 편인 것 같았습니다.
마음속에서는 조용히 찬송가가 흘렀습니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유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뇨. 반드시 이기리로다」 찬585장
이 찬송을 통하여 마르틴 루터의 심정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루터는 굉장한 학자이고 지도자였지만, 자신은 겨와 같은 미약한 존재였습니다.
루터가 주님의 힘이 그만큼 필요했다면,
연약한 자신은 주님의 힘이 더 많이 필요하기에,
주님께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하여 교원실에 들어서니, 벌써 형사 네 사람이 안이숙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님, 호랑이 넷이 나를 먹으려고 왔습니다' 하고 속으로 기도를 하며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섞인 네 형사는 '안 선생님, 우리와 함께 잠깐 다녀오시죠?'
하고 일본어로 말했습니다.
안이숙은 의외로 그들의 공손한 말씨와 태도에
다시 한번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녀의 양 편에 한 사람씩 호위하듯 따라왔습니다.
그녀는 형사들에게 끌려가는 동안,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시편 91편을 외우면서 걸어갔습니다.
「환란 때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시50:15
속에서 이 말씀이 힘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매를 맞고 안 맞는 것도 주님께 달렸고,
견디고 못 견디는 것도 주님께 맡기고,
자신이 갈 길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니
강한 평안이 마음속에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형사들은 그녀를 군수 사무실로 데려갔습니다.
군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안이숙은 벌써 어떤 강한 힘을 얻고 있었습니다.
군수는 험악한 얼굴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엄청나게 위세를 부리는 태도로 "자네가 안 선생인가?" 하였습니다.
그의 눈은 독사의 눈초리 같고, 그 말소리는 당장이라도 삼켜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는 포학스럽고 천박하고 고약스러웠으며
서툰 일본 말로 "자네, 오늘 산에서 무엇을 했는가 기억하겠나?
대체 얼마나 큰 힘을 가졌기에 무법한 행동을 했나?
대일본제국의 경찰의 힘을 자네가 당해 나갈 수 있어?"
그 말이 떨어질 때, 안이숙의 마음에는 '주님이 내 편이시다'는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군수는 곧 감옥에 쳐넣을 것 같은 기세였습니다.
다시 군수가 포악스런 욕설을 퍼붓기 시작하자, 마침 그의 책상 위에 전화가 울렸습니다.
전화기를 집어들 때까지만 해도, 교만이 넘쳐 흘렀으나
전화를 받자 군수는 갑자기 얼굴색이 변하고 태도가 변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공손히 심각한 표정으로 "네, 네" 하는 대답만 거듭했습니다.
말이 길어질수록 그의 얼굴 색은 점점 더 변했습니다.
그의 눈빛을 보니, 당황스러운 빛이 역력했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돌아서서 서류 캐비넷을 급하게 뒤졌습니다.
그리고는 두꺼운 서류 한 장을 꺼내더니,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그가 나가버린 후, 안이숙은 몇 분 동안을 혼자 그대로 서 있다가
군수실 안을 조용히 돌아보았습니다. 아무도 없고 혼자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주여, 저를 숨겨주소서!' 하면서 그 방안을 나와버렸습니다.
옆방에는 여러 사람들이 사무를 보고 있었지만,
모두가 자기 일에만 정신이 팔린 듯 무관심했습니다.
안이숙은 담대하게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감사드렸습니다.
이제 그녀는 두 주먹을 굳게 쥐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이제는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겠습니다. 죽기까지 충성하겠습니다'
하고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와 어머니의 친구가
대문을 걸어 잠그고 엎드려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걸려있는 대문을 두드리니, 어머니가 뛰어나와 문을 열고,
그녀를 보고 깜짝 놀라며
"아이고, 어서와라. 네가 잡혀갔다고 해서 우리는 모여서 기도를 하고 있었어!"
방에 들어서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는 초대 기독교인들 같았습니다.
놀라며 반가워하는 이들에게 모든 일을 설명했습니다.
어머니는 급한 어조로, "성경에 '이 성에서 핍박하면 저 성으로 피난하라'고 하셨으니
이제는 도망을 가는 수밖에 없다"고 하며 보따리를 꾸려주었습니다.
보따리를 꾸리는 동안 어머니는 쉬지 않고 "고맙습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아버지!"
