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성경인물설교(23) 솔로몬

성북동 비둘기 2023. 6. 1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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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은 태어나기 전부터 다윗왕을 계승하여 왕위를 물려받을 사람으로 선택되었다. 그뿐 아니라 솔로몬이라는 이름도 하나님께서 미리 지어주셨다. 하나님이 솔로몬을 사랑하는 마음이 각별해서, 그를 여디디야라 호칭하기도 하였다. 이는 여호와께 사랑을 입은 자라는 뜻이다(대상 22:9,삼하 12:35).

 

이처럼 하나님은 물론 온 백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솔로몬은 이스라엘을 중동 전체를 지배하는 대국으로 만든다. 솔로몬은 당시 그 일대의 모든 왕들에게 조공을 받았고 온 백성들은 자신들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안락함을 누리며 살았다. 그들이 얼마나 풍요롭게 지냈는지는 솔로몬 궁전의 하루 음식 준비량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솔로몬의 하루치 음식은 가는 밀가루 30가마, 굵은 밀가루 60가마, 살진 소 10마리, 풀밭의 소 20마리였으며, 100마리, 그 외에 수많은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들이 그의 식탁에서 매일 소모되었다. 물론 이것은 넘쳐나는 왕궁의 손님들로 인해 매일 연회가 벌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지식으로 최고의 지성인답게 많은 저작을 남겨 천문학, 문학, 수학 분야에서 그 분야 최고였던 아라비아 쪽 동방계 사람들보다 더 뛰어났었고, 건축술과 법률 분야에서도 그 분야 최고였던 이집트인들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었다. 따라서 천하에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들이 한 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솔로몬에게 몰려들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지혜의 보고인 잠언과 전도서뿐 아니라 아가를 비롯 1,005곡의 아름다운 노래, 식물과 동물에 대한 분류도감을 저술하여 발표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솔로몬왕이 이토록 영화롭고 뛰어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솔로몬을 훌륭한 임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역사 기록 속에서 솔로몬은 오리혀 가증한 우상을 들여오는 데 앞장 선 왕이자 백성들의 생활을 결국 가난하고 어렵게 만들어 버린 경제정책 실패자로 드러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식 대에 이르러 발생한 이스라엘 최고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남과 북의 분열을 조장한 왕으로까지 여겨진다.

 

이와같이 가장 성공한 자 같으나 실패의 짙은 그림자에 가려있는 솔로몬왕의 생애를 주요 행적을 통해 살펴보고 교훈을 얻도록 하자.

 

솔로몬이란 이름은 샬롬에서 나온 것으로 평화로움’, ‘화평함이란 뜻. 다윗과 밧세바 사이의 두 번째 아들이자 다윗 왕의 열 번째 아들로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모친 밧세바가 어떤 여인인지 평가를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솔로몬이 어떤 가정교육을 받았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일단 그는 왕궁에서 왕자로서의 교육을 받았으며, 특히 나단 선지자를 통해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윗의 아들이 여럿이었기 때문에 왕궁에는 바람 잘 날이 별로 없었다. 압살롬의 반역과 장남 아도니야의 반역 등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이미 선택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려움 가운데서도 결국 다윗을 계승하여 통일 이스라엘왕국의 제3대 왕으로 즉위하는데, 이때 그의 나이 20세였다.

 

솔로몬이 활동할 당시 이스라엘은 선왕 다윗의 활발했던 정복 사업 덕택에 인근지역에서 명실상부한 최강대국으로 군림했었다. 당시 애굽은 제21왕조 시대로서 국내적 혼란과 함께 아직 제국으로서의 세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팔레스틴 지역의 대부분의 약소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속국으로서 조공을 바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솔로몬은 정치, 경제, 문화적 전성기를 주도하였으며 활발한 외교와 무역 사업으로 이스라엘의 지위를 한층 드높였다. 이같은 배경 하에서 그는 거대한 성전과 왕궁 건축, 그리고 기타 건축 사업들을 훌륭히 수행해 냈다.

 

어린 나이에 불안하게 왕위에 오른 솔로몬이 어떻게 이같은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을까? 그 원인을 우리는 오늘 읽은 왕상3장에 발견할 수 있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서,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일천번제를 드리며 헌신을 다짐하였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기뻐게 여기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할 때에 나는 작은아이라고 자신을 낮추면서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과 함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까지 덤으로 주셨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며 백성들을 위해 헌신할 마음자세를 가진 왕에게 어찌 하나님께서 큰 복을 내려 주시지 않겠는가?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약속대로 솔로몬은 자기 이전에나 이후에 그와 같은 지혜나 축복을 받은 사람이 없었다. 모든 나라가 솔로몬의 번영을 부러워하였고 모든 군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려 하였다.

