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성경인물설교(35) 아모스(암5:1-24)

성북동 비둘기 2023. 6. 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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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를 선포한 선지자로 잘 알려진 아모스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6km 정도 떨어진 드고아 출신의 목자였다. 드고아는 해발 약 840m 정도의 고원지대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에서 해수면보다 392m나 낮은 사해에 이르는 급경사의 지역이 흔히 유대광야혹은 드고아 들이라고도 부르는 목축지대이다. 아모스는 제사장 가문 출신도 아니었고 선지자 학교에서 배우던 선지자 지망생도 아니었다. 그는 평범하게 시골에서 양을 치며 뽕나무를 배양하던 농부였다. 하지만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북이스라엘에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한 인물이다.

 

아모스는 호세아선지자와 동시대의 선지자로서, 호세아가 북이스라엘 출신으로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데 비해, 아모스는 남유다 출신임에도 북이스라엘에서 선지자 사명을 감당했다. 그리고 이미 앞 시간에 언급했듯이 호세아가 하나님의 다함없는 사랑을 선포한데 비해, 아모스는 하나님의 공의를 맹렬하게 선포한 선지자였다.

 

아모스는 남유다 웃시야 왕 때, 그리고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 때, 큰 지진이 일어나기 2년 전에 선지자로 소명받았는데, 이 지진에 대해서는 후대의 선지자 스가랴서에도 기록되어 있고(14:5),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도 언급할 정도로 잘 알려진 재앙인데, 스가랴는 이 지진의 발생 원인이 웃시야왕의 범죄, 즉 웃시야 왕이 스스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려고 성소에서 분향하는 순간 일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하여튼 아모스가 선지자로 부름받은 것은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의 치세 말년경이었다.

 

아모스란 이름은 무거운 짐을 진 자라는 뜻이다. ‘무거운 짐을 진 자’! 아모스는 자신의 이름처럼, 선지자로 부름받기 전에는 목자로서 농부로서 무거운 인생살이를 살다가, 선지자로 부름받은 다음에는 참으로 영적으로 암울한 시대에, 고향을 떠나 북이스라엘의 무거운 죄짐을 지고서 선지자 활동을 했던, 충성스러운 사명자였다.

 

선지자 아모스가 활동하던 때는 남유다 왕 웃시야와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때로서, 양국 다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왕국 이후 정치적, 경제적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은, 남유다의 웃시야왕과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가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의로운 왕들이었기 때문에 두 나라가 번성하였느냐는 것이다. 웃시야왕은 이미 앞서 밝혔듯이, 제사장의 직무를 함부로 수행하다가 여호와께서 치심으로 문둥병이 발병하여 죽는날까지 별궁에 유패되었고,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의 경우는 왕하14:23~27에 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읽기)

 

즉 북이스라엘이 국토를 회복하고 국력이 융성하게 된 것은 여로보암 2세의 개인적인 용병술과 전략이 출중했던 탓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속한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보셨던 까닭이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자유로운 자나 노예나 할 것 없이 다같이 아람인의 종과 같은 신세로 살았는데,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 때문에, 송아지 숭배를 계속하고 있었던 왕의 통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이스라엘에 베풀어졌던 것이다.

 

하여튼 여로보암 2세 때, 북이스라엘은 자신을 괴롭히던 아람 왕 벤하닷이 신흥제국 앗수르에 패해 그 세력이 급격히 쇠퇴한 틈을 타, 아람을 공격하여 정복하고, 그 영토를 크게 회복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직 신흥제국 앗수르는 남쪽 애굽의 영향력을 두려워하여 남침을 못하던 때에, 북이스라엘은 수십년간 정치적 안정 속에서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북이스라엘의 융성으로 인하여 나타난 결과는 빈부 격차의 심화와 사치, 방탕, 도덕적 부패 등 온갖 사회적 불의였다. 이러한 퇴폐 풍조는 상류 계층의 타락은 물론이거니와 사회 전반에 걸쳐 전례가 없을 정도의 종교적, 도덕적 부패 현상을 초래하였다.

 

바로 이런 와중에서 아모스는 선지자 활동을 하게 되는데, 따라서 그의 메시지는 북이스라엘 민족의 부강이 하나님의 섭리하에서 허용되어졌다는 것과, 북이스라엘이 당시의 만연된 교만과 부패를 회개치 않을 때에는 언제라도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는데 집중되어 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몇가지만 살펴보자.

 

1) 물질적인 번영은 국민을 사치에 흐르게 하여 저마다 안일을 누리려고 했다. 특히 상류층들은 흉한 날이 오지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긴 의자의 비단 방석에 앉고, 겨울 별장과 여름 별장을 따로 짓고, 심지어 상아로 집을 짓기도 했다. 그리하여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살았다. 저들의 부인들은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남편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요구하였다.

 

2) 일반 대중의 인륜도 땅에 떨어져, “아비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고사는 소돔, 고모라같은 불륜의 시대였고,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는물질만능과 불법이 판치는 무법의 시대였다.

 

3) 하나님을 공경하는 경건한 마음은 사라지고, “모든 제단 옆에서 이웃의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구별된 나실인으로 하여금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하여 예언하지 말라고 했다. 예배를 드리는 형식은 갖추었으나, 마음은 예배에 있지 않았다. 제사를 지내면서 저들의 마음 속으로는, 빨리 안식일이 지나서 시장에 곡식을 내다팔 생각만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거짓 저울로 속이며 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저들이 예배 장소인 벧엘과 길갈로 가기는 하였으나 하나님을 섬겼던 것이 아니라 금송아지에게 절하며, 자신들의 이권과 탐욕과 명예만을 추구하는 상태에 있었다.

