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읽은 본문은 다윗왕이 그 아들 솔로몬 왕에게 유언을 남기고 죽는 장면과, 솔로몬 왕이 즉위 초기에 취한 여러 조치들이 소개되고 있다. 다윗왕의 유언은 먼저 하나님께 대하여 행할 일(1-4절)과 이어 사람에 대하여 행할 일(5-9절)로 크게 두 가지로 구별된다.
하나님께 대하여 행할 일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준행하라’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사람에 대하여 행할 일이란, 자신의 생애를 통해 아직 미결로 남겨둔 일들로, 하나님의 신정 왕국 건설에 거스려 행했던 역신들을 처단하고 다윗을 도와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던 공신을 예우하라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요압장군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면, 요압은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린 자로서 편히 죽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는 것이다. 즉 요압은 솔로몬이 처단해야 할, 살생부에 올라있는 첫 번째 인물이었다. 요압이 누구인가? 그가 어떤 인물이기에 다윗은 그의 유언에서 아들 솔로몬왕에게 제일 먼저 처단해야 할 인물로 요압을 거명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다윗과 관련된 성경을 조금이라도 읽어보고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윗의 이러한 유언에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이 왕이 되기까지, 또 주변의 이방민족들을 무찌르고 든든한 왕국을 건설하기까지, 다윗의 최측근에서 다윗왕에게 충성을 다하고 가장 용맹스럽게 싸웠던 용사가 바로 요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기면서, 처단해야 할 첫 번째 인물로 요압을 거명하게 된 것일까?
요압과 아마사
● 요압은 놀랍게도 솔로몬왕 당시 군대의 총수였다. 이스라엘의 대장군이었다. 그는 다윗의 가까운 친척이다. 요압은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로, 다윗의 조카였다. 솔로몬왕에게는 고종사촌 형이다. 그는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전 사울왕에게 쫓겨 도피할 시기부터 다윗을 도왔던, 다윗 일생에 가장 큰 조력자였고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업적을 세운 공로자였다.
요압이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아버지시다’인데, 그 이름에 걸맞게 믿음으로 무장한 용맹한 장수로, 그 형제 아비새, 아사헬과 함께 이스라엘 개국 1등 공신이다.
다윗이 아들 솔로몬왕에게 지혜롭게 행하라(6)고 한 까닭도, 요압의 이러한 지위와 공적을 이스라엘 군대와 백성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요압을 처단하려면 반드시 군대의 동요를 방지할 수 있어야 했으며, 백성들에게도 의혹없이 분명한 명분이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 먼저 요압장군의 대표적인 행적을 살펴보자.
1) 요압의 주활동 연대는 B.C.1010-970년경으로서, 다윗의 도피 시기로부터 솔로몬왕이 즉위할 때까지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하던 군대 장관으로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많은 전쟁을 치루었던 시기의 위대한 장군이었다. 그는 여부스, 에돔, 암몬, 아람 등의 주변 이방 족속을 평정했고, 세바의 난을 진압하는 등 이스라엘 군대의 상징적인 인물로, 용감하고 책략이 뛰어난 타고난 장수였다. 그래서 요압은 다윗의 신임을 받아 다윗왕과 함께 평생을 지낼 만큼 측근에서 그림자처럼 충성했다.
2) 다윗왕에게 충성을 다하였던 요압은, 다윗왕이 충신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이를 감추기 위해 전장에서 죽게 하라는 왕의 그릇된 명령에까지도 맹종했다.
3) 다윗왕이 총애하던 아들 압살롬이 자신의 누이를 범한 형 암논을 살해하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을 때, 압살롬의 귀환을 위해 중재에 나서 압살롬의 사면을 얻어내었다. 이후에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끝까지 다윗왕을 떠나지 아니하고 도왔다.
4) 다윗왕이 말년에 인구조사를 실시하려고 하자, 이것이 하나님께서 시험하시려는 것인 줄 즉시 알아차리고 반대한다. 요압은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배나 더하기를 원하나이다... 어찌하여 이스라엘로 죄가 있게 하시나이까”라고 하였다. 이 말은 요압이 다윗 왕에게 목숨을 내놓고 권고한 참으로 위대한 사역이었다. 이 일로 인해 7만명의 백성이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 이처럼 다윗왕에게 충성을 다했던 요압 장군이건만, 어찌하여 다윗왕의 마음에서 진정으로 인정받지를 못하고 경계의 대상이 되고, 마침내는 처단되어야만 하지 첫 번째 인물이 되고 말았을까?
요압의 다음과 같은 행적이 그 이유를 잘 말해주고 있다.
