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성경인물설교(4) 노아(창9:1-29) / 박영철 목사

성북동 비둘기 2023. 6. 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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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류의 역사를 심판이란 기준에서 보면, 노아홍수를 중간으로, 창조에서 노아홍수까지, 그리고 노아홍수에서 세계 종말까지 둘로 나눌 수 있다. 그만큼 노아홍수는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노아시대 이전까지의 죄악은 홍수로 심판하셨다면, 홍수 이후 시대의 죄악에 대해서는 최종 불심판이 있을 것을 분명히 깨닫게 하는 예표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창조 세계는 죄악의 오염으로 인해 더 이상 참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가인의 후예들과는 달리 여호와 신앙을 보존, 확산하는 사명을 맡았던 셋 가계는 처음에는 부패한 세상 가운데서도 거룩성을 잃지 않고 계속 번성해 갔다. 그러나 세월이 감에 따라 셋 가계 내에서도 세속의 가치관에 동조하며, 죄악된 문명에 친숙해가는 무리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러한 불경건함이 셋의 후예들에게도 깊숙이 침투하여 마침내 그들마저 완전 동화되고 말았다. 성경은 이 사실을 단적으로 표현하여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6:3)고 지적하였다. 육체적 욕망과 가치관의 혼란에 젖은 인간들은 또한 절제의 능력을 지니지 못한 채 죄악을 가속화시켰으며, 끝내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게 되었다.

 

홍수 전의 세상을 성경은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6:11)라고 묘사하였다. ‘패괴라는 말은 썩었다는 뜻으로, 거역, 불순종, 방종 등 온갖 악으로 인해 악취가 나는 상태를 가리킨다. ‘강포는 해치다, 빼앗다의 뜻으로, 살인, 약탈, 강간 등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상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도무지 진실과 정의가 발붙일 틈이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부패한 환경에 물들지 않은 고독한 의인 한 명을 발견하셨다. 그가 바로 노아였다.

 

노아는 신앙적 측면에서는 의인이며, 인격에 있어서는 당세에 완전한 자였고, 그 생애는 하나님과 동행한 자로서 그 시대에 유일하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던 인물이었다. 물론 노아가 하나님과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도덕성이나 종교성이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그는 여호와의 은혜를 입었기’(6:8)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완전한 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노아는 홍수에 의해 영적으로 정결케 된 땅에서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어 새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노아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노아의 행적을 통해 그의 사람됨을 살펴보고, 교훈을 얻자.

 

(1)죄악된 세상의 조류에 휩싸이지 않은 의로운 성품.

 

의인이요 완전한 자 - 당시대의 극심한 타락 상황 가운데서도 특별히 노아는 신앙적인 측면에서 경건했고, 도덕적 측면에서 순결했다는 의미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살았다는 의미

 

- 특이한 것은, 5장의 족보와 비교해 볼 때, 유달리 자녀를 낳은 나이가 늦다. 보통 100세 전후인데 노아는 500세 된 후에 셈,,야벳을 낳는다. -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은 노아의 경건생활이 당시의 풍조와 달리 늦은 결혼과 늦은 자녀출산으로 이어진 것으로 해석한다.

 

(17:26-27)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뿐만아니라, 방주 바깥으로 나온 노아가 먼저 하나님께 번제의 단을 쌓았다는 것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말세에는 노아의 시대와 같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의롭고 거룩하게 살아갈 것을 교훈해 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나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고 있는가? 스스로 자문해 보고, 정말 혼탁한 이 세상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살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들림받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

 

(2)하나님의 방주 건조 명령에 순응한 순종의 성품.

 

노아의 방주 건조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아직 비가 안오고,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욕망에 따라 방탕하게 살아갈 때에도 오직 말씀에 따라 방주를 건조한 것은 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여러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자신의 경험과 계산과 판단을 아무리 동원해도, 어떻게 하나님의 명령의 이해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노아는 한마디도 반항하거나 대꾸하지 않는다.

 

(6:22)을 보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오늘날의 우리 성도들도 순종이 제사보다 나음을 생각하여 하나님 말씀에 신실히 순종하여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

 

(3)100년에 걸쳐 방주를 건조한 인내의 성품.

