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성경은 말라기로 끝이 난다.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였다. 하지만 아직 바사의 식민지였고, 나라를 재건할만한 힘이 없었다. 그저 바사제국이 다스리는 한 변방 지역으로 남아있었다. 바사제국은 유다를 너그럽게 통치하였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큰 어려움 없이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다. 포로에서 돌아온지 약 100년이 지나, 말라기선지자가 활동할 당시, 유대인들은 우상숭배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여호와를 섬긴 것도 아니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규범이 해이해져 있었고, 죄악된 생활이 일상화 되었으며, 소망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사람들은 다시 우상숭배에 빠지기도 하고, 이방민족과 잡혼이 성행했고, 정신적 혼수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막연히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말라기선지자는 사람들에게 메시야는 오시나 그들과 같은 죄인들에게는 심판을 하신다고 선포하였다. 이때가 BC400년경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땅에 오시기까지 약 400년동안의 역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에는 약 400년의 간격이 있다. 이때를 신구약 중간시대라고 하는데, 시대의 흐름을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기 때문에, 이 시간에 먼저 간단히 400년간의 시대흐름을 소개한다.
그때까지 세계의 강대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있었다. 그러나 서양에서 헬라의 세력이 일어나고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BC336년에 20세의 나이로 헬라군대를 이끌고 애굽, 앗수르, 바벨론, 바사의 지배 아래 있었던 동쪽 나라들을 휩쓸었다. BC331년까지 그는 온 세계를 정복했다. 그는 자기가 정복한 영토에 헬라 성읍을 세우고 헬라 문화와 헬라어를 보급시켰다. 그런데 그는 BC332년 팔레스타인을 침략할 때 유대인들을 특별히 고려하여 예루살렘을 남겨두고, 유대인들이 자신이 세운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시에 거주하도록 특전을 베풀었다. 알렉산더는 중앙아시아, 인도까지 진격했으나 부하들의 불평과 피로로 인해 돌아오던 중 BC323년 33세의 나이로 바벨론에서 죽고 말았다.
알렉산더가 죽자 그의 제국은 네 장군에 의해 네 지역으로 나누어졌다. 동쪽의 두 부분인 수리아와 애굽은 셀레우쿠스와 톨레미가 차지했다. 수리아와 애굽 가운데 위치한 팔레스타인은 처음엔 수리아에 속했으나 곧 애굽에 정복당해 BC198년까지 애굽의 지배를 받았다. 애굽의 톨레미 왕조 아래서 유대인들은 대체로 평화롭고 행복했다. 애굽에 있는 사람들은 곳곳에 회당을 지었다. 알렉산드리아는 유대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여기서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이라는 성경이 편찬되기도 했다.
그러나 수리아를 다스리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팔레스타인을 다시 정복하여 수리아의 지배로 되돌아갔다. 에피파네스는 유대인을 학대하여 유대민족과 유대교를 없애 버리려고 노력했다. 그는 예루살렘을 황폐시키고, 성전을 더럽히고, 제단에 돼지를 바치고, 주피터 제단을 만들고, 성전 제사를 금하고, 할례를 금지하고, 수많은 유대인 가족들을 노예로 팔고, 성경의 사본을 보이는대로 없애 버리고, 성경을 가진 사람을 모조리 살해하는 등 유대교를 없애 버리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이것은 결국 유대 역사상 가장 영웅적이었던 마카비 반란을 야기시켰다.
당시 모데인의 제사장이며 용감한 애국자였던 맛다디야는 에피파네스의 통치에 격분하여 충성스러운 유대인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용맹스러운 그의 아들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성전을 정화했다. 이때부터 약 100년동안 독립된 유다를 다스린 아스모네 시대가 시작되었다. 마카비는 맛다디야의 셋째 아들 유다의 이름인데, 당시 유다의 독립전쟁을 수행한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이를 마카비의 독립 전쟁으로 일컫는다.
