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께서 지상에 계시는 동안 형성되었던 제자의 수는 어느 정도였을까? 학자들에 따라 주장하는 수치가 천차만별인데, 일단 12사도를 중심으로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적극적으로 좇았으며 오순절 다락방에 모였던 인원은 120명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70명을 세워 둘씩 파송한 적이 있었으며, 부활하신 후에는 한꺼번에 500명에게 보이신 적도 있었다. 따라서 비록 생업을 포기하고 예수를 뒤따르지는 않았지만, 3년여의 공생애 기간동안 예수께서 전하시는 복음을 직접 듣고, 예수를 메시야로 믿으며 예수를 증거하고 따랐던 사람들은 상당수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회당장 야이로나 종을 치료받은 백부장, 사마리아성의 여인, 나인성의 살아난 청년, 여리고성의 세리장 삭개오,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사람 요셉, 그리고 예수님께 직접 고침 받고 죄용서 받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직접 따라다니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인 복음의 증거자들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의 기적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참으로 복된 사람들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께서,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 하고 말씀하신 것 같이, 믿음은 보고 안보고의 문제가 아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 예수님 당시에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직접 만났으나, 결코 저들이 다 따른 것이 아니며,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오히려 예수를 죽이기까지 했다. 반면 눈으로 직접 예수를 보지 못했지만, 지난 2천년동안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국백성이 되었다.
● 사도 바울도 예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도 바울의 연배는 예수님보다 서너 살 아래고, 다른 예수님 제자들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까닭은 알 수 없으나, 온 예루살렘이 떠들썩한 가운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할 때도 바울은 그 자리에 없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기독교인들을 색출하여 죽이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찬란한 빛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즉 엄밀한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눈으로 예수님의 어떤 형상을 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그 어떤 제자들보다 위대한 복음 증거자의 삶을 살았다. 어떤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를 보지 못하고 믿어야 했던, 또 믿어야 하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의 모범이 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이란 이름은 헬라식 이름으로 ‘작은 자’라는 뜻이다. 바울로 이름을 바꾸기 전 유대식 이름은 ‘사울’인데, 그 뜻은 ‘여호와께 구하다’, ‘요구하다, 희망하다’이다.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두 가지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사도행전에 보면, 1차 전도여행 중 이방인들에게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사울이란 유대인 이름 대신 바울이란 이방인 이름만 사용함으로써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서의 바울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바울은 특별한 배경을 갖고 태어났다. AD 1년경 지금의 터키 남동부지역인 길리기아의 수도 다소에서 출생했다. 즉 유대 본토에 사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 가족이었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족속으로, 베냐민 지파에 속했으며,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즉 부친이나 모친 한쪽이 이방인이 아닌 순수혈통의 이스라엘 족속이었다. 그리고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라고 할 만큼 그는 히브리신앙의 엄격한 규율 안에서 성장했다.
우리는 바울의 부친이 부유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들을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보내어, 당시 이스라엘 최고의 석학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교육받게 한 점이다. 그리고 바울이 그 당시로서는 쉽게 얻기 어려운 로마시민권을 날 때부터 갖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부친이 로마제국에 큰 공을 세웠거나 아니면 돈을 주고 산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철저한 유대인이요 바리새인이면서, 동시에 로마시민권을 갖고 이방세계에서 태어나 헬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장차 바울이 복음 사역을 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그의 스승 가말리엘 랍비는 헬라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비교적 열린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부활과 천사 그리고 그 밖의 성경의 근본적인 신앙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젊은 바울의 스승으로서 이상적이었다.