 

이처럼 저들이 죄악이 관영한 가운데 살았으나, 아무런 심판의 징조가 보이지 않았고, 도리어 나라가 평안하고 부유했기 때문에,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잠든 것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 백성의 죄악과 포학을 묵과하시지 않는다. 이제 그 심판의 손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크게 분노하셨다. 이방 아람민족에게 끊임없이 침략 당해, 마치 애굽의 종살이 때처럼 처참하게 살던 저들을 살려주셨는데, 저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는 커녕,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일만 자행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이 하나님의 무거운 심정, 사랑하는 백성들을 징계해야 하는 참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일어난 선지자가 바로 아모스였다.

 

그는 부농이 아니었다. 제사장 가문도 아니었고, 선지자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받은 유식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유대광야 산골짝, 시골 출신의 배우지 못한 야인이었다. 따라서,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은 신발 한 켤례의 값어치도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에, 인간의 눈으로 보았을 때, 아모스는 결코 선지자로서 전혀 적합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당시에도 얼마나 많은 뛰어난 인재들이 있었겠는가? 예루살렘이나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받고, 인격적으로도 제대로 갖추었다고,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얼마나 많은 종교 엘리트들이 즐비했겠는가?

 

하지만, 아모스를 보라. 두메살골 출신에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 어떤 가문 출신인지도 불확실한 사람! 볼품없는 차림의 농꾼이,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배부른 나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모스의 말에 얼마나 귀기울였을 것 같은가?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한치의 착오도 없으시고, 인간의 생각과 계산이 못미치는 곳에서도 위대한 역사를 이루신다. 아모스는 사람들이 추대하여 선지자가 된 것이 아니다.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 능력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남에게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외식하며 자기의 인품을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할 필요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그는 시골에 사는 한 가난한 농민으로, 그의 말에 의하면, “양떼를 치고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자신을 데려다가선지자로 삼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땅에 떨어질 체면도 없고, 잃어버릴 지위도 없고, 빼앗길 재산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담대하고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분연히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던 것이다.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은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아모스는 두려움을 모르는 사자와 같이 용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했다.

 

아모스의 활동 무대는 부패한 이스라엘이었다. 그러나 성령은 아모스를 지혜롭게 인도하셨다. 그는 먼저 북이스라엘 주위의 적국부터 경고하기 시작했다. 다메섹,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 모압, 심지어 유다에도 심판이 선포된다. 아마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적국에게 이처럼 신판이 선포되는 것을 듣고 고소하게 생각하고 아모스의 말에 흥미를 느껴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포학, 사치, 음행, 우상숭배 등을 지적하고, 이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곧 적국의 쳐들어 올 것이며, 기근과 메뚜기떼의 피해, 지진을 예고했다.

 

그는 드디어 북이스라엘의 신앙중심지 중의 하나인 벧엘에 가서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선언했다. 그러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북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했다.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왕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가 다 알다시피, 교만하여 귀가 막혀버린 북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선지자의 예언은 들리지 않았다.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말했다.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그러나 아모스는 식생활이나 해결하려는 선지자는 아니다. 그는 거침없이 즉석에서 대답했다.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계하지 말라 하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중에서 창기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줄 띄워 나누일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

 

결국 아모스의 이같은 예언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배반했던 북이스라엘은 불과 한세대 후에 앗수르에 멸망당하고 모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으며, 그 땅에 남아있던 백성들은 이방인들과 피가 섞여 혼혈이 되고 만다. 그 까닭에 나중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개처럼 취급당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비록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 가운데서 심판에 이르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해 되풀이하여 생명의 길을 제시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심정은 그토록 안타까운 것이다. 부모는 오른 손으로 자식에게 매를 대면서도 왼손으로 그 자리를 쓰다듬는다.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내리실 때에도 자비를 잊지 않으신다. 그래서 아모스의 예언의 결론은 놀랍게도 희망에 차 있다.

 

4:12(읽기)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5:4(읽기)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5:15(읽기)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오늘 이 나라의 상황이 아모스선지자가 활동했던 북이스라엘의 상황과 결코 다르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일꾼들을 부르신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을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주의 덕을 선전하게 하시려 어두운데서 불러낸 백성들이라고 일컬으셨다. 다시말해 진정한 성도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전하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이다. ‘선전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소리높여 전파하는 것을 말한다. 즉 성도들은 이 시대의 선지자들이다.

 

혹시 주위에서 이 시대의 아모스 선지자를 찾고 있지는 않은가? 물론 아모스 선지자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가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여러분 자신이 이 시대의 아모스와 같은 선지자인지도 모른다.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에서 선지자 사역을 하다가 다시 남유다로 귀향하여 고향에서 목자로, 또 농부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한다. 참다운 신앙인이라면 성실한 생활인임에도 틀림없다. 각자가 서있는 자리에서 아모스 선지자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가자. 그리고 오늘과 같이 어두운 시대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시고, 세상에서 구별하여 성도로 택해주셨으므로,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생명의 말씀을 담대하게 지혜롭게 전할 수 있도록, 증인된 삶을 살아가자.

 

그리고 7장에 보면 폐역한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릴 재앙이 너무 무거운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재앙을 그치게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처럼, 이 나라와 겨레를 위해 진정으로 중보기도할 수 있는, 그리하여 이 나라를 살리는 진정한 애국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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