그후 BC63년에 팔레스타인은 로마의 폼페이에게 정복되었다. 로마는 에서의 후손인 에돔사람 안티파테르(안디바)를 유다의 통치자로 임명했다. 그는 그의 아들 헤롯에게 유다의 왕을 계승했다. 헤롯은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보여 성전을 훌륭하게 재건하였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그를 헤롯대왕이라고 부르고, 그의 아들을 헤롯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는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유다를 다스렸으며 베들레헴의 어린아이를 학살한 장본인이었다.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의 400년 동안, 바사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이 팔레스타인의 주인이 되어 다스렸다. 온 세상은 전쟁의 피로 얼룩져 있었다.
● 요한은 헬라식 이름인데, 히브리 이름으로는 ‘요하난’으로,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이다.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 사가랴와, 아론의 자손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예수의 친척으로 예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대 광야에서 거주했으며,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하여 ‘세례 요한’이라 불린다.
헤롯대왕이 죽기 바로 직전인 BC5년경에 태어나 예수와 거의 동시대에 활동한 인물로, 그가 활동하기 시작하던 때에 유다는 로마의 식민 통치하에서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매우 암울한 때였다. 때문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메시야를 크게 대망하고 있었다. 이런 때에 침체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분위기를 일깨우며 회개를 선포한 세례 요한은 단번에 온 백성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 세례요한의 탄생은 수태가 불가능했던 나이 많은 부모에 의한 것으로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따른 기적적인 탄생이었다. 이러한 그의 기적적인 탄생은, 물론 질적으로는 비교가 안되지만, 성령에 의한 동정녀 탄생이라는 예수의 기적적인 탄생에 대한 예표가 되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의 탄생에 대해 요한사도는 요한복음에서,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시기 위해 예수에 앞서 보내신 것이라고 분명히 적고 있다.
그는 모태에서부터 성령이 충만하였으며, 회당에서 배우지 않고 어려서부터 황야에서 생활하며, 수도자들 사이에서 수련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세속을 떠난 순수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의 안중에는 당시 권세자들도 하찮게 보였다. 그래서 그는 헤롯왕의 불의를 담대하게 질책했다.
주님은 세례 요한을 가리켜,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군중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독사의 자식”이라고 호령했다.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세례 요한은 불원간에 하나님의 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오를 것을 내다보았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는 구세군 사관학교의 졸업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제군들을 3년 동안 학교에 붙잡아 두고 신학이나 전도법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그 대신 사흘 동안 지옥의 고통을 체험하게 하고 싶다. 그러면 어떤 위대한 신학수업을 받은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열화와 같은 정열로 구령 사업에 열중할 테니까.” 세례 요한에게는 그같은 열정이 있었다.
세례 요한은 광야와 요단 강가에서 외쳤으나, 그의 외침을 듣기 위해 유다의 방방곡곡에서, 심지어 사마리아나 갈릴리 지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많은 목회자들이 청중의 귀를 즐겁게 하는 세련되고 달콤한 설교로 칭송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요한에게서 배워야 한다. 진리를 그대로 말하라.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하라. 놀랍게도 사람들은 심금을 울리고 폐부를 찌르는 설교를 듣고 싶어한다.
● 누가는 세례 요한의 탄생기사를 기록하면서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1:17)고 하였다. 과연 세례 요한은 예수의 선구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그의 전 삶을 바쳤다.
그는 구약 시대의 엘리야 선지자처럼 어릴 때부터 광야에서 살았으며, 약대(낙타) 털로 만든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다. 이는 그의 삶이 나실인으로서 철저히 구별된 정결한 삶이었으며 하나님의 율법에 철두철미한 삶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삶은 당시 탐욕과 부정으로 가득한 유대 지도자들의 삶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것이었다.
한편 세례 요한의 삶 자체 뿐만 아니라 그의 사역도 철저히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먼저 그는 메시야의 도래에 앞서 유대인들을 준비시키고자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였으며, 회개한 자들에게는 그 회개의 증거로서 장차 주께서 주실 성령 세례를 예표하는 물세례를 베풀었다. 이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장차 도래할 메시야를 영접할 영육간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같은 사역을 감당할 때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그리스도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에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며 자신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며 예수 그리스도는 최대한으로 높이고 자신은 철저히 낮춤으로써 오직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의 사역을 충실히 감당하였다.
