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설교(24) 엘리야(왕상19:1-21)
●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 환상 중에 나타난 인물이 누구? 예수께서 누구누구와 함께 얘기를 나누었나? (모세, 엘리야) 모세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국부(나라의 아버지)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러면 엘리야는 누구인가? 왜 변화산 환상 중에 엘리야가 등장했을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두가지 통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율법과 선지자였다.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 두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 ‘사랑’이라는 강령(핵심 내용)을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셨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인물로,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로,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얘기를 나누고 계셨던 것이다. 이처럼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데 자신을 아끼지 않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가장 실감나게 보여준 이스라엘 최고의 선지자였다.
엘리야는 죽지 않고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한 위대한 선지자였지만, 요단강 동편 길르앗 지방의 작은 마을 디셉 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그의 출생이나 신상명세에 대해 성경은 소상히 밝히지 않는다. 성경은 엘리야라는 인물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엘리야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라는 뜻이다.
●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이스라엘은 남북왕국으로 분열되어,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솔로몬의 부하였던 여로보암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북이스라엘 백성이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벧엘과 단에 신전을 세우고 두 마리의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게 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행위였다. 그후 북왕국에는 선정을 베푸는 왕은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고 끊임없는 반역과 살해로 이어지는 혼돈과 불신앙의 시대가 계속된다.
그 중에서도 최악의 왕은 이스라엘의 7대 왕 아합으로, 그의 치세는 문자 그대로 암흑시대였다. 비록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고 경제적으로도 번영과 풍요를 누리고 있었으나, 종교적으로는 극도로 타락한 시대였다. 아합왕은 주변국가와 결혼 동맹을 맺음으로써 백성들에게 이방국의 우상숭배를 강요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북이스라엘은 정통적인 여호와 신앙이 멸절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열왕기상 16장 30절에 보면,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라고 쓰여 있다. 그 배후에는 미모의 아내 이세벨이 있었다. 시돈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이 아합과 결혼하면서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종교를 끌어들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였다. 왕실에서부터 우상종교를 장려하고 우상숭배를 강요하므로 온 나라가 영적으로 패역하였다.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가 850명이나 있을 정도였다. 궁궐에 머무르는 우상종교의 선지자가 이렇게 많았다면 모든 예식이나 의식이나 궐내 행사에 이들의 활동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을 것이다. 정치와 내정까지도 이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에 대항하고 이들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게 보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종들은 몸둘 곳을 잃고 굴속에 숨어들어 간신히 연맹해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이처럼 탄압이 심했기 때문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자가 7천 명이나 있어도 자기 태도를 분명히 할 수 없어 나라 전체가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을 섬기게 되었다.
● 이러한 때에 혜성같이 나타난 하나님의 선지자가 바로 엘리야였다. 엘리야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왕상 17장이다. 그는 과감히 아합왕의 가증한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를 선포한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모든 사람이 숨죽이고 살아가던 시절, 이 얼마나 용감하고 통쾌한 선포인가! 이런 외침만으로도 엘리야는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야가 이렇게 용감하게 선포하긴 하였지만, 당시 아합과 이세벨의 기세가 얼마나 등등하였든지,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얼른 피신시키신다. 그리고 때가 올때까지 기다리게 하신다. 엘리야는 한편으로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아니, 아합왕에게 징계를 선포하라고 하실 때는 언제고, 힘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도망을 가야한다니!” 하지만 엘리야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
엘리야는 얼마간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들이 물어다 주는 음식으로 연명한다. 그리고 시냇물이 마르자 시돈에 속한 사르밧 과부를 통해 공궤받게 하신다. 엘리야가 이같은 고난의 피신 생활 가운데 배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온전한 믿음과 순종이었을 것이다.
시돈은 이세벨왕비의 고국이다. 그리고 엘리야가 신세를 져야 할 자는 이방인 과부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줄 굳게 믿고 마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무조건 하나님의 지시를 따랐다. 하나님은 무진장의 공급원이시다. 그러나 다만 신앙의 눈을 가진자 만이 이것을 볼 수 있다. 믿음이 있는 자와 하나님 사이에는 막힘이 없다. 그러므로 어떤 역경에서도 태연할 수 있다. 엘리야는 오직 하나님의 손길에 이끌려 움직였다.
그렇게 삼년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는 다시 엘리야에게 명령하신다.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아합과 이세벨은 새끼를 빼앗긴 사자처럼 살기가 등등하여 엘리야를 찾고 있었다. 이런 아합 앞에 나선다는 것은 얼마나 큰 모험인가? 그러나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엘리야에게는 아합 왕 따위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때마침 오랜 가뭄으로 백성들의 곤궁은 눈으로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산과 들의 곡식과 초목은 말라 죽고 백성들은 기갈에 시달리다 못해 잇따라 쓰러져갔다. 그러나 아합왕은 백성들의 이런 참상은 도외시하고 오직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말과 노새 먹일 풀을 구하려고 애썼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자기 가축이지 백성이 아니었다. 그가 찾는 것은 풀이지 하나님이 아니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떠난 죄로 말미암아 초래된 이러한 참상을 지적하고, 바알의 선지자 450명,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에 모이게 하여 자기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신 중 어느 쪽이 진짜 신인지 결판을 낼 것을 제의했다. 그리하여 갈멜산에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모여들었다. 엘리야가 제안한 결판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바알의 지지자들은 줄을 지어 입장했다. 기갈에 허덕여 비쩍 마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호기심 가득찬 눈초리로 떼를 지어 운집했다.