1) 사울 왕의 충신이었던 아브넬이란 장수가 있었다. 그는 사울왕이 전사하자 사울왕의 아들 이스보셋을 마하나임에서 왕으로 세운 사람이다. 그러나 아브넬은 이스보셋의 국운이 다윗에게 기울어지고 이스보셋과의 불화가 생기자 다윗 왕에게로 돌아왔다. 그때 요압은 죽은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귀순한 아브넬을 간첩으로 조작하여 살해한다. 요압이 아브넬을 정적으로 여기고 또한 위협적인 인물로 생각했기 때문에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요압은 자신의 주군인 다윗왕이 용서한 아브넬을 자신의 정치적 판단과 감정적 판단에 따라 마음대로 살해한 것이다. 신하가 왕에게 바치는 충성은 자기 중심의 충성이 아니라 왕이 바라는 충성에 최선을 다하는 순종이어야 한다. 요압이 생각하는 충성의 표현과 다윗이 바라는 충성의 기대가 분명히 달랐음을 알 수 있다.
2) 앞서 밝혔듯이 다윗왕이 총애하던 아들 압살롬이 자신의 누이를 범한 형 암논을 살해하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을 때, 요압은 압살롬의 귀환을 위해 중재에 나서 압살롬의 사면을 얻어내었다. 그런데 이후에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도망하던 압살롬이 상수리 나무에 머리가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요압이 창으로 그를 찔러 죽였다. 다윗왕이 압살롬의 목숨만은 살려두라고 모든 장수들에게 간곡히 부탁했기 때문에, 다른 장수들은 왕자의 몸에 손을 대지 않았으나, 요압은 무자비하게 압살롬 심장을 찔렀고, 그 종자 열명으로 하여금 죽어가는 압살롬을 에워싸 처참하게 쳐 죽이게 하였다.
3) 이 일로 요압은 군대장관에서 물러나게 되고, 압살롬을 따르던 아마사가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이 된다. 이 후에 세바의 반란이 일어났는데, 다윗은 아마사와 요압의 동생 아비새를 지휘관으로 세워 출전시켰다. 이때 요압은 사촌형인 아마사를 살해하고 군대장관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3)죽은 자신의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귀순한 아브넬을 간첩으로 조작하여 살해한 것으로 볼 때 잔인하고 비열한 자
4) 다윗왕이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해 자리보전을 하고 있을 때, 압살롬 다음으로 뛰어난 인물이었던 왕자 아도니야가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흑심을 품게 된다. 부친 다윗왕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을 정도로 총애를 받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 아도니야가 다윗왕의 재가도 없이 왕위에 즉위한 것이다.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평생 다윗 왕을 위해 충성을 아끼지 않았던 요압이 어리석게도 아도니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그를 왕으로 지지하게 되었다. 이제 다윗왕은 기력이 다해 아무런 영향력도 끼칠 수 없고, 당연히 총애받고 가장 뛰어난 인물인 아도니야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요압은 왕이 아직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력한 왕자의 편에 섬으로써, 다윗왕을 향한 평생의 충성심을 일순간에 다 날려버렸던 것이다.
오늘 읽은 왕상2장의 본문은 바로 이 일이 일어난 다음에 벌어진 내용이다. 요압의 기대와는 달리 상황이 역전되어 다윗왕은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았다. 그리고 이것으로 요압의 권력을 향한 모든 열심과 야망은 끝나버렸다.
● 요압은 다윗에게 있어서 누가 뭐라고 해도 일등공신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그는 좋은 머리를 가졌고 통솔력도 좋았으며 종교적인 영감도 가진 사람이었다. 특히 요압이 다윗왕에게 인구조사에 대한 잘못을 권고한 것은 참으로 존경스럽다. 그는 그 순간, 충심으로 왕에게 직언을 하였던 것이다. 사람은 친분이 두텁고 신임도가 높을수록,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라야 한다. 나를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그의 영혼을 위해 그를 사랑하는, 하나님 중심의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꼭 해줘야 할 말이나 권고를 하는 것도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한 가지 그에게 고쳐야 할 점이 있었다면 자아가 너무 강한 것이 흠이었다. 그러므로 때로는 요압이 다윗의 생각을 앞지르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하나님의 영감이나 말씀을 앞세우고 뒤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점에서 요압은 자기 생각대로 다윗을 섬기려는 자기 주장을 앞세우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결국엔 ‘자기 중심의 순종과 충성심’으로 평생의 공로도 퇴색시킨 안타까운 인물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헌신이나 봉사도 이와 같다. 내 생각대로, 내 판단대로 하나님을 섬겨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요구하고 소망하는 그 뜻에 자신을 잘 적응시켜야 한다. 열심히 일을 많이 한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어떤 목사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목사의 생각으로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주의 일을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줄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네가 좋아 네 일을 한 것이지 네가 내 일을 한 것이냐?” 고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 순간 그가 깨달은 것은,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더 원하신다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수많은 사업과 행적보다 더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무쪼록 성도 여러분 모두, 하나님 말씀에 진정한 마음으로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복되고 아름다운 믿음생활을 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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