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고보’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야곱’과 같은 이름으로, 헬라식 표현이다. 원래의 뜻은 ‘밀어낸 자’, ‘추종자’ 혹은 ‘발꿈치를 잡은 자’이며, 후대에 ‘속이는 자’라는 의미가 덧붙여졌다. 야고보라는 이름은 신약성경에 여러 명 등장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12사도의 한 사람으로서, 요한의 형제인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역시 12사도의 한 사람인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그리고 마리아의 아들로 예수님의 친동생이었던 야고보가 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인물은 예수님의 친동생이자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이다.
나사렛의 목수 요셉의 가정은 예수님 이외에 네 명의 형제와 그 밖에 자매들이 있었던 것 으로 보인다. 마13:55, 막6:3에 보면, 그 이름까지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형제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다.
1)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형제’를 친형제로 해석하여 성경에 기록된 야고보와 다른 동생들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이후,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이라는 주장이다.(헬비디우스) 다시말해 예수님의 친형제자매들은 최소한 일곱명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2)또 다른 견해로는, 마리아가 예수님 이외에는 결코 출산하지 않았다고 보는, 마리아 숭배와 동정녀 신앙과 관련된 것인데, 이 주장에 의하면, 이들 형제자매는 요셉이 마리아와 정혼하기 이전에 전처에게서 낳은 자녀들이라는 것이다.(에피파니우스) 복음서에서는 이에 대한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후대에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보완된 기록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같은 기록에 의하면, 요셉이 마리아와 정혼하던 두 번째 혼인 때의 나이가 80여세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럴 경우, 오늘 우리가 살펴볼 야고보는 예수님의 맏형이 되는데, 이것은 사도행전의 연대와 동떨어지기 때문에, 마리아 숭배를 위해 조작되었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3)세번째의 주요한 견해로는, ‘형제’를 넓은 의미로 해석하여, 예수님의 형제로 소개되고 있는 이들은 예수님의 ‘사촌들’이거나 ‘친족’들일 것으로 본다.(히에로니무스) 이것 역시 마리아 숭배나 동정녀 신앙과 관련된 것으로, 마리아는 예수님 외에는 결코 출산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제기된 이론으로, 로마카톨릭교회(천주교)의 공식적인 견해이기도 하다.
그런데, 야고보를 비롯 성경에 등장하는 이름들이 예수님의 친동생이라는 주장 이외의 다른 주장들은, 성경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마1:25에 보면, 요셉이 마리아가 아들(곧 예수)을 낳기까지만 동침치 아니하고 절제했음을 밝히고 있는데, 이 말은 이후 그들이 결혼 생활을 통해 얼마든지 자녀를 낳았음을 짐작할 수 있고, 특히 눅2:7에 보면, 마리아가 ‘맏아들’을 낳았다고 기록함으로써, 그 이후 둘째, 셋째를 낳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와 아주 가까운 이종사촌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친형제들을 사촌인 이들과는 구분하고 있다. 마12:46 이하에 보면, 분명히 내 모친, 내 동생이라고 지적하며, 친동생들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리아가 요셉과의 사이에서 예수님의 친동생들을 출산했다고 해서, 마리아의 정결함과 존귀함이 결코 손상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굳이 성경에도 없는 사실을 조작하여 마리아를 신적인 존재로 숭배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아니다.
하여튼, 요셉이 죽은 후에 예수님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수일을 하면서 어머니 마리아를 도와 이 대가족을 돌보셨을 것이다. 가난한 목수의 가정, 많은 식구를 거느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헤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는 주의 말씀은 예수님의 체험에서 연유된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어머니 마리아가 낡은 옷을 기워 자녀들에게 입히는 가난한 생활을 목격한 데서 떠오른 말씀일 것이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도 예수님 바로 아래 동생으로서, 가족을 돌봐야 하는 고생을 예수님과 함께 나누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어렸을 때부터 한 지붕 아래서 고락을 같이하며 살아온 가족들이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친족들이나 이웃도 마찬가지다. 가족들은 심지어 예수님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한 적도 있었다. 이들이 경건한 유대인의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율법을 열심히 지켰을 것은 분명하지만, 상당 기간 예수님을 믿지는 아니했다. 마13:57에 보면, 예수님은 나사렛 고향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고도 자신을 배척하자,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자기의 친척과 자기 집 사람들이 자신을 배척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물론 나중에 예수님의 가족은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중요한 일원이 되기는 했지만, 이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목격하고도 쉽게 예수님을 뒤따르지 못했다. 모친 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최후의 만찬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겟세마네 동산에도 가지 않았다. 야고보를 비롯 그의 동생들은 가야바의 법정에도, 빌라도의 심판 자리에도 얼굴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주님은 심장이 터질듯 한 심정으로 외로이 서 있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그녀를 돌 봐 줄 것을 부탁해야만 하셨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인가? 비록 30년 가까이 한 가족으로 살았다 할지라도, 하늘에서 일깨워 주시지 않으면, 혈육만으로, 인간의 생각과 지혜만으로는 결코 주님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는’ 것이다.