 

이어 솔로몬은 이스라엘 민족의 숙원 사업인 성전건축에 힘을 쏟는다. 성전건축은 솔로몬이 왕이 된 후 벌인 첫 번째 대규모 국책사업이었다. 솔로몬왕은 자기의 명성에 어울리는 멋진 궁을 짓기에 앞서 7년간 성전 건축에 역점을 둠으로써,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모범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다. 더욱이 솔로몬은 성전을 완공한 후 법궤를 안치하고 낙성식을 하면서 화목제로 소 22천과 양 12만 마리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다. 이는 엄청난 제사로 다른 사람들이 따를 수 없는 헌물이었다. 일전에 현대 정주영회장이 소 5백마리를 끌고 북한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5백마리의 행렬도 얼마나 거창했던가? 한줄에 4마리씩 짝지어 사이를 떼지 않고 행진한다고 해도, 그 길이가 자그마치 15km가 넘는다. 40리다! 이는 단순한 제물이기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요 방법이었다. 제물을 통해 자기 과시나 환심을 생각했다면 제사의 제물 대신 잔치를 벌였을 것이다. 여기서 솔로몬이 지니고 있던 영적인 질서를 찾아볼 수 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는 말과 같이, 이러한 행적들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솔로몬의 열심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솔로몬이 마음껏 하나님을 사랑한 것처럼 하나님도 솔로몬을 마음껏 사랑하시고 축복하셨다. 이때가 그의 나이 31세였다.

 

이처럼 솔로몬왕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처럼 완벽한 왕이 어디 또 있었을까? 하지만 이토록 뛰어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솔로몬을 훌륭한 임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가증한 우상으로 향하게 만들고,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는 원인을 제공한 왕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솔로몬왕은 어떻게 하다 이런 실패자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그토록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아 누리며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능력과 자질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나라를 송두리째 망친 왕으로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일까? 거기에는 명백한 성경적 이유가 있다. 솔로몬왕의 몰락은 그가 절대 탐내지 말아야 할 세 가지를 탐내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는 특별히 왕이 된 사람은 절대로 탐내지 말라고, 출애굽할 때 이미 하나님께서 경고하셨던 말씀이었다.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17:16-17)

 

1) 첫째, 솔로몬왕은 수많은 말들을 탐냈다. 얼마나 많은 말을 모았던지 솔로몬 병거의 말 외양간만 4만 개였고 마병만 12천 명이었다. 게다가 왕궁의 요리사들이 솔로몬의 식탁뿐 아니라 말과 준마들에게 먹일 보리와 꼴도 직무를 따라 외양간으로 공급했다고 한다. 자그마치 4만 개나 되는 외양간의 말들에게 매일 공급되는 곡식의 양은 얼마나 엄청났을까? 아무리 솔로몬 시대가 풍족했다고 해도 분명 곳곳에 어렵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굶주린 자들의 신음을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말 모으는 취미를 기뻐하지 않으셨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2) 둘째, 솔로몬은 1천여 명의 부인을 두고 살았다. 후비가 700, 빈장이 300명이나 있었다. 아무리 머리좋은 솔로몬 왕이었다 할지라도 자기 부인들의 얼굴과 이름을 제대로 외우기나 했겠는가? 그 자녀들은 또 어떠했겠는가? 그리고 바로의 딸을 위해 별도의 궁을 지었다고 하니, 한번 상상해 보라. 부인마다 별도의 궁은 아니라 할지라도 낭실을 주었을텐데, 요즘으로 치면, 일천 세대가 넘는 왕비 전용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중 상당수가 정략결혼에 의해 이방 땅에서 데리고 온 여인들이었기 때문에, 그들 각자가 가지고 온 이방 우상들이 온 이스라엘로 퍼져 나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성이 자리잡고 있는 영광스런 시온산은 이들이 섬기는 우상들의 산당으로 넘쳐났다. 결국 이들이 나이든 솔로몬왕의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3) 셋째, 솔로몬은 은과 금을 탐하며 살았다. 얼마나 보석들을 많이 모았는지 그 사치가 극에 달했다. 왕궁의 모든 그릇은 다 정금이었다.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다. 심지어 황금으로 방패 500개를 만들어 레바논에서 수입한 백향목으로 지은 궁에 보관하기도 하였다. 이런 솔로몬의 모습은 과거 기브온에서 백성들을 위해 간구하던 그 겸허한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다.