하며 감사하였습니다.
안이숙은 이웃집 할머니의 헌 고무신을 얻어신고, 또 헌 옷을 얻어 입고
머리를 촌여자 모양으로 만들고, 화로에서 재를 집어서 얼굴에 바르고,
보따리 속에 성경책을 집어넣고, 밥을 몇 술 들고는, 집을 나와 정거장으로 향했습니다.
어머니가 멀찍이 뒤를 따라오다가
안이숙이 무사히 정거장에 도착한 것을 보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정거장에 도착하여 보니, 마침 화물열차가 하나 와 있었습니다.
그 열차는 신의주까지 가는 열차이므로 차표를 사서 탔습니다.
혹시 승객 중에 형사나 경찰 앞잡이가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넓은 차 안에는 승객이 불과 열 명도 안 되었습니다.
한 노파가 혼자 앉아있는 자리 곁으로 가서 앉았습니다.
모두 촌사람들뿐인 듯,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이나 양복 입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안이숙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창문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황혼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집을 떠나, 주님이 지시하신 곳으로 떠나는 심정을 생각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헤매던 것을 생각했습니다.
자신도 다윗 같이 강하고 담대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의주행 완행열차는 덜컹거리며 밤새도록 갔습니다.
한 번 정거하면, 아무리 작은 정거장에서도 수십 분씩 머물렀다가 떠났습니다.
기차가 멈출 때마다 형사나 경찰 스파이가 차에 오르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졸였습니다.
신의주 역에서 내려, 대합실 한쪽 구석에 앉아
'혹시 아는 사람 있지 않을까?' 하고 살펴보았습니다.
아침이 밝아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추워서 떨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신의주가 종착역이니만큼 신의주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는데
번개같이 떠오르는 것은, 애재자 임경신이 거기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침 7시가 되어 전화번호 책을 펴보았습니다.
임양의 오빠 이름으로 전화번호가 있었습니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얼마 있다가 반가운 임양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나 안이숙이야, 보성에 있는"
"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새벽에 오셨어요? 소식도 없이"
하고 반가운 음성이 그녀를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겨서 급히 왔는데, 좀 만날 수 있어? 임양 집에 내가 가도 될까?"
"거기 계세요. 제가 가서 집으로 모실 게요."
안이숙은 떨리는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고
얼굴을 비로소 수도에 가서 씻고,
머리도 평상시와 같이 틀어올리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옷과 헌 고무신이 몹시 부끄러워서
자신의 꼴을 경신이가 보면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초조했습니다.
경신이 도착했습니다.
깜짝 놀라서 안이숙을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안이숙은 형사가 잡으러 와서, 도망 온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경신은 "여기도 스파이가 많아요. 그래도 잘 오셨어요."
하더니 인력거를 두 대 불러서, 자신을 태우고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인력거에서 내린 경신은 긴장되어 있었고, 자기 집 골방으로 인도하더니,
이불을 덮어 싸 주었습니다.
따뜻한 조그마한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다시피 하고도 덜덜 떨기만 했습니다.
그는 곧 부엌으로 내려가 밥을 짓기 시작했고, 그동안 이숙은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밤새도록 완행기차에 시달렸던 몸이, 따스한 방에서 이불 덮고 자니 몸이 풀렸습니다.
식사를 끝낸 후 집안을 살펴보니, 예상 외로 분주한 집이었습니다.
알고보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아주 조그만 집에서 가난하게 살았는데
큰오빠가 젓가락 공장을 해서 군대에 납품 했더니
가격과 품질이 양호하다고 인정 받게 되어, 급히 공장을 세우고
사람을 수십명 쓰고, 집도 큰 집으로 옮기게 된 것이었습니다.
경신은 안이숙 선생을 깊은 동정을 가지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습니다.
"참 잘 오셨어요. 여기도 신사참배 하지 않은 교인들이 수십 명 갇혔답니다.
스파이들이 많아서 저도 요즘 예배당에 잘 나가지 못해요.
예배드리는 것이 습관이 되니, 주님은 어디서나 은혜를 주시더래요." 하며 위로했습니다.
경신은 자신의 새 옷을 입히고, 버선과 신발까지도 다 새 것으로 준비해 주었습니다.
