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를 공부하는 중 그 실체가 가장 모호한 존재는 신성로마제국이다. ‘제국’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졌건만 그 영역도, 역사도 확실히 규정하기 쉽지 않다. 신성로마제국의 시작은 800년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1세가 교황 레오 3세로부터 ‘서로마 제국 황제’ 대관을 받은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하지만 서로마 제국은 이미 멸망한 후였으니 황제는 이름뿐인 자리였다. 그나마 924년부터 40년 가까이는 황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이름뿐인 황제였기 때문에 공석이 큰 문제는 아니었다. 신성로마제국의 본격적인 시작은 962년 독일 왕국의 오토 1세가 교황 요한 12세로부터 황제 대관을 받으면서부터이다. 이탈리아 왕국의 군주 베렝가리오 2세가 교황령을 침략하자 오토 1세는 이탈리아 왕국을 정벌하고 그 공로로 교황으로부터 로마 황제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교황이 특별히 ‘황제’의 칭호를 준 것은 유럽 전체의 지배자를 자처하는 동로마 제국을 의식해서였다. 그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당시 위세를 떨치던 오토 1세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은 통일된 국가라기보다는 남독일 영주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탈리아 북부, 보헤미아, 스위스 칸톤 등 독자적인 세력들과 300여 개 자유 도시가 속한 모임이었다. 그래서 이를 ‘영방국가체제’라 부르기도 했다. 프리드리히 1세 등 몇몇 황제는 명실상부한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기 위해 이탈리아 정벌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1254년 이후 다시 제위가 비는 이른바 ‘대공위시대’를 맞았다. 이후 1273년 교황 그레고리오 10세의 요청으로 열린 프랑크푸르트 선제후 회의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 1세가 황제로 뽑혔고 한동안 독일의 귀족들이 돌아가면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에 앉았다.
신성로마제국의 명목상 수도는 로마였다. 하지만 제국 초기부터 수도의 기능은 황제가 사는 도시에서 했다. 황제가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 그에 따라 수도도 같이 따라다녔다. 그나마 1176년 베네치아조약으로 교황령이 신성로마제국에서 분리되면서 아예 수도가 나라 밖에 있는 꼴이 되기도 했다.
신성로마제국은 ‘카노사의 굴욕’라는 사건을 통해서도 서양사 교과서의 한 장을 장식한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는 황제의 권한을 강화하고 봉신 권력을 약화할 목적으로 고위 성직자인 주교 서임권을 손에 넣으려 했다. 그러나 교황청이 이를 용인할 리 없었다.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하인리히 4세를 파문 조치했다. 당시 교회로부터 파문당한 황제는 세속 황제의 자리까지도 지킬 수 없었다. 결국 1077년 1월 하인리히 4세는 이탈리아 반도 북부의 카노사성에서 파문을 취소해 달라고 교황 그레고리오 7세 앞에 무릎을 꿇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최전성기는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황제를 배출한 15세기 중반 이후였다. 16세기의 신성로마제국은 에스파냐와 나폴리 왕국까지 그 영토를 넓혔다. 그러나 엄밀히 얘기하면 그 영토는 카를 5세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를 받는 땅이었을 뿐 신성로마제국의 영토라고 볼 수는 없었다. 카를 5세는 신성로마제국만의 황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교황도 그의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로 그의 권세는 막강했다.
하지만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으로 신성로마제국은 큰 홍역을 치르게 되었다. 황제 카를 5세는 무리한 개신교 탄압과 합스부르크 가문의 내부 상속 문제로 제후들의 신망을 잃었고, 이후 에스파냐로 달아나 다시는 독일로 돌아오지 못했다. 신성로마제국은 독일에서 일어난 종교 전쟁인 30년전쟁 이후 급속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종교개혁으로 독일 내에서는 신교와 구교가 갈등하게 되었고 이 전쟁에 프랑스, 덴마크, 에스파냐 등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참전하였다. 이 전쟁으로 독일 국민의 3분의 1이 죽고 제국 전체가 황폐화되었다. 또 30년전쟁을 마무리한 베스트팔렌조약으로 합스부르크 가문 영향력 아래 있던 각 지역의 영방들이 사실상 독립했고 신성로마제국 영토도 줄어들었다.
제국의 이름은 유지되던 때에도 유럽 사람들은 신성로마제국을 거의 없어진 나라 취급을 했다. 그러던 중 전 유럽을 손에 넣은 나폴레옹은 1806년 6월, 3개월 안에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하지 않으면 선전포고하겠다는 최후 통첩을 오스트리아에 보냈다. 7월 파리에서는 신성로마제국 소속의 16개 영방이 나폴레옹을 보호자로 하는 라인 동맹을 결성하면서 제국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결국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란츠 2세는 신성로마제국의 제위와 제국에서의 모든 지위를 포기한다고 8월 6일 선언했다. 이름만으로나마 1천여 년을 이어왔던 신성로마제국이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1756년 ‘나라들의 풍습과 정신에 관한 글’이라는 자신의 글에서 신성로마제국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스스로 신성로마제국이라 칭하였고 아직도 칭하고 있는 이 나라는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가 로마제국의 이름으로 1천여 년을 존속했다는 사실은 로마제국에 대한 유럽 사람들의 향수가 얼마나 강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황인희 작가(다상량인문학당 대표‧역사칼럼니스트)
'성도의 세상읽기 > 사회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젊음이 사라지고 보석처럼 남은 내 젊음 그대에게 전합니다"...인문학 강연회 'HEYDAY 전성기' (0) | 2023.08.02 |
---|---|
코레일 "폭염으로 레일 휘어질 경우 대비 서행 운전 중" (0) | 2023.08.02 |
"더위엔 한국식 찜질방"...WP '폭염 탈출' 방법으로 추천 (0) | 2023.08.01 |
8월 초 ‘살인 폭염’ 비상...유엔은 ‘지구 열대화’ 선언 (0) | 2023.08.01 |
"도시로 뱀들이 피서온다고?"....인천, 용인 아파트 단지에 뱀 잇따라 출몰 (0) | 2023.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