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절’,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여러분의 머리 속에 어떤 기억들이 있는가? 길거리엔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고, 예배당은 물론 거리 곳곳에 멋진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며, 저녁마다 성탄절에 발표할 연극이며 찬양연습을 하면서 따끈한 호빵과 새콤달콤한 귤을 간식으로 먹으며 즐거워했던 추억이 있는가? 아이들은 정말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있는가 의심하면서 성탄절에 받을 선물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예수의 탄생은 당시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매우 중대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우리는 상업화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에 편승해, 예수 탄생의 심각성을 망각해 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예수께서 이 땅에 태어났을 때, 천군천사들이 동원되어 찬송을 올렸고, 초자연적으로 나타난 하늘의 빛난 별을 보고 먼 이국의 천문학자들이 찾아왔으며, 심지어 한 나라의 왕이 자기가 다스리는 여러 마을의 2살 아래 갓난아이들을 모조리 학살할 정도로 심각했던 사건이었다.
그만큼 오늘의 성탄절은 환상적으로 각색되어 있고, 세속적인 영향으로 인해 원래의 모습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고 있는 실정이다. 주님의 성탄과 관련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여러 부분 가운데, 오늘은 동방박사들에 대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 마태복음에 나타난 동방박사들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마태복음 2장에 기록된 내용 외에는 지금까지 그들의 출신과 배경, 일생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다. 이방인이었던 저들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초자연적인 별의 출현을 통해 어떻게 예수가 메시아 되심을 확신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그저 신비에 싸여 있을 뿐이다. 따라서 오늘 읽은 마태복음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내용들은, 상당 부분, 그동안 수많은 신학자, 성경학자, 목회자들이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추론한 것들이다. 따라서 보다 중요한 것은, 동방박사들의 존재 자체에 대해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들이 그 먼 길을 찾아와 아기 예수님께 왕의 예의를 갖추고,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고백하고 증거했던 아름다운 믿음의 결단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겠다.
(1)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새로 나신 왕을 찾게 된다. 여기서 ‘동방으로부터’라는 것은 문자적으로 ‘(해가) 떠오르는 곳으로부터’라는 뜻으로, 그 위치에 대해서는 매우 모호하여 학자들은 ‘동방’을 페르시아, 바벨론 또는 메소포타미아, 아라비아 등 다양하게 제시한다. 이같은 다양한 견해들 가운데 ‘동방’이 바벨론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왜냐하면 그 당시 바벨론에는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 중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 정착하여 기반을 닦은, 그리하여 예루살렘에 많은 영향력을 미쳤던 유대인 포로들이 정착하고 있었고, 더군다나 박사들이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예언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유대인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시사해 주기 때문이다.
한편 본문의 ‘박사’들에 대해서는 그 신분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점성학자로 규정한다. 왜냐하면 본절의 ‘박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고이’는 보통 ‘천문학자’ 또는 ‘철인’으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마고이’는 박수나 점장이 등의 엉터리 마술사가 결코 아니었고 꿈을 해석하는 신통력을 지닌 메데, 바사, 또는 바벨론의 제사장을 언급할 때에 주로 사용되었다. 특별히 이 용어는 그때로부터 600년 전에 바벨론의 모든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으로 높임 받았던 다니엘에게 사용되었던 말이다.
한편 초대교회 전승에 의하면 ‘마고이’가 왕들이었다고도 전하는데, 아마도 그것은 왕들이 와서 메시야를 경배할 것이라는 구약의 예언들(시68:29,31, 72:10,11, 사49:7, 60:1-6)의 영향을 받아 발전된 듯하다. 여하튼 박사들이 별을 따라 유대땅을 향해 온 점, 바벨론 등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영향으로, 다니엘의 예언 및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각종 예언에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다는 점 등을 볼 때, ‘동방박사’는 바벨론 출신의 천문학과 점성학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존귀한 자들로 볼 수 있다. 동방박사가 몇 명일까? 몇 명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아기 예수께 드린 예물이 3가지여서, 일반적으로 3명으로 알고 있고, 6세기 말경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이름이 각각 멜콘(멜키올), 발사살, 가스퍼였다고 기록되어진다.