바울은 평생 독신으로 사도직을 수행했으며, 천막 제조기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구애받지 않고 자비량으로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후, 행23:16에 보면, 유대인들이 매복하였다가 바울을 암살하려고 하는 정보를 그의 생질이 알려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로보아 그의 누이가 예루살렘에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일평생 그 육체의 가시로 고통 받는데, 구체적인 병명이 무엇인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바울이 이 가시를 제거해 주기를 주님께 간구한 점과 또 이로 인해 바울이 겸손해 질 수밖에 없었음을 볼 때, 단순한 병은 아닌 것 같다. 많은 학자들은 그에게 간질병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바울의 성품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성품을 지녔다. 그는 이성과 영력을 아울러 지닌 사도이다. 그리고 불타는 정열과 강철 같은 의지에 부드러운 정서와 여성다운 온화한 면을 아울러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활달한 기상과, 투철한 사명감과 강한 윤리 의식 존엄한 정의감이 곁들여, 인간으로서 존귀한 성품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1) 바울의 서신 가운데 성도들에게 많은 은혜를 끼치는 것이 바로 옥중서신이다. 우리는 바울을 생각할 때, 감옥에서 조차도 좌절하지 않고 기도와 찬양을 쉬지 않은 한 위대한 헌신자를 보게 된다. 그는 약 20년간에 걸친 전도 여행을 목숨을 걸어놓고 쉼 없이 달려갔다. 한마디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자신을 송두리째 던져 넣은, 그 어떤 장애물도 그를 멈추게 할 수 없었던, 복음에 미친 사람이었다.
2) 그러면서 그는 동역자와 함께 팀을 구성해 선교 활동에 주력한 것을 볼 때 매우 조직적이고 치밀한 사람이었다. 구제헌금을 할 때도 강제성을 띠지 않고 자발적인 참여를 촉구할 만큼 매사 무리 없이 진실 되게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복음의 씨를 뿌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신앙이 잘 자라도록 서신을 통해 계속해서 돌본 것으로 보아 성도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투철했던 사람이다. 또한 복음을 위해 자신의 전 시간을 바쳐 헌신하면서도 밤낮으로 일하여 자신의 생계를 꾸림으로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 한 것으로 보아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3) 그런데, 그의 체격은 정신세계와는 달리, 고린도교회의 적대자들에게 무시당할 정도로 보잘 것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세기 ‘바울과 테클라의 행적’(The Acts of Paul and Thecla)이라는 한 외경에 보면, “대머리와 휜 다리에 눈썹은 서로 맞닿고 코는 매부리에 단신의 다부진 체구를 가진 호감에 찬 사나이. 그는 인간의 모습에 천사의 얼굴을 가진 자이다.”라고 바울을 묘사하고 있다. 물론 바울은 이것을 영력으로 극복해 나아갔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가 체격은 왜소했을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강인한 체력과 불굴의 정신력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다. 바울은 목숨을 내건 고된 전도 여행을 하면서 심한 탄압과 핍박을 능히 견디어낸 것으로도 알 수 있다.
4) 그의 설교는 아주 유창하지는 않았으나 언제나 은혜로 충만하여 많은 추종자를 얻었다. 그러나 그는 언변보다는 문필에 더 뛰어났다. 바울은 교회내의 많은 문제들과 개인적인 삶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성경에 나타난 관련 계시에 비추어 적절한 답변을 제시해 줌으로써 기독교인의 삶의 표준을 제시해 준 명설교가였다. 그의 서신에 보면 추상같은 질책과 함께 따스한 인정이 뒤섞여 있다. 그는 주변 상황을 고려하여 적절한 설교의 논지를 채택하고 설교 방법을 달리할 만큼 상황 판단이 정확하고 뛰어난 사고력을 소유한 자.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그의 공생애에 대해 체계 있게 설명하여 기독교의 교리를 세웠으며, 교리서신, 옥중서신, 목회서신 등 분량 면에서 볼 때, 신약성경의 1/3 가량(13/27)을 저술함.
5) 그에게 결점이 있다면 너무 성급한 점이었다. 그는 이 때문에 후회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전도여행 시 도중하차한 마가의 실수에 대해 용서치 않고 바나바와 심히 다투고 따로 전도 여행에 나설 만큼 과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긍정적으로 보면, 큰일을 위해 사소한 인정을 버리고 매진하는 진취성과 아울러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해 결코 간과치 아니하는 준엄한 성격의 소유자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6) 그는 완전한 자유인이요 로마 시민권을 가진 당당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내세우기는커녕 모든 부류의 사람들 앞에 종 된 심정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파한 것으로 보아 매우 겸손한 자. 주님은 이런 그를 이상 중에 불러 하늘나라를 보여 주셨다. 하지만 그는 14년이 지난 후에 자기 말이 상당히 먹혀 들어갈 때를 기다려서 신중히 발설하고 있다. 그는 그 하늘나라의 호화찬란한 광경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주의 종으로서 이상 중에 하늘나라에 가본다는 것은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자칫하면 자고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가시’를 주셨는지 모른다.
