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노란 손수건

성북동 비둘기 2023. 11. 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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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향하는 버스들이 서는 그 버스 정류장은 늘 붐볐다.

젊은 남녀 세 쌍이 버스에 올랐다.

해변으로 가는 버스였다.

승객이 다 오르자 버스는 출발했다.

세 쌍의 남녀는 여행이 주는 흥분 때문에 계속 웃고 떠들어댔다.

그들 앞자리에는 허술한 옷차림의 한 사내가

돌부처처럼 묵묵히 앞쪽만 응시하고 않아 있었다.

젊은이들이 무안할 정도로 무거운 침묵을 지키며...

밤이 깊어 버스는 워싱턴 교외의 한 음식점 앞에 멈췄다.

승객들은 버스에서 내려 허기진 배를 채웠다.

단 한 사람 그 돌부처 같은 사내만

자기 자리에 그대로 눌러앉아 있었다.

젊은이들은 그 사내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식사 마친 승객들을 태우고 버스가 다시 떠날 때,

젊은이들 중 한 아가씨가 용기를 내 그 사내 옆자리로 가 말을 걸었다.

그는 아가씨가 따라준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곤 다시 침묵에 잠겼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버스가 다시 음식점 앞에 섰다.

이번에는 그 돌부처 사내도 승객들을 따라 내렸다.

그 사내는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마음이 안정이 안 되는지

중간중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식사를 끝내고 모두들 다시 버스에 오르자,

어제의 그 아가씨가 다시 그의 옆자리에 가 앉았다.

그리고 얼마 후 사내는 그 아가씨의 호기심에 두 손 들었다는듯

괴로운 표정으로 천천히 자기 얘기를 꺼냈다.

사내의 이름은 빙고였다.

4년간 형무소에 있다 가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녀는 결혼을 하셨냐고 물었지만 사내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잘 모르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사내는 말했다.

 

"아내에게 편지를 썼었어요.

나를 잊어달라고.

나를 떠난다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그 뒤로 아내는 편지를 하지 않았어요.

3년 6개월 동안이나..."

"그런데 지금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이란 말이에요?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시면서..."

"그래요. 사실 지난 주 가석방 결정이 났을 때

아내에게 다시 편지를 썼어요.

마을 어귀에 커다란 참나무가 있는데.

만일 아직도 나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나를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하나 매 달라고요.

노란 손수건이 매어져 있다면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갈 것이고,

노란 손수건이 보이지 않는다면 버스를 타고 그냥 마을을 지나치겠다고요.“

 

마침내 사내가 말한 마을이 가까워졌다.

사내의 이 이야기는 다른 승객들에게도 전해졌고,

마을이 가까워질수록 버스 안은 깊은 긴장감 속에 빠져들었다.

빙고는 굳은 얼굴로 자기 자리에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물을 끼얹은 듯한 버스 안의 정적은 계속되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젊은이들 입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승객들은 너나 할것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며 창가로 몰려들었다.

빙고는 넋 잃은 사람처럼 차창 밖 한 그루 고목나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나무는... 그 오래된 참나무는

온통 노란 손수건 물결로 뒤덮여 있었다.

수백 장의 노란 손수건이 바람 속에 깃발처럼 마구 물결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 아래,

하루도 그를 잊어본 적이 없는,

사내가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는,

그의 아내가 서 있었다.

 

/ 모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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