 

노아는 길이 약150m, 너비 25m, 높이 15m 가량의 거대한 배를 100년에 걸쳐 건조한다. 말이 100년이지,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얼마나 많은 조롱과 비난을 감수했겠는가? 얼마나 괴로운 순간이 많았겠는가? 그러나 노아는 낙심하거나 의심없이 끈기있게 방주를 건조한다.

 

100년을 방주를 만든 인내의 사람이니, 홍수가 났을 때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40일 동안의 집중적인 폭우, 해일, 범람, 노아 일가족이 방주 생활을 시작한 때로부터 정확히 370일이 지난 때에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었고, 그로부터 다시 57일이 지난 다음에야 땅을 밟게 된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씀처럼 성숙한 기독교인은 잘 참아야 한다. 끝까지 참아야 한다. 나는 얼마나 잘 참고 견디는가? 노아와 같은 인내의 사람이 되자.

 

(4)포도주를 마시고 술취하여 벌거벗는 실수를 하는 인간적 허점을 가진 자.

 

홍수가 끝난 후 노아는 산기슭을 개척하여 포도밭을 일군다. 노아에게는 세 아들, 즉 셈, , 야벳이 있었다. 어느날 함이 장막 안에 들어가 보니 아버지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벌거벗고 있었다.

 

눈꼴사납구만. 아니, 노인네가 망령이 났지. 술에 취했으면 취한거지 왜 옷은 다 벗고 저렇게 누워 있담.”

 

밖으로 나온 함은 셈과 야벳에게 빈정거리며 아버지 흉을 보았다. “형제들, 아버지가 이젠 갈 데까지 간 것 같구만. 술주정에 옷가지 모두 벗고..... 동네 창피해서 어디 얼굴을 들고 다니겠나.”

 

노아는 자식들에게 술에 취해 추한 모습을 적잖게 보여준 것 같다. 작은 아들 함이 아버지를 조롱하고 비웃은 것을 감안하면, 노아는 자주 술주정을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추한 모습을 보지 않았다. 뒷걸음쳐 들어가 옷을 입혀 드렸다. 사실 두 아들의 심정도 함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함은 겉으로 흉을 보았고, 다른 둘은 마음 속에 묻어둔 것뿐이다.

 

술에서 깨어난 노아는 한 술 더 떠 큰 실수를 저지른다. 자기를 흉보았던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를 내린다. 그리고 셈과 야벳은 축복한다.

 

아버지가 일하다가 한 잔 하고 실수 좀 했기로서니, 그걸 가지고 동네방네 나발을 불고 다녀? 네 형과 동생 발 뒤꿈치라도 닮아라. 이런 불효막심한 놈 같으니....”

 

사실 주정뱅이 아버지를 둔 자식들의 고통은 당하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것이다. 술에 취해 자주 행패를 부리게 되면 가족 관계는 미움과 불신이 생겨 비뚤어지기 마련이다. 술주정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노아처럼 벌거벗은 몸을 자식들에게 보이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의인으로 칭송받은 노아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과거의 의연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비웃음을 사는 술주정뱅이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가 들어 노망이 들었단 말인가?

 

우리도 노아도 평범한 한 인간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노아가 긴장감이 풀렸다고 생각도 되고, 혹시 시간이 흐르면서 교만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성경에서 의인이란, 전혀 죄를 짓지 않는 완전한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죄와 잘못을 저지르고 살지만 하나님과 함께 살려고 노력하고 회개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의인인 노아도 늘 한결같을 수는 없었다. 인간이기에 때로는 흐트러지고 망가지기도 했을 것이다. 화도 불같이 내고 욕설도 서슴지 않는, 그런 보통사람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노아를 더 친근하게 느낀다.

 

어떤 사람도 완전한 존재는 없다. 완전을 향해 때로는 성공과 실수를 반복하면서 노력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인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과 인간의 가치판단은 다르다. 부족한 면에서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노아. 그러나 믿음을 가졌던 노아. 그는 그야말로 위대한 보통사람이었다.

 

노아는 당세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였으나 노년에는 포도주를 먹고 술취함으로 벌거벗고 눕는 추태를 보였다. 이것은 아무리 의로운 자라 할지라도 인간이기에 실수하여 넘어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오늘날의 우리 성도들도 항상 하나님 앞에서 깨어 근신하고 주의함으로 사단이 틈타지 못하도록 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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