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성경인물설교(66) 오네시모(몬1:1-25) / 박영철 목사

성북동 비둘기 2023. 6. 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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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와 함께 바울의 옥중서신으로 잘 알려진 개인적인 서신이다. 바울은 이 편지를 골로새에 살고 있던 빌레몬이라는 믿음의 형제에게 보내는데, 빌레몬은 사도 바울의 영향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으로, 그의 온 가정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 읽은 본문(1:2)에 보면, 빌레몬은 자신의 집을 교회로 제공하고 있으며, ‘애정 있는 사람이라는 그 이름의 뜻처럼, 성도들에게 사랑을 가지고 후대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를 사랑받는 자요 동역자라고 일컬을 정도로, 빌레몬은 골로새 지역 교회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빌레몬서를 보면, 주된 내용이 빌레몬으로부터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빌레몬서 본문을 중심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오네시모는 그 주인 빌레몬에게서 불법적으로 도주했으며, 도주할 당시 주인에게 어떤 경제적인 손실을 입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 사도바울을 만나게 되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갇혀 있는 사도 바울에게 중요한 조력자가 되었다.

 

그리고 오네시모의 전후 사정을 알게 된 바울은, 편지를 써서 오네시모에게 직접 그 편지를 들려, 그 주인 빌레몬에게 되돌려 보낸다. 그러면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도망친 이 노예를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영접해 달라고 청하고, 오네시모를 자기의 선교 사역에 조력자로 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청한다.

 

이처럼, 오늘 우리가 알아보려고 하는 인물 오네시모, 빌레몬이란 사람의 노예였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은 유익한, 쓸모 있는, 도움이 되는이란 뜻으로, 당시 노예들에게 흔히 붙여질 법한 그런 이름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유익한인물이 아니요 무익한인물로 낙인찍힌 도망자에 불과했다.

 

그가 어디 출신인지, 어떤 성품의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성경에 직접적인 언급이 전혀 없다. 성경 내용을 통해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10)에 보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바울이 오네시모를 일컫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직 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8,19)의 내용을 보면,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 내가 대신 갚아 주겠다고 바울이 말한 것으로 보아, 오네시모가 주인의 재산과 관련된 어떤 일로 인해 손해를 끼쳤거나, 아니면 주인의 재물을 훔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로 볼 때, 오네시모는 젊은 나이의 노예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에게 신임을 얻어 주인의 재산을 어느 정도 관리하는 사람이었거나, 아니면 잠시 욕심에 눈이 어두워 주인의 재물을 훔치고, 주인의 처벌이 두려워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젊은 노예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손해 본 모든 것을 갚아 주겠다는 바울의 이 말은, 오네시모의 도주로 인해 빌레몬이 입은 경제적 손실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서 도망친 이유가 분명치 않다. 당시 도망친 노예에 대한 처벌 규정이 매우 엄했기 때문에, 확실한 이유나 계획도 없이 도주를 시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의 로마와 주변 세계의 노예들의 생활 여건은 비참할 정도로 가혹했으며, 그들은 살아 있는 도구, 즉 영혼 없는 두 발 가진 짐승에 불과했다. 주인들은 자신들의 노예를 마음대로 처형할 수 있었으며, 이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네시모와 같이 도망친 노예는 그때의 관습으로는 당연히 사형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심한 고문을 당하거나 사지가 절단되는 형을 받았다. 다행히 운이 좋으면 이마에 라틴어 ‘Fugitivus(도망자)'의 머리글자인 'F'자의 낙인이 찍히는 것으로 형이 그치기도 했다.

 

한편 도망친 노예를 변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는 조항이 로마법에 있었다. 이 조항에 따르면, 노예가 도망쳤을지라도 다시 주인에게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는데, 주인에게 돌아가기에 앞서 주인의 친구나 동료에게 가서 자신의 안전에 대한 그들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쉽게 말해, 주인의 친구나 동료가 신원보증을 해 주면, 살아날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즉 바울은 지금 절박한 처지에 있는 오네시모를 주인에게 변호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하여튼, 이상과 같이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살펴볼 때, 오네시모가 주인 빌레몬에게서 불법적으로 도주했다는 것은, 그가 아직 미숙하고 겁이 많으며, 다소 충동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빌레몬서 외에도 골로새서에 보면 오네시모에 대한 언급이 짧게 나온다.(4:9읽기) 골로새서를 마무리하면서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자기의 사정을 알게 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형제 두기고를 보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바울은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라.”고 말하면서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고 쓰고 있다.

 

골로새 교인들에게 오네시모를 바울이 이렇게 소개하고 있는 까닭은, 아마도 그가 회심한 이후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미 빌레몬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빌레몬과 골로새 교인들에게 과거에 도주했었던 노예 신분의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이도록 요청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바울에게 있어, 오네시모는 더 이상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고 도망친 노예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울에게 있어 오네시모는 신실하고 사랑받는 형제였다. 그리고 빌레몬서에도 나타나 있듯이, 오네시모는 바울이 1차 로마 투옥 중에 복음으로 낳은 믿음의 아들이었으며, ‘오네시모라는 이름 뜻처럼, 이제 바울의 복음 사역에 유익한인물로 변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네시모가 어떻게 바울에게로 가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학자들이 추측한 바로는, 빌레몬과 함께 골로새 교회를 세운 에바브라라는 인물이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로마에서 옥중 생활을 하고 있던 바울에게로 오게 되었는데, 그가 로마에서 우연히 오네시모를 만나 알아보고, 혹 바울에게 데려가면 그가 처한 곤궁에 대해 어떤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데리고 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앞서 밝힌 대로, 당시 주인에게서 도망친 노예는 잡히면 처형당할 수밖에 없는, 한마디로 비참한 도망자 신세였다. 따라서 오네시모가 쫓기는 도망자 신세에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로마법에 정한대로, 주인 빌레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어떤 인물이, 오네시모의 신원보증을 서 주면서, 다시금 주인에게 돌려보내는 길 밖에 없었다.