 

솔로몬왕이 이같이 모아들인 보화들이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솔로몬에 뒤이어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른지 5년 되었을 때, 애굽왕 시삭이 침략하여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몰수히 빼앗고 또 솔로몬이 만든 황금방패를 다 빼앗아 가버렸다. 솔로몬왕이 쌓아두었던 그 모든 보화들은 솔로몬이 죽은지 불과 5년만에 다 빼앗겨버렸다. 솔로몬왕은 신명기의 말씀을 분명히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다. 결국 그는 가장 지혜로운 왕에서 가장 어리석은 왕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4) 하지만 그에게는 이 세가지보다 더 큰 어리석음이 있었다. 바로 자녀교육의 실패였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불행은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때 발생한 남북 왕조의 분열인데, 이는 철저히 솔로몬이 자녀교육에 실패한 데 그 원인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자녀교육에 실패하여 다음 대에 어리석은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은데 솔로몬이 그 대표자이다. 사실 언뜻 보면 솔로몬은 자기 자식에게 그럴듯한 가르침을 많이 남긴 사람이었다. 솔로몬의 잠언은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는 누구보다 자기 자식에게 지혜의 가르침을 전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감화를 주는 솔로몬의 이런 지혜로운 교훈들이 당시 그의 아들 르호보암에게는 전혀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르호보암은 이렇게 좋은 말씀을 들으며 교육받았지만 결국 이스라엘에서 가장 어리석고 난폭한 왕이 되어 나라를 반동강이 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그 탁월했던 솔로몬의 가르침은 왜 아들 르호보암을 좋은 사람으로 키워 내지 못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솔로몬이 입으로는 지혜를 가르쳤지만, 직접 자기의 삶으로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끝없이 이방 여인과의 음란을 경고했지만 자기 자신은 이미 천 명 가까운 이방 여인을 첩으로 두고 있었다. 검소하게 사는 것이 아름답다고 가르치기에는 솔로몬이 입은 옷과 손에 든 황금잔이 너무 화려했다. 그러니 왕금침대에서 황금잔을 들고 이방 여인을 껴안고 누운 아버지가 아들아, 나는 이 모양이지만 너는 음란과 부귀를 멀리하라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아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겠는가?

 

사실 감동적인 삶을 사는 분들의 가르침은 말을 더듬으며 전해도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러나 이중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제아무리 달변으로 가르친다 해도, 가르침을 받는 자에게 더욱 가증함을 느끼게 하고 결국 삐딱한 길에 서는 결과를 낳는다. 르호보암도 그랬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이중적인 삶을 곁에서 빤히 지켜보며 자라왔다. 그러기에 아버지의 훈계에 오히려 큰 반발심을 느끼며 삐딱한 성격으로 성장해 갔을 것이다.

 

솔로몬이 죽고 왕이 된 르호보암이 늙은 신하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젊은 친구들과 의논한 뒤에 내뱉는 교만한 말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삐딱하고 뒤틀어진 마음으로 성장해 왔는지를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 또 그의 사생활도 아비와 같아서,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신명기의 말씀을 거역하고 아내 십팔과 첩 육십을 취하여 아들 이십팔과 딸 육십을 낳고 살았다. 결국 통일이스라엘은 르호보암왕 때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고, 이때부터 수많은 이방민족의 침략을 받으면서 고난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솔로몬은 출발도 잘했고 통치나 나라의 운영도 성공한 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왕에게 금한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결정적인 실수는 이방 여인들을 통해 하나님 신앙이 그에게서 떠나기 시작한 데 있었다. 요셉이나 다니엘과 같이 끝까지 성공한 사람으로 솔로몬이 남아주지 못한 점이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솔로몬의 실패는 그 자신도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이는 그의 신앙과 그의 지혜를 보아 알 수 있다. 그러나 죄와 타락성은 그의 지혜까지도 빼앗아갔다. 또한 세상의 향락은 그의 신앙까지 침몰시켰다. 결국 솔로몬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존귀와 영광을 다 잃어버리고 60세에 죽고 말았다.

 

우리도 솔로몬왕과 같은 멸망의 습성이 내게 배어 있지 않은지 살피고 점검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하나님의 경고와 훈계를 경홀히 여기며 살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듣는 것은 많아서 남에게 함부로 가르침을 베풀며 살려고 하지 않는가? 그런 내 가르침들이 과연 주변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가? 오히려 내가 입을 열 때마다 내 자녀가, 내 배우자가, 내 친구가, 더 나아가 듣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속으로 나와 내가 섬기는 하나님을 비웃고 있지는 않는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나라의 번영이나 개인의 성공이나 축복은 반드시 허락한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이룩한 것이 아니라, 내려주시고 맡기신 분이 계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언제나 청지기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물질이든 지위이든 지혜이든 건강이든, 주신 분의 뜻을 따라 선용할 때에 모든 축복은 그 가치를 드러낸다.

 

사람들은 자기의 능력으로 성공한 줄 알기 때문에 교만하여 실패한다. 항상 주신 분을 기억하는 선한 청지기들이 되어, 자신을 살리고 가족은 물론 수많은 이웃들을 살릴 수 있는 진정으로 넉넉한 삶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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