● (2)동방에서 온 한 별.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별을 통해 한 개인이나 국가의 장래와 운명을 예견할 만큼, 별의 운행에 깊은 관심을 두어왔다. 특히 아브라함 이래로(창15:5) 별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목도해 왔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별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는 하나의 도구로 여겨졌으며, 무엇보다 그들은 메시야 대망 사상과 긴밀한 연관을 지닌 것으로 이해해 오고 있었다. 한편 예루살렘이 아닌 바벨론 유프라테스 강변 지역에서 최초 발견된 동방의 한 별은 분명히 수백, 수천년 동안 오리라 예언하며 고대해 오던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죄의 흑암 중에 헤매는 인류를 밝은 빛으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거룩한 계시였다.
그런데 그 당시 자연계에 나타났던 메시야의 별이 과연 어떤 별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BC11년경에 출현한 헬리 혜성, 2)BC5-2년 사이의 애굽력으로 메소리(왕의 자손이 출생한다는 뜻) 달이 막 시작하는 때에 밝은 빛을 내었던 천왕성, 3)BC4년경에 나타난 새별(중국 고대 천문관계 서적 中), 4)BC5년경(로마력 747년) 魚성좌에서 일어난 약 800년마다 한번씩 만나는 목성과 토성의 대결합(Kepler)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중 어느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메시야의 별’은 역사적으로 천체에 나타났던 가시적인 별이었다는 점이다.
실로 이때 출현한 별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00년 간 침묵하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자연계에 나타내신 계시이며, 사랑으로 인도하는 별이었다. 따라서 동방의 박사들은 그 별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계시)과 돌보심(사랑)과 이끄시는 손길(인도)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으며, 바벨론 유프라테스 강변으로부터 베들레헴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암흑같은 이 세상에 나그네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크나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즉 하나님은 마치 동방의 한 별을 통해 박사들을 예수께로 인도하셨듯이, 오늘도 성령의 내적 조명을 통하여 우리를 진리에로 이끄시며, 또 궁극적으로 영원한 도성이 있는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 (3이하)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말에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경악한다. 당시 헤롯왕은 자신이 유대인 출신이 아니라 에돔 족속의 후손이라는 점 때문에 자신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 늘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정략가였고 모략가였다. 그는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내심을 드러내지 않은채 박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극진한 예우로 대했다.
한편 ‘별이 나타난 때’를 묻는 헤롯의 질문을 통해 예루살렘에서는 그 별이 아직 감지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질문 속에는 어린 왕의 탄생 기점을 알아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16) 사내아이들을 살해하려는 무서운 음모가 감추어져 있었다. 헤롯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얘기를 통해, 태어난 ‘유대인의 왕’이 훼파된 다윗 왕국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임을 눈치 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대인의 왕’을 없애려고 한다. 따라서 헤롯의 간악한 계획은 결국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메시야 왕국’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던 셈이다.
(8)헤롯은 박사들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얻었다는 자신에 차 있었기 때문에 박사들에게 염탐꾼을 딸려 보낼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것 같다. 박사들도 일단 헤롯왕의 말을 듣고 의심 없이 베들레헴으로 향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헤롯의 계획은 헛된 것이었다. 진정 그는 이 이방의 박사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간섭으로 인한 지시대로 움직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결국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헤롯의 비상하고도 교활한 ‘지혜’를 아기 예수를 찾아가는 박사들의 ‘발’ 밑에 놓이게 하셨다.
아기 예수를 살해하기 위한 계략의 겉포장은 ‘경배’였다. 먼 길을 마다않고 자기 발로 걸어와서 스스로 드리는 동방박사들의 진정한 경배와 어두운 데 웅크리고 앉아서 ‘나도 ...하게 하라’는 헤롯의 거짓 경배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거짓 경배는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계속해서 나타나는데, 가룟 유다가 ‘선생님’하면서 배반의 입맞춤을 할 때, 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로마 군사들의 모독과 조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 (11)이제 동방박사들은 집에 들어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며 예물을 드린다. 누가복음에는 아기가 나신 곳이 마구간으로 되어 있다. 그에 비해 본문에는 집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동방박사들이 방문한 시기는 호적조사가 끝난 얼마 후 요셉이 거처를 마련한 다음이었을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한 나라의 최고 통치권자 및 고귀한 사람을 만나거나 그에게 충성을 다짐할 때 특별한 예물을 바치는 것은 상식적인 것이지만, 박사들이 바친 예물은 그보다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황금은 동서고금을 통해 최고 귀하며 불변하는 성질의 금속으로서 흔히 부를 상징하며 왕께 드리는 예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이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 드리는 예물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백발과 흰 수염을 한 멜키올이 이 예물을 드렸다고 한다.
