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다른 하나는 사실상 윤 대통령 책임론이다. 윤 대통령의 소통부재와 정책 방향의 오류, 일방적 리더십 스타일 등이 민심의 이반을 키웠다는 것이다. 따라서 총선 이후 정부여당은 환골탈태에 준하는 대변화를 시도해야 정치적 재기를 도모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권 내 차기 잠룡들 침묵 VS. 홍준표와 오세훈이 제 목소리 내
여권 내 차기 잠룡에 해당되는 인사들은 대부분 침묵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가장 격렬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근 입을 열었다. 공교롭게도 홍 시장과 오 시장은 상반된 관점을 드러냈다. 홍 시장이 ‘한동훈 책임론’으로 사태를 정리하고 윤석열 정부가 신발끈을 조여매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대한 격렬한 비난이 거듭될수록 이 같은 의도도 강화되고 있다.
반면에 오 시장은 한 전 비대위원장의 총선 전략을 비판하면서도 ‘자기희생’적 측면을 높게 평가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윤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이 참모들의 고언을 막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총선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는 시각을 숨기지 않았다.
홍준표의 정국 인식= 셀카놀음으로 선거 말아먹은 폐세자 한동훈이 책임져라
홍 시장은 총선을 일주일 이상 남긴 시점부터 집중적으로 한 전 위원장을 공격해왔다. 홍 시장은 지난 1일 SNS에서 “2년도 안 된 대통령을 제쳐두고 총선이 아니라 대선놀이 하면서 셀카찍는 전략으로 총선을 돌파할 수 있었다고 믿었나”라며 “제발 남은 기간만이라도 남 탓하지 말고 지역구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읍소해라”라고 주장했다. 한 위원장이 ‘이·조(이재명·조국)심판론’을 득표 전략으로 내세운 것을 비판한 것이다.
“셀카 쇼만이 정치의 전부가 아니다”면서 “정치는 진심(眞心)과 진심(盡心)으로 하는 것”이라고 한 위원장의 셀카 유세를 비난하면서 “(최선을) 다하고도 지면 깨끗이 승복하고 남 탓 말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자”고 언급, 총선 패배시 한 위원장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미리 쐐기를 박았다.
총선 다음날인 11일에는 대구시청 기자실을 찾아 "정권의 운명을 가름하는 선거인데 초짜 당 대표에 선거를 총괄하는 사람이 또 보선으로 들어온 장동혁이었고 거기에 공관위원장이란 사람은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었다"면서 "총선 기간 여당 선거 운동 중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 있었느냐. (한 전 위원장이) 동원된 당원들 앞에서 셀카 찍던 것뿐이었다"고 맹비난했다.
12일에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천신만고 끝에 탄핵의 강을 건너 살아난 이 당(국민의힘)을 깜도 안되는 황교안이 들어와 대표놀이 하다가 말아먹었고, 더 깜도 안되는 한동훈이 들어와 대권놀이 하면서 정치 아이돌로 착각하고 셀카만 찍다가 말아먹었다"면서 “문재인 믿고 그 사냥개가 되어 우리를 그렇게 모질게 짓밟던 애 데리고 와서 배알도 없이 그 밑에서 박수 치는 게 그렇게도 좋더냐?”고 공격했다.
“총 한번 쏴본 일 없는 병사를 전쟁터에 사령관으로 임명한 것”(13일 페이스북), “조용히 본인에게 다가올 특검에나 대처할 준비나 해라”(15일 페이스북 삭제 상태) 등 발언도 이어졌다.
18일 페이스북에서는 “한동훈 전 위원장은 윤석열 정권 황태자 행세로 윤 대통령 극렬 지지세력 중 일부가 지지한 윤 대통령의 그림자였지 독립 변수가 아니었다”면서 “황태자가 그것도 모르고 자기 주군에게 대들다가 폐세자가 되었을 뿐이고 당 내외 독자 세력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나아가 “황교안이 총선 말아먹고 퇴출 되었을때 그는 당을 1년 이상 지배했어도 뿌리가 없어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데 집권당 총선을 사상 유례없이 말아먹은 그를 당이 다시 받아들일 공간이 있을까?”라고 꼬집었다. 여권 지지층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 전 위원장 복귀요구를 단호하게 반박한 것이다.
홍준표의 해법= 윤 대통령에게 힘실어주기, 민주당 정치공세에 강력 대응, 장제원 비서실장

홍 시장은 윤 대통령이 향후 거세질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 그리고 조국혁신당과 조국 대표의 정치공세에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는 점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정치적 위기에 처한 윤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앞으로 가시화될 여권내 차기경쟁에서 윤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내려는 게 홍 시장의 정치적 계산법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게다가 윤 대통령이 지난 16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홍 시장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향후 국정 기조 및 인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는 사실이 지난 18일 여권 관계자들에 의해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4·10 총선 패배 이후 국정 운영 방식, 대통령실과 내각의 인적 쇄신의 방향과 폭을 두고 고민중이다. 여권 중진 중 유일하게 홍 시장을 만나 대화를 나눈 셈이다. 대화 시간도 무려 4시간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자리에서 홍 시장은 비서실과 내각의 조속한 개편을 제언하면서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무 감각이 있고 충직한 인물, 총리는 야욕이 없고 야당과 소통이 되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을 후임 총리로,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 역할인 비서실장에는 친윤계 핵심 중진인 장제원 의원을 각각 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홍 시장의 정국타개 구상은 윤 대통령 입장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카드라고 볼 수 있다.
