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지원금이 '차별해소'라는 억지 주장은 납득 어려워
결혼이 선택이듯 비혼도 선택의 문제...저출산 시대에 의식부터 바꿔야

우리나라의 2023년 4분기 합계 출산율이 0.65명을 기록해 0.7명 이하로 떨어졌다. 남녀 2명이 만나 자식 2명 낳으면 인구는 단순 재생산된다. 합계 출산율이 0.7명이면 대한민국은 ‘인구 소멸국’의 최상단에 위치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결혼과 출산’은 남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란 인식이 확산되고 비혼(非婚)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비혼 직원에게도 “회사에서 지급하는 결혼축하금과 같은 '비혼금(非婚金)'을 지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노동계에 따르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은행지부는 올해 노사 임금·단체협약 협상 과정에서 비혼금 지급을 정식으로 요구하기로 했다고 한다. 결혼하는 직원에게일정 금액의 결혼축하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비혼을 선언(결심)한 직원에게도 동일한 금액을 줘야 차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혼축하금’이 성립되는 셈이다. 기상천외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O 미혼(未婚)과 비혼(非婚)의 차이
‘미혼(未婚)’과 ‘비혼(非婚)을 대비 시켜 보자. 미(未)는 ‘아직 되지 않은’, 비(非)는 ‘아님’의 의미를 갖는다. 미혼은 ‘마땅한 짝을 찾지 못해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비혼은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작정한 결과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혼인상태가 아닌 데에는 일치하나 현상에 이르는 논거는 판이하다.
비(非)정규직은 회자되지만 ‘미(未)정규직’은 생소하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원하고 되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아직’ 비정규직임을 함축한다. 주지하다시피 자신이 원한다고 정규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또는 남이 정한 기준을 충족시킬 때 비로소 정규직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할 때 정규직이 될 수 있다면, ‘미(未)정규직’이 맞는 개념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정규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결혼에 대해 연령 이외에 다른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중혼이 아닌 한 성인이면 누구나 자유의사에 따라 결혼할 자유가 있다. 사회가 결혼 여부를 승인할 권리가 없다. 미(未)와 비(非)를 엄격히 구분한다면, 비혼은 개인 취향에 따른 선택이라기보다 ‘결혼제도’를 부인하는, 심하게 표현하면 가족제도를 부정하는 것일 수 있다.
O 비혼지원금이 결혼축의금에 대한 ‘차별 해소’라니
‘비혼론자(非婚論者)’들이 주장하는 대로라면, 비혼이라는 이유로 금전적 손해나 차별적 대접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납득하기 어렵다. 결혼 축의금은 결혼이란 행동 선택에 대한 보상이다. 그렇다면 비혼지원금은 어떤 행동 선택에 대한 경제적 보상인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부작위’를 근거로 보상을 할 수는 없다. 결혼 축의금은 차별이 아니다. 누구든지 결혼하면 축의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차별은 ‘의도를 갖고’ 누군가를 부당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직 내에서 인사에 불이익을 당했다면 이는 평등권 침해로 그야말로 소송감이다. 하지만 결혼축의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비혼자에 대해서도 그에 상응하는 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억지이다. 사회는 비혼자를 차별한 적이 없다. 결혼을 안했기 때문에 축하금을 줄 기회를 포착하지 못했을 뿐이다. 경시대회에서 1등 부상으로 현금을 지급했다고 이를 받지 못한 참가자가 차별을 당한 것은 아니다.
O 세법이 인정하는 가족수당과 세제혜택도 차별인가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면 배우자와 자녀에 대해 수당을 지불하고 세금을 감면해 준다. 부양가족이 생겼기 때문이다. 부양가족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당사자가 지지만 국가도 세제혜택을 통해 일정 부분 책임을 분담한다. 모든 문명국은 그렇게 하고 있다.
비혼으로 가족수당을 받지 못하는 것도 ‘차별’인 가? 비혼지원금 지급의 취지는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구성원에게 최대한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하자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보편적 복지를 시행하는 것이 옳다. 굳이 비혼을 지렛대로 걸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비혼을 ‘사회적 권리’로 인정해 달라는 것 밖에 안된다.
O 비혼지원금 도입 사례
비혼 지원금을 도입하는 기업이 점차 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1월부터 비혼을 선언한 임직원에게 결혼 지원금과 같은 수준인 기본급 100%와 유급휴가 5일을 준다. 경조사 게시판에 본인이 비혼을 선언하는 게시물을 올리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노조는 올해 노사협상 요구안에 비혼 지원금 도입을 핵심 사업으로 공식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CJ대한통운도 지난해 3월부터 비혼을 선언한 만 40세 이상·근속 연수 5년 이상인 임직원에게 축하금 100만원과 7일의 휴일을 제공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신한은행은 2020년부터 나이와 상관없이 미혼인 직원에게 연 1회 ‘욜로’(YOLO) 지원금을 10만원씩 주고 있다. 기혼 직원에게 주는 결혼기념일 축하금과 같은 액수다.
선의로 해석하면 이 같은 비혼자 복지는 혼인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결혼 축하금, 자녀 학자금 지원 등 기존 기혼·유자녀 중심의 복지 혜택을 더 이상 임직원 다수가 누리지 못한다는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정’이 화두인 MZ세대 직원이 늘어난 요즘은 실제 내게 제공되는 혜택이 무엇인지가 좋은 직장의 평가 기준이 되면서 ‘비혼 복지’는 더 늘어날 여지가 있다.
O 결혼이 비혼자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나라면
결혼이 비혼자에게 상처를 주는가? 그렇지 않다면 결혼이 선택이듯이 비혼도 선택의 문제이다. 결혼에 따른 유형무형의 혜택은 이미 알려진 대로다. 비혼은 그 같은 혜택을 포기하는 대신 결혼을 선택한 사람이 얻지 못한 만족을 다른 데서 얻겠다는 것이다. 비혼을 선택했으면 쿨(cool)하게 행동해야 한다.
비혼지원금을 ‘공정의 프레임’으로 걸고 넘어질 일은 아니다. 비혼지원금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비혼을 장려한다”는 뉘앙스가 묻어있기 때문이다. 비혼지원금을 수령하고 결혼을 하면 이미 받은 비혼지원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혼지원금을 받고 퇴사한 직원은 어떻게 해야 하나? 비혼지원금을 받기 위해 회사를 이리저리 옮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시시콜콜한 질문이 꼬리를 문다.
대한민국은 합계 출산율이 0.7명대를 뚫고 지하실로 곤두박질 쳤지만 ‘출산을 장려하는 국가 슬로건 하나 없는’ 나라가 돼버렸다. 결혼과 출산이 애국이다. 결혼은 인륜지대사이며 시회를 지탱하는 가족을 구성하는 성스러운 행사이다. 결혼과 출산이 최고의 애국운동이다. 이를 부정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국가소멸 위기 불식의 첫 단추는 의식을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비혼, 비혼 지원금이라는 말부터 발을 붙이지 못해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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