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세상읽기/정치 경제

“종북좌파 아니면 진보진영에서 설 자리가 없다”

성북동 비둘기 2024. 4. 1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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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의 퇴장’이 의미하는 것

 

이번 총선에서 5선고지에 도전했지만 낙선한 ‘진보 여전사’, 심상정 녹색정의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11일 사실상의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심 의원은 이후 경기 고양갑 선거구에서 내리 3선(19, 20, 21대)을 하면서 4선 의원이 됐다. 이번에 같은 선거구에서 5선을 노렸지만, 거대 양당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득표율 18.4%, 3위에 머물렀다.

 

심 의원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21대 국회의원 남은 임기를 마지막으로 25년간 숙명으로 여기고 받들어온 진보 정치의 숙명을 내려놓으려 한다"고 밝혔다.

 

서울대 운동권 출신인 심 의원은 1980년 ‘서울의 봄’이 오자 최초로 서울대 총여학생회를 창설하고, 초대 총여학생회장이 됐다.

 

5공,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해 노동운동을 펼쳤다. 대우어패럴 미싱사로 일하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서노련의 주축이 돼 1985년 6월 구로동맹파업을 이끌었다.

 

1995년 11월 출범한 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주노총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민주금속연맹과 금속산업연맹의 사무차장을 역임했고, 산별 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에서도 계속하여 사무처장으로 일하다가 2003년 부터는 진보정치 운동을 시작했다.

 

노동운동을 할 때부터, 심상정은 점차 운동권의 떠오르는 종북주사파들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았다. 자신의 이념지향이 사회주의적이기는 했지만, 북한 김일성 정권과 연합해 한반도에 사회주의 통일국가를 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으로 출마해 당선된 심상정은 노회찬 등과 함께 이석기 김재연 등 주사파 천지로 변모한 진보당을 나와 진보정의당을 만들었고, 오늘날 녹색정의당에 이르게 된다.

 

이재명 대표에 이르기까지 민주당 주류는 진보당 보다 심상정의 정의당을 끔찍이 싫어한다.

 

대선과 총선 등 각종 선거에서 보수정당 보다는 민주당쪽 표를 5% 가량 꾸준히 잠식해왔기 때문이다. 현재의 민주당의 주류가 1980년대 이후 운동권 주사파 출신이라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2021년 가을 대장동 의혹이 불거지자 심상정 의원은 경기도에 대한 국토위 국정감사에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를 상대로 “대장동 사업을 설계한 이 지사는 죄인”이라며 사납게 몰아 부쳤다. 심 의원은 몇 달뒤 대선에 출마해서도 각종 토론회에서 대장동 사건과 이재명 후보에 대한 날선 비판을 이어간 바 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녹색정의당은 그동안 심상정등이 주축이 돼 이끌어왔던 ‘비주사파 독자노선’을 지키기 위해 민주당이 추진한 비례대표 야권연대에 참여하지 않았다.

 

녹색정의당은 이번에 지역구에서 단 한명도 당선시키지 못한 것은 물론, 비례대표 득표율도 2.14%에 머물러 창당 후 최초로 원외정당으로 전락했다.

 

심상정 의원은 11일 "하루하루가 벅차지 않은 날이 없었고, 한 걸음 한 걸음이 수월하지 않았다"면서 "극단적인 진영대결 정치의 틈새에서 가치와 소신을 지키려는 저의 몸부림은 번번이 현실정치의 벽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녹색정의당의 이같은 퇴조에 대해 서울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비주사파 진보정당의 한계를 지적한다. 심상정 의원과 가까운 녹색정의당의 한 인사는 “민주당은 물론 친야. 좌파언론까지 정의당 보다는 진보당 편을 드는 환경에서 생존하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종북 좌파가 아니면 진보진영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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