오세훈의 정국 인식 1= 참모의 조언을 막는 윤 대통령의 리더십, 불필요한 이념논쟁 등 반성해야
반면에 오세훈 시장의 정치적 판단은 홍 시장과 결이 다르다.
오 시장은 4·10 총선 다음날인 1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민의 질책은 준엄했다.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견인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초토화된 광야에 한그루 한그루 묘목을 심는 심정으로, 잃어버린 신뢰와 사랑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전심전력 하겠다”고 밝혔다. 일종의 공동 책임론을 제기했다. 한 위원장의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홍 시장과 만찬 회동을 가진 16일, 오 시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 책임에 대해 언급했다.
오 시장은 “총선 민심 어떻게 보나”라는 질문에 대해 “매서운 질책이었다. 전문가들도 지지층 축소를 자초한 (여러) 측면을 지적하더라. 이념 다툼은 야당의 몫인데, 미래지향적인 정책 펼쳐야 하는 정부여당과 대통령이 예를 들어 홍범도 장군 논란 같은 문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이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저도 무슨 실익이 있나 했다. (대통령도) 대통령 리더십이 그렇게 비치길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일로 승부하고 싶어하는 스타일인데 그렇게 비치면서 지지 기반을 무너뜨렸고 선거 결과로 민심이 나타난 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이념논쟁을 자초함으로써 지지층을 축소시켰다고 지적한 것이다.
오 시장은 “윤 대통령의 경우 이념 외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는 물음에 대해서도 “사실 (정책 주도와 관리에서) 디테일에 좀 약한 것 같다. 예를 들어 대통령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동시에) R&D 예산이 굉장히 누수가 심하고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기 시작해 한 번 정도는 경고해야겠다는 인식도 한다. 엄중히 조사해 이런 일이 만연하지 않도록 메스를 대겠다고 하고 R&D 예산을 삭감했다면 국민도 박수쳤을 것이다”면서 “그 충정은 다 어디로 가고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몰라서 삭감한 대통령이 돼 있는 거다. (대통령의) 본심이 전달 안 되면서 불통 이미지까지 만들어진 거다”라고 지적했다. 과학기술 R&D예산 삭감에서 대국민 소통과정이 부족했다고 비판한 셈이다.
나아가 “그분의 리더십 스타일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어떤 참모라도 하고 싶은 말을 부담없이 할 수 있는 분위기는 꼭 필요하다. 많이 알려진 게 앞에 가면 얼어붙는다고 하지 않나”면서 “누구라도 말을 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건 상급자의 책임이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이 참모들이 할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꼬집은 것이다. 오 시장은 “R&D 예산 논란도 그 결과로 볼 수 있다. 누구라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었다면 토론을 통해 어느 정도 걸러질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오세훈의 정국 인식 2= 한동훈의 ‘이조심판론’은 ‘정권심판론’ 프레임에 갇혀

오 시장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총선 성과에 대해 여권 내에서 논쟁이 있다”는 기자의 지적에 대해 “애썼고 고군분투했다. 대안 없는 상태에서 차출됐고 본인도 이 국면에서 등장을 원치 않았을 텐데 등판했다. 자기희생이다”면서도 “선거전략 측면에선 상대방의 프레임에 말려 들어간 측면이 있다. 정권심판론은 당연히 등장하는 과거지향적 프레임인데 586 심판론으로 맞불을 놓음으로써 스스로 그 프레임으로 들어갔다”고 비판했다. “전략의 부재다. 집권세력은 미래를 얘기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이조심판론’을 총선 어젠다로 내세운 것은 민주당의 ‘정권심판론’의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하책이라고 지적한 셈이다.
이는 야권의 시각과 닮아 있다. 한겨레신문은 20일 <‘윤석열은 생각하지 마’…한동훈 총선 메시지가 ‘폭망’한 이유> 기사에서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프레임 개념을 설명했다. 한쪽이 프레임을 잘 만들어버리면, 다른 쪽은 반박하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정작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었다”면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야당의 ‘정권 심판’에 맞서기 위해 ‘범죄자 심판’으로 프레임을 전환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프레임 전환 전략은 ‘정권 심판’에 견줘 파괴력이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오세훈의 해법= 여권 전체의 환골탈태를 기반으로 한 근본적 혁신 필요
오 시장이 총선 패배와 관련해 이처럼 윤 대통령과 한 전 비대위원장을 포함한 여권 전체 책임론을 제기한 것은 근본적 혁신을 요구하는 태도로 해석된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을 내각의 총리로,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 원장을 대통령실 비서실장으로 각각 기용하자는 대통령실의 기류는 오 시장의 정치적 판단과 맥을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한동훈 책임론’으로 패배의 후유증을 털어내고 윤 대통령 중심으로 정국 주도권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홍 시장의 구상과, 윤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 없는 ‘포괄적 책임론’을 기반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오 시장의 주장은 물밑에서 팽팽하게 맞선 여권 내 양대 기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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