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강해(24)/ (갈5:22-23)
1.복음(은혜)이란 무엇인가?
(1)“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 이것이 복음이다.
(2)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3)사랑하라고 명령하는 것도 기독교가 아니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중요한 것은 그 사랑하게 되는 마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어려운 것이다.
(4)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격하는 것이 은혜요 참복음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을 깨닫을 때 그때 그 복음(은혜)이 사랑을 일으킨다.
2.성령의 열매(1)/ 씨
(1)씨는 뿌려지지 않으면 어떤 생명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다.
(2)밖에서부터 객관적으로 종자가 떨어져서 그 속에 심겨질 때 비로서 생명이 이루어진다.
(3)밭이 좋아서 생명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시말해서 내 마음을 비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비우는 것은 기독교적인 용어가 아니다
비우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비우지지 않는 것이 마음이다.
(4)기독교적인 교리는 채우는 것이다.
-말씀으로 채울 때 욕심이 도망간다.
-은혜로 가득 채울 때 잡다하고 더러우 것이 물러간다.
-사랑으로써 증오를 이긴다.
3.성령의 열매(2)/ 열매이 활성화
(1)씨앗의 문제
종자의 문제이다. 반드시 성령이 내 안에 계셔야 한다. 이는 생명적인 문제이며 질적인 문제이다
(2)수용의 문제
생명이 들어올 때 내가 수용해야 한다.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 성령은 크게 역사한다.
(3)생명을 성장케 해야 한다.
성장을 도와야 한다. 생명이 내 안에서 자라나도록 알맞은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한 마디로 전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4.성령의 열매(3)/ 9가지
(1)사랑
-에로스(남녀간의 애정)
-필리아(친구 우정)
-스토르케(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아가페(성령으로부터 오는 신적 사랑)
성령으로부터 오는 아가페 사랑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여광을 나타내리니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16:13-14)
-성령은 깨닫게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나의 사건으로 깨닫게 된다.
-성령은 기억나게 한다. 말씀이 생각나게 한다.
-성령은 인도하신다. 성령의 큰 역사는 그리스도께로 우리는 인도하는 역사이다.
(2)희락
이는 <파라>인데 이 말은 기쁨이란 뜻이다. 영어로 조이(joy)이다. 이 기쁨은 절대적인 기쁨이다. 이 기쁨은 세상적인 것, 환경, 소유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에게 내게 주시는 은혜를 깨달을 때 오는 기쁨이다. 모든 상황이 감사와 기쁨의 상황으로 가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3)화평
헬라어로 <에이레네> 히브리어로 <샬롬>이다. 이 평안은 <팍스>(pax)가 아닌 <피스>(peace)이다. 즉 힘으로 이루어지는 평안이 아니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오는 평안이다.
(4)오래참음
오래참음이란 <마크로두미아>인데 ‘마크로’는 오래라는 뜻이고 ‘두미아’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오래가는 마음이다. 오래 참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을 말한다. 모든 문제가 다 해소되어버려서 오래 참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다 없어졌다. 아무리 두고 보아도 다시 미워하고 다시 참고 다시 고통을 느낄 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5)자비
<크레스토테스>인데 이는 헬라어로 ‘친절’을 말한다. 그런데 이념적이 아닌 실천적인 친절, 적극적인 친절을 말한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도 자연스럽게 친해진다.
(6)양선
<아가도수네>인데 이는 능동적인 자비를 말한다. 즉 기다리는 선이 아니라 찾아가는 선이다.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만 베푸는 것이 아니다. 찾아가서 베푸는 선이 양선이다.
(7)충성
이는 <피스티스>이다. 이는 믿음으로도 번역한다. 충성, 진실, 믿음은 다 같은 단어이다. 다시말해 성령이 충만할 때 믿음의 사람, 충성된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8)온유
<프라우테스>인데 이는 ‘길들여진 말’을 말할 때 쓴다. 뻣뻣하고 거친말이 아니라 잘 길들여진 온순한 말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너무 고집스러운 사람을 성령을 못받은 사람이다. 가장 온유한 예수님은 항상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기도하시며 늘 온유로 사셨다.
(9)절제
<에크라테이아>인데 이는 영어로 셀프 컨트롤(self-control)dlek. 나를 다스리는 힘이다. 나를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령충만할 때 나를 다스릴 수 있다.
5.결론
(1)매일 순간순간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2)늘 성령충만으로 채우라.
(3)이는 내 노력으로 되지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마음을 성령 앞에서 늘 열어놓고 순종해야 한다.
(4)성령으로 늘 재 충전받으라.
(5)성령이 나를 지배할 때 우리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며 성령의 사람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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