● 사복음서 기자들은 모두 예수의 공생애 사역을 다루기 전에 먼저 예수의 선구자 세례 요한의 사역부터 기술하고 있다. 또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비로소 공생애 사역을 개시하셨다. 또한 세례 요한은 예수의 등장 이전에 와서 메시야로서의 예수의 도래를 예고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자신에게 나와왔을 때 바로 예수가 약속된 메시야 곧 그리스도임도 공개적으로 증언하였다.
세례요한은 이사야가 예언한 바대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고통과 희망을 상징하는 장소인 광야에서 주의 도래를 외치는 자였다. 또한 세례요한은 주의 도래에 앞서 죄에 빠진 세상을 깨워 회개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러 메시야에 앞서서 온 엘리야였다. 즉 세례 요한은 예수의 선구자였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리라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라는 주의 말씀은 세례 요한이 구약 시대를 마감한 인물임을 명백히 드러낸다. 그리고 구약을 대표하여 새로운 시대, 신약 시대를 도래시킨 예수에 대하여 증언함으로써 결국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하였다.
● 설교자로서, 세례요한에게서 배우는 소중한 교훈 한 가지가 있다. 설교자들이 자신이 설교한 설교 내용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로 설교자들은 자신의 말을 그 생활이 배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탈속적인 생활은 그의 설교에 무게를 더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생활 자체가 무언의 대설교였다.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몸에 약대 털옷을 걸치고 허리에 가죽을 맨 그의 생활은 그가 영광된 다른 세계를 그리워하는 하나님의 사람임을 누구나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설교자들의 삶은 신앙의 기쁨과 소망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세례 요한은 자기를 낮추고 그리스도를 높이려고 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당신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잘라 말하고, 당신이 엘리야 혹은 선지자냐 하고 물었을 때에도 “아니라”고 대답하고, 자기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그리스도의 명성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는 무척 기뻐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빛을 내면서 스스로 꺼져 가는 “등불”이었다.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니라.”
인도의 성자라고 불리운 썬다싱은 일찍이 한 사람의 병사자를 위해 기도했더니, 이튿날 아침에 그가 다시 살아나 건강을 되찾았다. 그러자 그 고장 사람들은 썬다싱에게 신비한 초능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를 받들어 모시려고 했다. 썬다싱이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사람들은 듣지 않았다. 그 후부터 그는 병자를 위한 기도를 하지 않기로 했다. 병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성경에도 쓰여 있으며, 따라서 신유의 은사를 나타내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썬다싱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쏠리는 것이 두려웠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이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쏠리기를 원했다.
무색 투명한 유리는 자신을 통하여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그대로 보여 줄 수 있다. 자기 과시는 야비한 품성의 특징이다. 자기는 사라지고 진선미의 결정인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생애야말로 참으로 위대하다.
● 세례 요한은 당시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의 분봉왕이었던 헤롯 안디바와 그의 새로운 아내 헤로디아에 의해 처형되었다. 헤롯이 세례요한을 죽인 이유는 표면상으로 볼 때는 자신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불법적으로 결혼한 사실에 대해 세례 요한이 비판하였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앙갚음을 위해서였지만 이면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의롭고 거욱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추종함으로써 그가 정치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염려가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정의를 부르짖다가 당한 그의 죽음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진리와 정의를 부르짖다가 유대 지도자들의 손에 죽임당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오묘하게 예표하는 것이라 하겠다.
세례 요한은 이런 암흑기에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 있었으나 그의 말로는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기억하게 된다. 성경은 90회 이상이나 그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하고 주님 자신이 그를 증거했다. 그는 실로 “주 앞에 큰 자”였다.
한편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세례요한이 초림하실 메시야와 새로운 신약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며 기다렸던 것처럼 재림하실 메시야와 새 하늘과 새 땅의 천국을 기다리고 있다. 더욱이 현대의 우리는 세례요한 시대와 달리 천국 구원에 관한 온전한 계시가 주어진 상태에서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은 광야에서 정결한 삶을 살았던 세례 요한의 삶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아직도 주를 믿지 않으며 분명히 도래할 예수의 재림을 아직도 확신하지 않는 자들에게 역사의 광야에서 외치는 자로서 소리를 높여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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