● 그러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어떻게 주님의 제자가 되어, 후일 예루살렘을 책임지는 위대한 사도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을까?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특별히 야고보에게 나타나셨다고 했다(고전15:7). 따라서 사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이 야고보의 생애에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드디어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적인 현장에서 야고보의 모습은 제자들 중에 나타나기 시작한다(행1:14). 이 때 내린 성령은 그에게 큰 변화를 주었을 것이다.
‘히브리인에게 보내는 복음’이라는 문서에는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야고보는 여러 가지 소문을 전해 듣고 불안하고 괴로운 나머지 식음을 폐하고 있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뵈었다고 쓰여 있다. 이것이 그의 생애에 분수령이 된 것이다. 그 후부터 그는 겸손하여 자기를 주님의 형제라고 말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하고 이것을 한 평생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지냈다고 한다(약1:1).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야고보는 드디어 예루살렘 교회의 일원이 되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담대히 증거하기에 이르렀고, 이런 가운데 그는 점점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인물이 되어갔다. 구전에 의하면,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었다고 하는데, 초대교회 당시에는 이런 직분을 교회에서 임명한 것은 아니고, 12사도들이 점차 넓은 지역으로 선교사역을 확장하면서 예루살렘을 떠나게 되자, 예루살렘 교회에 머물고 있었던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이라는 것과 더불어 그의 개인적인 성품 및 고고한 영적 은사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되게 했을 것으로 본다.
원래 야고보는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은 유대인으로서, 의인이었던 그 부친 요셉의 감화를 받아 믿음이 독실하여, 기록에 의하면 그 무릎이 낙타의 무릎처럼 되도록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한다. 야고보는 매우 경건한 생활을 하여 율법의 한 구절도 소홀히 하지 않은 실천적인 신앙인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그의 서신 야고보서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유대인 중심의 예루살렘 초대교회에서 야고보는 당연히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인물은 물론 베드로였다. 그래서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후 삼년만에 베드로를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간다(갈1:18). 이때 바울은 보름동안 있으면서도 예루살렘 교회에서 베드로와 주님의 동생 야고보 외 다른 사도들은 만나지를 못한다. 즉 다른 사도들은 이미 예루살렘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러 떠나고 없었다. 그리고 베드로도 행12장에 보면, 요한의 형 야고보사도가 순교를 당한 후, 헤롯왕에게 잡혀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벗어난 후 도피하게 되는데, 이때 마가요한의 모친 집에 모인 사람들에게, 야고보와 형제들(곧 예수님의 형제들)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라 하고 다른 곳으로 피신한다. 이로볼 때, 12사도들은 핍박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피신하였으며,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야고보를 비롯, 남아있던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행15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1차전도여행을 마친 후 예루살렘에서 열린 최초의 사도회의에 참석하게 되는데, 이때 야고보는 이 회합의 주재자로 등장하고 있다. 갈2:9에도 보면, 사도바울은 교회의 기둥 같이 여기는 사람을 거명하면서,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야고보임을 드러낸 것이다. 이후 사도 바울은 3차의 전도여행을 마치고 로마로 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데, 이때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야고보를 만나야만 했다.
그밖에도 여러 기록에 보면, 주의 수제자 베드로도 야고보에게 겸손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로 볼 때, 야고보는 초대교회의 기틀을 세우고 유지시켜 나간 기둥으로서, 비록 12사도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선교 초기에 예루살렘을 비롯, 유대와 사마리아 등 팔레스틴 지역에 큰 영향력을 미쳤고, 특히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위대한 복음 사역자였음에 틀림없다.