안이숙은 경신에게 자신이 지나온 모든 일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나 같은 것이 주님을 위해서 싸움의 전선에 나섰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신통해!
나는 이미 나섰으니 물러갈 수 없어.
이제 죽어야 될 판인데, 어떻게 죽어서 예수님 이름을 빛나게 할지...
이것이 제일 큰 문제야! 물론 하나님이 도와주시니까 걱정할 것은 없지만,
죽어도 잘 죽기만을 위해 싸워야 해!"
이 말에, 경신은 크게 감동을 받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대로 다 도울 테니 염려 말라고 했습니다.
경신의 집 사업을 축복해 주어서 큰 집으로 이사해 왔기 때문에
이와 같이 조그만 방이나마 지낼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안이숙은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평탄한 길을 열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또 언니와 어머니에게도 전화를 드려, 무사히 와 있다고 알려주고 안심시켰습니다.
언니는 이숙의 소식을 듣고, 곧 어머니를 자기 집으로 모셔오겠다고 했습니다.
▲안이숙은 신의주 제자의 집에 더 있는 것이 마음에 짐이 되어
언니가 사는 정주로 갈 것을 결정하고 전화했습니다.
역으로 마중 나온 언니의 사환에게 짐을 맡기고 집으로 들어가니, 모두 반가워했습니다.
마침 그 시간에도 옆방에서 기도하고 계시던 어머니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언니 집은, 가루 공장과 솥, 당면, 비누 등을 만들고 있어
공장도 여기저기에 많았고, 서기와 여러 직공들이 들락날락하며
또 거의 매일같이 여러 손님을 청해서 식사 대접을 하는 일과
여러 사람이 찾아오고 가고 하기 때문에, 조용한 방이라고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일이 많고 바쁘니, 집에 와서 신앙심도 없는 형부와 그의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언니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거처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가까운 농촌으로 가서 한참을 걷다 보니, 가까운 지점에 조그마한 집이 한 채 보였습니다.
깨끗한 초가삼간 집인데, 사람 사는 기척이 없었습니다.
방문을 열어보려고 하니, 모두 다 잠겨있고 부엌문만 열려있었습니다.
알아보니 어느 늙은 부부가 외아들을 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폐병에 걸려 약 1년 전에 그 집에서 죽었고,
또 한 달 전에 영감도 폐병으로 죽어서
할머니 혼자 그 집에서 살기가 싫어서 어딘지 나가버렸는데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또 언제 돌아올런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집 할머니는, 집에 모든 것이 다 헐값으로 팔아서 나가려고 했으나
사람들은 폐병쟁이 둘이 피를 너무 흘려서
그 집에 균이 가득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 집을 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할머니는 그대로 집을 버린 채,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안이숙은 이 모든 말을 들을 때, 그 집은 주께서 자신을 위해 예비해 두신 것임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언니는 진저리를 떨며, 더럽고 기분 나쁜 집에서 어떻게 살겠냐고 하고
승낙하지 않았습니다.
안이숙은 힘을 내어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언니, 머지않아 감옥에 잡혀 들어갈 텐데, 감옥이 이 집만 하겠어요?
아무래도 이제 감옥 말고는 갈 곳이 없게 됐는데
제가 이제 가릴 것이 뭐가 있겠어요? 저는 이 집에서 감옥에 갈 준비를 하는 거예요."
언니도 그제야 할 수 없이 승낙하였습니다.
일주일 동안 집을 깨끗이 수리하니, 보잘 것 없는 집이지만 살만하게 손질이 되었습니다.
이 집은 아주 외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찬송을 마음대로 방 안에서 부를 수 있었고
기도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초가집 곁에서 샘물은 밤이나 낮이나 졸졸 소리를 내며 흘렀습니다.
또 이 집에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고
길 가는 사람마저 들리지 않아, 조용하고 한적하기만 했습니다.
모녀는 늘 집 안에서 지냈고, 밖이라야 뜰에서 꽃과 채소를 심는 일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맑고 깨끗한 샘물을 퍼서, 채소와 꽃나무에 뿌려주었습니다.
