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였던 실라는 실루아노라고도 불리워지는 인물이다. 바울의 특징 하운데 하나는 서신서를 쓸 때 공식적인 이름을 쓴다는 점이다. 반면 누가는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는 좀 더 친근감 있는 이름을 좋아하였다. 따라서 실루아노는 ‘생각’이라는 뜻의 로마식 라틴어 이름으로, 바울서신에 사용된 이름이고, 실라는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에 사용된 이름으로, 아마도 친한 사람 사이에 불렀던 애칭이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실라’가 ‘쉴라’라는 유대식 이름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 실라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70인의 제자를 파송하실 때, 그 일원이었다고 하나, 불확실하다. 실라가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사도행전 15장이다.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이 끝난 후 예루살렘에서는 처음으로 사도회의가 열렸다. 회의가 열린 까닭은, 안디옥교회를 중심으로 이방인 기독교인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에서 교리 문제로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질문을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일부 유대인 신자들 가운데는,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은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들 유대인 신자들과 바울과 바나바를 중심으로 하는 안디옥교회 형제들 사이에 적지 않은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고, 수리아의 안디옥교회에서는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에 파송하여 이 문제에 대해 교회의 입장을 정식으로 요청하게 된 것이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 당시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중심인물이었던 베드로와 야고보는, 이방인 형제들이 기독교 공동체의 지체가 될 때, 할례나 모세 율법의 준행은 필요하지 않으며, 다만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들 사이의 교제를 좀더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몇가지 유대인의 생활양식에 잘 따라 줄 것을 부탁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유다라는 사람과 더불어 실라를 택하여, 사도행전 15:23-29에 나오는 사도들의 편지를 안디옥에 전달하도록 위임했다. 이때 실라는 처음으로 성경에 등장하게 된다.(행15:30-33 읽기)
예루살렘 교회의 파송을 받은 유다와 실라는 안디옥 교회의 형제들에게 편지를 전해 주었고, 안디옥교회의 형제들은 편지로 인해 크게 기뻐하며 위로를 얻게 된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유다와 실라는 단순히 편지만 전한 것이 아니었다. 저들은 ‘선지자’라고 지칭되고 있으며, 얼마 동안 그들과 함께 머물면서 여러 말로 형제들을 권면하고 격려해 주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로 볼 때, 실라는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의 구원 문제와 같은 중요한 사안을 전달하기 위해 교회를 대표하여 파송할만큼,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신임을 받고 있었던 교회의 지도급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상종도 하지 않던 때였으나, 이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이방인 형제들을 만나고 교제한 것으로 보아, 복음의 진리를 제대로 깨닫고 있었던 헬라파 유대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아마 이 기간동안 실라라는 인물에 대해 깊은 신뢰감을 형성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얼마후 유다와 실라는 안디옥 교회 형제들의 환송을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된다.
● 이 일 후, 곧 바울과 바나바는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 요한의 문제로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게 된다. 결국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버렸다. 그런데, 행15:40에 보면 바울은 자신의 동역자로 실라를 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나바와 헤어진 후, 바울은 전도여행을 계획하면서, 자신의 복음사역에 합당한 인물로 예루살렘 교회의 중간지도자 중의 한사람이었던 실라를 선택하였다. 다소 강직하고 까다로운 성품의 바울이 실라를 마음에 맞는 친구요, 동역자로 선택했을 때는, 분명 실라에게서 이방인 선교에 대한 자질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 볼 때, 실라는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는 복음에 대해 바울과 이해를 같이 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알게 된다. 목숨을 걸고 함께 복음을 전하러 다녀야 하는데, 자신들이 전할 복음의 본질과 형식이 서로 다르다면, 이것은 선교동역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미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결과를 안디옥 교회에 전하러 왔을 때, 바울은 실라의 신앙과 능력과 복음에 대한 열정 등을 눈여겨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전도여행을 떠나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실라’가 참으로 그에게 소중한 동역자가 될 수 있음을 깨우쳐 주셨을 것이고, 결국 바울은 실라를 설득하여 안디옥으로 초청하였고, 거기서 이들은 형제들의 격려 가운데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다.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지도자였던 실라가 바울의 전도여행에 동참했다는 것은, 바울의 이방인 선교가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따라서 바나바를 대신한 실라의 동역은 여러 가지 면에서 바울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바울의 동역자로 협력하게 된 실라는 2년 전 바울과 바나바가 교회를 세웠던 도시들을 바울과 함께 순회했다. 그 가운데 하나인 루스드라에서 디모데가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드로아 항에 이르러서는 누가도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드로아에서 바울이 밤중에 환상을 통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외치는 ‘마게도냐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뒤, 일행은 드디어 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 땅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리하여 실라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고린도에서 복음 전파와 교회 개척 사역에 바울과 동역하게 된다.