 

, 오네시모의 형편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골로새 출신의 에바브라가, 처량한 도망자 신세의 오네시모를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를 살리기 위해, 바울에게로 데려갔고, 바울을 통해 복음을 접한 오네시모는 변화되어, 신실한 바울의 조력자가 되었으며, 드디어, 때가 되었을 때, 바울은 오네시모를 회복시키기 위해, 그 주인인 빌레몬에게 되돌려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네시모도 회심 후 바울의 권유에 따라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주인에게 되돌아갈 결심을 하게 되어, 드디어 두기고와 함께 바울의 서신을 가지고 골로새 교회와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바울이 얼마나 지혜롭게 빌레몬에게 말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빌레몬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던 바울 덕택에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다. 빌레몬뿐만 아니라 그 온 집안이 그러했다. 따라서 빌레몬은 바울에게 복음의 빚을 진 사람으로서, 또 당시 바울의 영적 권위로 볼 때, 빌레몬은 바울의 어떤 권면이나 요구도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빌레몬에게 어떻게 하라 하고 지시하지 않는다.(1:8,9읽기)

 

바울은 사도로서 권위를 행사하기는커녕, 오히려 간청하고 있다. 바울이 이렇게 한 까닭은, 오네시모를 믿음 안에서 용서하고 회복시키는 일이나, 위대한 사도의 조력자로 자신에게 속한 사람을 기꺼이 파송하는, 이같이 아름답고 칭찬 받을만한 일이, 빌레몬의 자유로운 결단에서 행해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바울은 빌레몬이 자신을 돕기 원하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도움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는 것이기를원했다.

 

그러면서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 때문에 손실을 입었다면 바울 자신이 모두 갚아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곧 한번 자신이 직접 방문하겠다고 말한다. 물건처럼 취급되며 팔려 다녔던, 더군다나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고 도주한, 죽어 마땅한 한 사람의 노예를 위해, 사도 바울이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자기희생적 권면과 간청은 당시로서는 너무나 파격적인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행동이야말로, 진정으로 복음에 합당한 것이었다. 자유케 하는 복음의 진리를 직접 삶으로 실천하는 바울의 이러한 모습은, 분명히 빌레몬은 물론이거니와 골로새 교인들에게 큰 감화를 주었을 것이며, 설득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러면 빌레몬서에 나타난 바울의 이같은 권고가 받아들여졌을까요? 혹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형제로 또 바울의 대리인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엄하게 법에 따라 처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이 빌레몬서라는 서신은 없어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빌레몬서는 없어지지 않고 보전되었다. ‘야고보서를 신약정경에 넣을 것이냐 아니냐, 요한계시록을 포함시킬 것이냐 아니냐, 복음서는 어떤 것이 합당하겠느냐하고 수많은 종교회의에서 논의될 때, 신약성경 27권을 정하던 초창기부터 이 빌레몬서는 정경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한번 생각해보라.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이 짧은 편지는 노예 해방에 대해서 단 한 마디도 주장하지 않지만, 그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자유의 헌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흑인 노예를 비롯, 이 지구상에서 노예가 공식적으로 해방된 것은 불과 2백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고 도망친 노예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용서하고, 복음 사역자로 헌신하게 한, 이 같은 놀라운 이야기가 어떻게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기록되어 성경에 포함되게 되었을까?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이 같은 놀라운 인간 존중과 인간 해방의 기록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건들이 있은 지 약 50년 후, 에베소 교회의 감독으로 신실하게 사역했던 인물이 오네시모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우리도 알다시피,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가장 대표적인 교회이다. 그런데 도망친 노예 출신의 오네시모가, 바로 이 소아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교회에서 신실하게 사역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의 그림자를 짊어지고 평생 도망자 신세로 처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오네시모! 하지만 그는 그 비참의 밑바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위대한 복음 사역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오네시모를 통해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복음 앞에서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복음이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세상은 다 포기한다 할지라도, 결코 복음은 포기하지 않는다. 복음이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이 무엇인가? 그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아무리 신앙 문제 때문에 핍박하고 괴롭히는 가족이 있다 할지라도. 아무리 어리석은 망나니 자녀, 가족이 있다 할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오네시모는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 속에서 다시 주인에게 담대히 돌아갔다. 이렇듯 그는 그릇된 길에서 완전히 돌이키며, 또 이전의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책임질 줄 알았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청산해야 할 죄의 모습과 책임은 무엇인가? 진정한 회개는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값 비싼 나무 분재를 본적 있는가? 소나무나 그 밖의 나무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라게 하기 위해, 철사로 꽁꽁 묶어 둔 것을 보았다. 좀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나무가 제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 두면 작품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매일매일 자신의 뜻을 꺾고 죽여서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켜야만 한다. 굳은 의지를 갖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연습하고 훈련해야만 한다. 이것이 책임 있는 신앙인의 자세이다.

 

아무쪼록, 여러분 모두 이전에는 무익한 사람이었을지 모르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네시모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고 확신한 믿음의 사람답게,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존귀하게 다듬어 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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