이렇게 평온한 생활 가운데서 모녀는
주님을 모시고 앞으로 다가올 큰 위험에 대비해서 긴장된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하루는 어떤 전도부인이 지나가다가, 그들이 이 집에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반가워서 들어왔습니다. 그 부인도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고로,
현재 교회에 나가지 않고 숨어다니며 전도하는 부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토론하고 신앙을 고백하니, 서로가 반가웠고 기뻤습니다.
그 부인이 다녀간 후에는, 믿음을 지키는 청년들과 장로들, 목사님들도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산으로, 들로, 굴 속으로 숨어 다니며
낮에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니고, 촌락으로 내려와서 음식을 사 먹거나 요기를 하고
잠도 농가를 찾아가서 자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산에서 기도하며 밤을 새운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믿음의 용사요, 죽음을 각오하고 신앙을 지키는 거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어느 산골짝이나 어느 굴속에서도
신자가 숨어있지 않은 곳은 없다 시피 되었다고 하며,
때때로 산에서 찬송을 크게 부르면,
어디서인지 그 찬송에 화답해서 합창을 하게 되고
서로 가까이 다가와서 인사를 나누고, 주님 은혜를 감사하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 돈이 없어 음식을 사 먹을 수가 없어
솔나무 껍질을 벗겨 먹으며 연명하는 신자도 있다고 했습니다.
안이숙 선생은 그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더 힘을 얻었고
또 강한 믿음을 지키는 신자의 수가 적지 않은 것을 알게 되어
더욱 더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이 집을 찾아오면, 모두가 함께 눈물로
감옥에서 고생하는 성도들을 위해 탄원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안이숙 모녀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러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음식물을 보급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무엇을 부탁하기만 하면, 언니에게 말해서 도와주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안이숙의 집 소문이 신자들 중에 퍼져갔습니다.
그래서 현재 교회 나가고 있는 신자들 중에서도,
믿음으로 살아보겠다고 애쓰는 여집사도 찾아왔고
또 그들 중에서는, 언니와 친한 친구들도 있어서
또 찾아올 때마다 싱싱한 과일과 쌀과 고기를 준비해 가지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만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성경 토론을 하고, 진지한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숙의 살림은 늘 풍족하고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몇 사람씩 찾아오고 가는 사람들을 통해 듣는 세상의 소식은
험악한 것뿐이었습니다.
일본 경찰은 잡아간 신도들을 가두어 두는 것뿐만 아니라
심한 고문을 하여 죽지 않을만큼 고통을 주고
그 가족들을 천대하며 기묘한 술책으로 믿음이 약한 이들과 신자를 잡아서
스파이 짓을 시킨다는 소식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나쁜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안이숙은 가슴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습니다.
자신도 머지않아 일본 경찰에 잡혀, 그 무시무시한 고문을 당하고
천대와 학대를 받고 감옥에서 일생을 보내야 되리라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과연 그러한 심한 매질에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제일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금식하고 기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인간의 힘,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자신 앞에 가로놓인 것을
생각할 때, 전적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우선 처음에는 3일씩 금식했습니다. 극도로 저혈압인 그녀는
3일의 금식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3일째 되는 날은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가슴에는 불이 붙는 것 같고
참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언니가 금식기도 드리는 그녀에게 강권하기를
물이라도 조금씩 마시면서 하라고 했지만, 쉬운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금식 중에는 몸이 허약해지고 기운이 없어져 기도도 잘 못할 형편이었지만
금식기도가 끝난 후에는, 언제나 놀라울 만큼 힘이 나고
믿음이 굳세지고 확실해지고, 성경을 읽으면 더 깊이 주님 말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믿음으로 오는 위로는, 참으로 크고도 놀랄만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도
더욱더 깊어가고 은혜는 충만해지기만 하였습니다.
얼마 동안 쉬었다가 또 3일간 금식기도를 시작하고
또 쉬어서 몸이 회복되면 계속했습니다.
3일 금식이 습관된 후엔 7일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금식 후에는 정말 놀라운 힘을 얻었습니다.
10일간 금식을 할 때는, 6일째부터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어머니가 입에 물을 넣어주어서 받아마시니, 겨우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금식은 그야말로 죽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힘을 얻은 후에 그녀의 시야에 비치는
모든 대자연의 신비는, 주님의 오묘하신 능력을 더 밝히 발견케 해주었습니다.
P2, P3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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