데살로니가 전후서에는 서명이 있는데, 특히 서두에서는 실라의 이름이 단지 인사 때문에 형식상 나오는 것이 아닌 의미로 등장하고 있다. 바울은 서신을 기록할 때, 보통 1인칭 단수인 ‘내가’로 표현하고 있는데,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특이하게도 다른 서신들과는 달리, 1인칭 복수인 ‘우리’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이것은 구체적으로 바울과 실라를 가리키는 말로 보아야 한다. 디모데의 이름도 편지 서두에 나오고 있긴 하지만, 데살로니가 전서 3:2,6의 “우리가 디모데를 보내노니”라든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등의 표현을 볼 때 데살로니가 전후서의 ‘우리’란 곧 바울과 실라를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실라는 바울의 다른 동역자들인 디모데나 누가와 비교해 볼 때, 그 나이나 능력, 권세나 영향력에 있어서, 다른 성격의 동역자였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1차 전도여행 때, 바울과 바나바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마가는 협조자 역할을 했던 것과 유사한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튼 데살로니가 전후서에 실라가 이토록 영향력 있게 등장하는 까닭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과 실라의 전도를 통해 생겨났기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바울이 자신의 전도여행 동역자로 실라를 택할 때, 1차 전도여행의 경험도 있어서, 아마 신중하게 사람을 선택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해 바울이 왜 실라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또 다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나오게 될 때, 바울은 로마 관리들에게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않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고 항변하자, 관리들이 “저희가 로마 사람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울뿐만 아니라 실라도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어떻게 로마시민권을 획득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바울과 실라, 두 사역자는 로마시민권을 가진 유대인이었다.
바울과 동역하기 위하여 로마 시민권이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다른 자질들을 다 갖추고 있는 상태라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당시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이점이 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되면, 바울은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요구할 수 있는데, 동역자는 시민권이 없어 그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당혹스런 상황에 처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다음으로 빌립보에서 왜 바울과 실라만 붙잡혀 매를 맞고 옥에 갇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히 빌립보에 당도했을 때, 선교팀은 바울, 실라, 디모데, 누가, 적어도 4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바울과 실라만 옥에 갇힌 까닭은, 바울과 실라가 선교팀의 책임자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바울과 실라만이 순수한 유대인으로서, 저들의 복장과 생김새가 쉽게 식별되었기 때문에 그러했으라 짐작된다. 누가는 헬라인으로서 완전한 이방인이었고, 디모데에게는 아무래도 헬라인 아버지의 모습이 유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행16:20절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그렇게 투옥된 것은 점치는 여종의 주인이 돈벌이 출처가 없어지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관원들에게 허위 고발함으로써 발생하는데, 이 과정에서 반 유대인 감정이 한몫 거들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바울과 실라는 순수한 유대인으로서, 교회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그 모든 과정을 잘 아는 사역자들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로마시민권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이런 점에서, 실라는 바울과 ‘동역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러 가지 조건을 골고루 갖춘 환상적인 선교팀이었던 것이다.
● 실라는 신약의 다른 서신에도 등장한다. 벧전5:12에 보면,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라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실루아노, 즉 실라는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쓸 때 대필을 맡은 사람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특히 이 서신에 드러난 아주 탁월한 헬라어 실력은, 실라가 대필했을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게다가 이 서신을 수신자들이 살고 있던 소아시아의 여러 지역들에 가져다주는 일을 맡은 것도 실라였을 것으로 학자들은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실라는 사도바울의 동역자로 수고하다가, 바울이 순교한 다음에는 노사도 베드로를 보좌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실라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가 순교를 했는지, 언제, 어디에서 사역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실라는 베드로의 순교 이후에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다가, 아름다운 사역자로서의 삶을 마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 성경을 중심으로 살펴본 선교동역자 실라의 삶을 통해 우리는 귀한 교훈을 얻게 된다. 실라는 바울과 비교할 때 그리 비중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헌신과 열심은 바울의 선교사역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동역이었다. 이처럼 앞장서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음사역의 뒤편에서 동료 사역자를 묵묵히 돕는 일 또한 중요한 것이다. 더군다나 실라는 바울에 뒤지지 않는 능력과 권세를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철저히 자기 목소리를 죽이고 바울과 동역했고, 선교팀의 화합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역자였다. 실로 동역자들 간의 이러한 겸손과 협동이야말로 복음 전파를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라 하겠다.
교회 안에서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실라와 같이, 복음전파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모습이 사람들 앞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칭찬받고 박수받는 자리가 아니라고 해도, 겸손히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귀한 일꾼들이 모두 되시기 바랍니다.
발은 착고에 채워지고, 몸은 매를 맞아 뼈속까지 저려오는 아픔으로 잠못 이루고 있었던 빌립보 감옥의 바울과 실라를 생각해 보라.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좌절과 분노가 아닌 용기와 기쁨으로써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곧 그들은 감옥을 천국으로 만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저들이 처한 환경은 극적으로 변화되었고, 이에 감명 받은 간수와 그 가족의 구원도 이루어졌다.
어떤 어려움 앞에 지금 서 있는가? 불평과 원망, 분노와 좌절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실라와 같이 찬송과 기도와 감사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성도의 찬송과 기도와 감사가 끊어지지만 않는다면, 무거운 심령은 기쁨으로 바꾸어질 것이며, 이를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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