2)유향은 아라비아 지방의 관목에서 채취한 향기로운 송진으로서 성전 제사나 헌물로 자주 사용된다. 이는 예수의 제사장적 권위(하나님과 인간의 중재자로서)와 신성을 인정하는 예물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홍안의 청년 가스퍼(Gasper)에 의해 드려졌다고 한다.
3)몰약은 시체를 염하거나 방부제로 사용되는 것으로 매우 귀한 자의 시체에만 바를 정도로 고가품이었다. 이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미리 예비하는 예물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검은 얼굴에 수염이 많았던 중년의 발사살(Balthasar)에 의해 드려졌다고 한다.
결국 박사들은 가장 위대하신 분께 가장 고귀한 예물을 드린 것이다. 사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었으나, 그에 비해 그들이 경배한 예수는 현실적으로 너무 초라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같은 인습과 자만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이 세상에 참된 왕으로 오신 예수께 온 정성으로 경배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우리가 믿고 절대 신앙하는 그분께 무엇을 드려 경배하고 있는가? 특히, 무릎을 꿇고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헬라나 로마의 예법이 아니라 동방의 예법이다. 최상의 공경의 표시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경배했던 대상은 마리아와 함께가 아니고 오직 아기 예수뿐이었다. 즉 그들은 헤롯에게나 아기의 부친과 모친에게도 경배하지 아니했다. 경배의 대상은 오로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한분밖에 없는 것이다.
● (12)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린 후, 저들의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고 저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간다. 동방박사들은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구약의 메시야 예언을 잘 알았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몰라볼 때 오히려 그를 찾아와 경배하고 영광을 돌렸다. 이같은 행위는 유대인의 왕, 즉 메시야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소동하며 당황한 유대인들의 태도와는 크게 대조된다. 이것은 성경을 지식적으로 깊이 모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성경을 알되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믿는 마음이 없는 자들보다 더 나은 자임을 암시해 준다.
그리고 헤롯왕과 동방박사들은 이제 갓 태어난 예수에 대하여 그 내용은 상반되지만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갖는다. 특히 이들은 둘 다 예수께서 특별한 왕으로서 오셨다는 점에서 인식을 같이 했다. 다만 그들의 마음속 태도에 따라, 한쪽은 경배자로 한쪽은 살해자로 나뉘어졌다. 믿음의 눈이 가려지고 온갖 세상 욕망으로 나의 삶이 가득하면 진리가 보이지 않는다.
● 동방박사들의 신앙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는 결단의 신앙이었다. 즉 그들은 이방인이면서도 유대인 출신의 메시야 사상을 믿었다. 그리고 별만을 보고도 왕의 나심을 믿었다. 또 초라한 아기 예수만을 보고도 그가 구주이심을 믿었다.
또한 그들의 신앙은 근면하고 헌신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별을 보고 메시야의 탄생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만나보고 경배하고자 먼 길을 여행하는 노고를 무릅쓴 행동적 믿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그들은 그 믿음을 인생의 최고 가치로 여기고 그 믿음에 따라 예물을 바치는 상징적 행동을 통하여 자신들의 헌신을 보여 주었다.
공간적으로는 일반인들이 모르는 세계 곳곳에, 시간적으로는 모든 복음의 불길이 꺼진 것 같은 암흑의 시대에도 이 동방 박사들 같이 누구도 예기치 못한 하나님의 숨은 종들이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즉 세계는 우리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시간과 장소, 인종, 언어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어디에나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숨어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구속사는 끊임없이 이어져 가는 것이다.
여러분의 가정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안은 도저히 안돼!” “보살들만 가득 들어앉아서, 온갖 잡신들이 우글거리는데, 어떻게 예수를 믿어!” 누가 뭐라해도 포기하지 말라! 가장 어두웠던 시절,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밝은 별을 띄워 생명의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나서게 했다.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생명의 복음, 소망의 복된 소식을 포기하지 말고 전하기 바란다. 이 시대의 동방박사들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되심을 세상에 널리 선포하라!
'성경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인물설교(38) 요셉(마1:18-25) (0) | 2023.06.09 |
---|---|
성경인물설교(40) 시므온과 안나(눅2:22-38)/ 박영철 목사 (0) | 2023.06.09 |
성경인물설교(42) 헤롯(마2:1-23) / 박영철 목사 (1) | 2023.06.06 |
성경인물설교(43) 베드로(마16:13-28) (4) | 2023.06.06 |
성경인물설교(44) 요한(계1:1-20) (0) | 2023.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