엘리야는 고독한 선지자였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편에 계심을 확신했다. 그는 큰 소리로 백성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이 말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야가, “너희는 한 송아지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나도 한 송아지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라고 말했다. 바알교는 원래 태양을 섬기는 종교이므로, 불의 신이 불로 응답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바알선지자들과 백성들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찬동했다.
하나님의 역사에 사람이 잔재주를 부리는 것은 금물이다. 지상의 것은 일체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만 의지해야 한다. 모든 것에 절망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만 의지해야 한다. 모든 것에 절망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우러러 볼 때 비로소 산 신앙이 약동하게 된다.
하루종일 바알선지자들이 자신의 신을 불렀으나 응답이 없었다. 하지만 엘리야의 기도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순식간에 태워버렸다. 백성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목격했다. 잃어버렸던 신앙의 열심이 회복되었다. 그 자리에서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 850명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제 비로소 축복의 비를 내릴 때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반역과 죄악이 관영한 곳에 축복을 내릴 수는 없다. 이런 것들은 모두 깨끗이 청산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때를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바알교는 분쇄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되돌아오고, 아합왕도 하나님의 권위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의 진노는 가라앉고 축복의 단비가 전국을 촉촉이 적셨다. 엘리야는 마음 속으로 개가를 부르고, 긴장이 풀리면서 한시름 놓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이처럼 승리했을 때이다. 긴장이 풀리면 적은 그것을 노려 역습해 온다.
● 아합왕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이다. 그는 맛좋은 음식을 먹고, 자기 말과 노새가 살지고, 욕구를 충족시키기만 하면, 백성이 하나님을 믿건 바알을 섬기건 조금도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아내 이세벨은 신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열심히 바알을 섬겼다. 그녀는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을 모두 칼로 찔러 죽인 것을 알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그녀는 즉시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협박했다. “내가 내일 이맘 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만일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본래의 위치에 있었다면, 분명히 이세벨의 말에 반발하여 단호히 대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엘리야게게 뜻하지 않은 역습이었다. 허를 찔린 그는 당황했다. 그리하여 자기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한 하룻길쯤 행하고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하나님께 자기 생명을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다.
갈멜산에서 사자처럼 분연히 일어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한 하나님의 사람이 어찌 이같이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사람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을까? 그러나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엘리야로 하여금 엘리야이게 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엘리야에게서 하나님의 은총을 빼버리면 그는 마른 나무 막대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엘리야 본래의 모습이었다.
용사는 쓰러졌다. 그는 차라리 죽기를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러나 쓰러진 종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는 얼마나 자비로우신가? 엘리야는 지쳐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 천사는 밤이 새도록 그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이윽고 아침이 되어 눈을 떠보니, 옆에는 빵과 물이 놓여 있었다. 엘리야는 어머니의 무릎에서 깨어난 어린 아이처럼 달게 먹고 마셨다. 그는 식곤증으로 다시 누워 사르르 잠들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깨워 다시 빵을 먹였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움직이는 영광을 누리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실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실의에 빠졌을 때, 실족했을 때, 또는 일에 실패했을 때, 동일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베드로는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하고 자기의 결심을 말했다. 그러나 주께서 로마 병정에게 잡히고 위기에 놓이게 되자, 세 번이나 주를 모른다고 부인했다. 어떤 역경에서도 변치 않고 주의 사랑을 느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평강’으로 찾아 오셨고, 실의에 빠진 베드로에게는 특별한 배려가 필요했던 것이다. 엘리야도 실의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베푸셨다.
엘리야의 몸과 마음은 음식과 깊은 잠에 의해 다시 상쾌해졌다. 그는 더욱 큰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 위해, 40주야를 겅러서 호랩산으로 갔다. 그는 그 산속 동굴에 들어가 묵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하고 물으셨다. 엘리야가 대답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그는 하나님의 종은 자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숨겨 두신 군사가 있었다. 바알에게 경배하지 않은 자가 아직도 7천명이나 남아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외로운 영적 전투를 할 때,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라. 누군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하나님이 사람이 있음을 기억하라.
● 엘리야는 동굴에서 나와 산 위에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대하게 되었다. 산을 찢고 바위를 깨는 폭풍, 땅을 뒤흔드는 지진,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것들은 때때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표시로 생각해 왔으나, 그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따라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 후로, 가느다란 음성이 조용히 들려왔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음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은 언제나 조용하고, 하나님의 역사는 숨은 곳에서 이루어진다. 3년 반에 걸친 큰 가뭄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한 마음을 깨칠 수 없었다. 갈멜 산상에서 기도하여 불이 내리게 해도, 적을 멸절시키지는 못했다. 이와 같은 위세가 있는 외적인 현상에만 기대하고 있던 엘리야는 위기에 몰리자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곳에서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네 길을 돌이켜”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여러분이 서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어떤 현상만을 좇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나는 혼자뿐이라고 생각하며 절망의 자리에 엎드려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던 영적 추억에 잠겨, 오늘 이 순간 방심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길이 아니라, 내 생각, 내 경험, 나의 자존심과 감정에 이끌려 나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과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소란한 세상의 소리, 내 안의 소리들을 죽이고, 심령 가운데 속삭이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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