● 역대 하나님의 사람 중에서 가장 많은 시련을 겪은 사역자 가운데 한 사람이 바울이다. 그는 사울에서 바울이 된 후로 순교할 때까지 시련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역사에서 그만큼 비중이 크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바울의 행적에서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크게 들어 쓰셨으며 그의 사명이 얼마나 중차대했겠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런 큰 인물이었기 때문에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쓰러뜨리려고 그야말로 ‘우는 사자와 같이’ 덤벼들었던 것이다. 그는 앞날이 촉망되는 인물로 명예와 지위가 그에게 약속되어 있었다. 만일 그가 원한다면 처자식을 거느리고 유명한 율법사가 되어 평안히 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먹고 입을 걱정이나 시련에 시달릴 까닭이 없었다.
그가 주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에 가는 도중에 뜻밖에도 주님의 부름을 받아, 하루아침에 주를 증거하는 새 일꾼으로 180도로 전향하게 되자, 한 번도 편한 잠을 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들볶이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빌면, ‘수고를 넘치도록 했던’ 것이다. 그는 감옥을 제집 드나들 듯 했으며, 여러 번 곤장을 맞았으며 여러 번 죽을 뻔했고,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기도 했다. 그는 강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가운데 헐벗고 굶주리며, 떨면서도 늘 교회를 위해 염려했다. 그는 실로 이러한 연단 속에서, ‘정금보다 귀하게 되어(사13:12)’ 자기의 갈 길을 다 달려갔던 것이다.
● 그러면, 바울은 왜 이같은 고생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고,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가? 바울이 목숨을 걸고 전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구약의 율법이 아니라, 자유케 하는 복음이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행위로 구원받을 인생은 없으나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이 구원은 오직 한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 또한 율법을 완성하는 것은 사랑으로, 성령의 사람은 사랑의 법을 성취하는 자이다. 바울은 주의 사랑이 강권하여 이 놀라운 생명과 소망의 복음을 전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이 외에도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윤리가치의 체계와 구체적인 실천사항들을 제시함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파하신 복음의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여, 기독교와 교회의 기틀을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사도행전 이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바울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AD63년경에 석방되었고, 네로의 박해 때 다시 체포되어 로마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바울은 30대 초반에 회심하여, 아라비아를 거쳐 다소와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40대 초반에 1차 전도여행을 시작으로 50대 후반에 로마로 향하게 된다. 로마 수감생활에서 풀려났을 때 서바나(스페인)를 방문했을 것으로 보며, 두 번째 로마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60대 중반에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 그리스도 앞에서 약한 자였던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강한 자가 되었고, 이방인의 사도로서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가는 정열적인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다. 이는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를 여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속죄의 은총을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강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아울러 회심 이후 일평생 복음 전파에 헌신한 바울의 태도는 신앙생활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미온적 신앙에 머물게 되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조금만 자신의 역량이 뛰어나고 주위로부터 인정받을 때 교만해지기 쉬운 우리 모든 성도에게 겸손의 모본을 보여 준다. 우리는 과연 자신이 맡은 직분을 감당함에 있어 이같이 자신을 감추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드러내며, 또한 그리스도의 영광뿐만 아니라 고난에까지 동참하려는 확고한 자세를 갖추고 있는가 다시 한 번 돌이켜 보아야 하겠다. 이와 같이 견고하여 흔들림 없는 바울의 모습은 조그만 환난과 어려움에도 좌지우지되는 연약한 우리들에게 큰 도전을 준다.
하여튼 바울은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함께 태동한 교회가, 사도들을 비롯한 많은 헌신적인 전도자들에 의해 복음이 폭발적으로 확산되어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대와 사마리아와 로마 제국 전역에까지 전파되어 갔던 초대교회 당시에, 처음에는 철저한 유대주의자로서 기독교를 박해했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주를 만나 회심한 후 이방인의 사도로서, 유대인의 온갖 핍박과 또 로마제국의 박해를 극복하며 기독교의 세계적 전파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위대한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았던 대 사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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