● 바울의 복음은 율법을 지켜온 유대인들에게는 너무 개방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주님은 바울을 이방 전도에 나서게 했을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나, 유대인에게 한정된 것은 아니었고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결국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에서 크게 활약한 것은 야고보였다.
따라서 야고보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미 구약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메시야를 대망하며, 부활을 믿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참으로 진실하게 율법을 준수하며 경건하게 살아가고 있는 저들에게,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시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고 실천적인 신앙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는 믿음을 운운하면서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가 많은 것을 보고, 그들에게 권고했던 것이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이같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까닭에 야고보가 기록한 ‘야고보서’를 ‘지푸라기문서’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앙이 다만 지적이 되거나 감상적이 되고, 심지어 타 종교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자기만족의 종교에까지 전락되어가는 현실에서, 야고보의 실천적인 종교는 우리에게 큰 경종이 되고 있다.
●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 등,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야고보는, 금욕생활과 기도와 성전예배에 대한 엄격한 신앙생활을 통해 예루살렘 시민들의 존경과 함께 ‘의인 야고보’와 ‘서민의 보루’라는 별명을 얻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야고보는 자기의 생활과 예수에 관한 신실한 증거를 통해 많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했다고 한다.
AD62년경 백성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던 야고보를 없애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던 아나니우스 대제사장은 로마총독이 공석인 때를 틈타 야고보와 기독교인들을 체포하여 율법을 어긴 죄목을 씌워 처형한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러한 불의한 재판행위에 대해,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유대인들조차 빗발치는 항의를 하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아나니우스 대제사장은 그 직에서 해고당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성전모퉁이에 야고보를 세워놓고,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자가 되지 못하도록 설득하는 말을 하라고 하였으나, 그가 도리어 예수님과 복음에 대해 강력한 증거의 말을 하자 분노하며 치를 떨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야고보를 잡아 내동댕이치고 그에게 돌멩이질을 시작하였다. 야고보는 스데반집사와 같이 자기의 사형집행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이때 한 제사장이 이러한 살인행위를 중지시키려 했으나 어떤 자가 몽둥이를 높이 들어 야고보의 머리를 내리쳐 죽였다고 한다.
야고보는 죽기 일보직전까지 풍전등화와 같았던 이스라엘 나라와 겨레를 위해 중보기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경건한 사람들은, 야고보가 순교당하자, 야고보의 성실한 중보기도가 끊어지게 되었고, 결국 얼마가지 않아 AD70년 예루살렘은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후 무려 2천년동안 전세계에 유리방황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 정리해 보면, 야고보는 자신의 친형이라는 인간적인 선입견과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메시야 됨을 불신했던, 완고하고 고지식하며 율법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야고보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목격하고 또 성령충만하여 철저한 복음 사역자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이러한 야고보의 회심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가족을 가진 성도들에게 큰 용기를 준다. 즉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 믿지 않았으나, 결국 주를 영접한 야고보처럼, 지금은 어떤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혀 주를 믿지 않는 가족이 있다 해도, 우리가 계속하여 중보기도할 때, 주님의 은혜로 언젠가는 변화되어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열려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말고 불신 가족을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권면하자.
야고보가 구약 율법시대에서 신약 복음시대에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초대교회에 산적되어 있었던 수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잘 감당함으로써 초대 교회 신앙의 기초를 확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야고보 사도가 무릎이 낙타의 무릎처럼 될 정도로 철저하게 주께 기도하는 삶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이는 실로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신앙 자세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동산교회 모든 교우들도 이같이 기도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며,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나가는 믿음의 역사를 이루기 바란다.
그의 서신 야고보서의 내용을 통해 볼 때, 야고보는 겸손의 사람, 기도의 사람, 거룩한 삶을 살아간 실천적 믿음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신앙의 지식은 나날이 늘어가되 그 생활은 오히려 형식적이 되고 믿음의 열매가 없는 현대의 성도들에게 큰 도전을 준다. 진정한 믿음은 알고 깨닫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생활로 선하게 나타나야 하는 것임을 깊이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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