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사람이었던 도마는 갈릴리 출신 어부로 ‘디두모’라고도 불렸다. ‘도마’는 히브리식 이름이고 ‘디두모’는 헬라식 이름인데, 둘 다 뜻은 ‘쌍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도마는 쌍둥이였던 모양인데, 그가 형제 쌍둥인지 자매 쌍둥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어떤 학자들은 마태와 쌍둥이였을 것이라고 추측하나 불확실하다. 성경에는 그의 부모나 그의 어린시절에 대한 기록도 전혀 없다.
뿐만 아니라 만일 요한복음에 기록된 도마와 관련된 내용이 없었다면, 그는 단지 이름만 소개된 제자였을 것이다. 공관복음(마10:3, 막3:18, 눅6:15)과 사도행전(행1:13)에는 단지 이름만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요한복음에 있는 내용 덕분이다.
● 도마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오늘날까지도 그는 ‘의심 많은 제자 도마’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해서 도마는 이같은 인물로 평가되고 있을까? 그리고 그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정당한 것인가? 먼저 요한복음에 소개된 도마와 관련된 내용들을 살펴보자.
1) 요11장에 보면,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신 예수님은 베다니로 나사로를 도우려 가자고 하신다. 그 당시의 상황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인의 궤계가 임박해 있고 실상 얼마 전에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하였다. 따라서 그곳에 가신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가지 못하게 말렸다. 그런데,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도마는 가 나서서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한다. 도마의 이러한 반응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것이 용기였을까 아니면 운명론자들이 갖는 염세주의적 기질에서 나온 것일까? 만일 예수께서 신변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유대 땅으로 건너가시려 하자 스승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하겠다는 비장한 결의의 표현으로 본다면, 도마는 단순하고 의협심 강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도마도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면, 유대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다소 자포자기의 의미를 지닌,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예수께서 가시자고 하니, 모든 것 다 운명에 맡기고 올라가자.”라는 의미로도 들린다. 신학자들이 이 구절에 대해 여러 각도로 해설을 해 놓았는데,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다.
2) 두 번째로 도마가 등장하는 장면은, 요14장인데, 유월절 전날 밤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큰 위로의 말씀을 하신다. (요14:1-4 읽기) 그러자 도마는 질문을 한다. “주여 어디로 가시는 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도마는 그 길을 알아야 한다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도 예수님께 질문한다. 도마는 이미 앞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가르침을 듣지 못했단 말인가? 그는 귀머거리인가? 그는 주님께서 배신을 당하심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그분의 가르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도마도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세상 왕국을 꿈꾸고 있었다. 예수께서 떠나 가셔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실 때, 그들은 실제로 예수님이 어떤 다른 도시에 가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서 왕으로 기름부으심을 받고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하리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질문한다. “우리는 당신이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 길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요13장에서 베드로도 질문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13:36)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점에서 볼 때 그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었던 것을 잘 믿지 못하는 깨달음이 둔한 자였는가? 아니면, 자신이 이해되지 않을 때는 알 때까지 끝까지 파고드는 사람이었는가?
3) 세 번째 등장은 요한복음 20장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인데, ‘의심많은 제자 도마’로 우리에게 알려진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십자가 사건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나중에 그가 와 서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자기들에게 나타났다는 것을 들었을 때 그는 완고하게 그 사실을 믿으려 들지 않는다. 도마는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한다. 성경은 왜 도마가 그 자리에 없었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도마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했겠는가? 도마는 부활의 증거를 믿기 전에 부활하신 자를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껴야만 했다. 도마는 진지하고 심각했다. 그는 실제로 예수님을 다시 보기를 원하였고, 그분이 죽지 않으셨음을 알기 원했다. 의심과 실망 가운데 있던 도마는 7일동안 제자들과 함께 머물러 있으면서 그들이 말한 것이 실제로 사실이었나를 알기 원했다. 예수께서 다시 그들을 만나 주시는데 일주일이 지체되었다. 그동안 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다른 제자들에게는 기대와 소망이 넘치는 즐거운 일주일이었지만 도마에게는 근심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일주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어야 함을 느꼈으므로 그 무리들과 함께 있었다.
4) 네 번째 등장은 요한복음 20장에서 바로 이어지는 장면이다. 그 후 여드레를 지나서 갑자기 예수님이 제자들의 한 가운데 다시 나타나셨을 때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도마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때 예수님은 도마에게 너의 손을 직접 만져보고 옆구리에 손을 직접 넣어보라고 하신다. 그리고 도마에게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도마는 무릎을 꿇으며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한다. 이에 예수님은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라는 말씀으로 이전에 도마가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은 데 대한 꾸지람을 하신다.
예수님은 도마가 말하는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마 한 사람에게까지 찾아와 주셨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때로는 지체하시며, 때로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개인과 가정, 교회를 방문하신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영혼을 가치 있게 보신다. 이에 도마는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 도마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알려주는 요한은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도마를 잘 알고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그들은 같은 동네에서 자랐고 직업도 같았다. 또한 제자들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동안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에 도마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 요한은 특별히 도마를 지칭하여 말하고 있다.
도마에 대해 변함없이 묘사되고 있는 특징은 우울하고 의심 잘하는 그의 성격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이런 경험은 예사로이 할 수 있다. 그는 결코 성경에서 언급하는 “사악한 불신의 마음”을 지닌 자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휘몰아치는 의심과 싸웠으며 그런 의심들을 과감히 물리쳐서 자신의 의지를 주님 앞에 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으레 도마를 생각할 때면 “의심 많은 도마”라는 상념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기록들이 그러하고 또한 주석가들도 “도마는 우리가 의심하지 않을 것까지도 의심하는 자”라고 예사로 논평을 해 왔기 때문이다.
성경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도마는 성격상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고, 특히 누구와 함께 융화되기 어려웠다. 그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다보니 갈등을 일으키고 다른 이들과 쉽게 융화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분명히 기질상 쾌활하거나 명랑하기보다는 다소 우울한 성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인생을 냉담하게 혹은 절망적으로 보는 염세주의적인 기질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의심과 질문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의심이 많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사고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대충대충 넘어가지 않고 확실하게 하려는 삶의 자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강한 의지와 용기를 지닌 인물이었을 것 같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변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선생님인 예수님에 대해서는 신실한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난에 도전하고 정면으로 역경을 돌파하고 시련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있었던 도마는 분명히 용기 있는 제자였다. 제자들 가운데서도 스승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행동이다. 질문이 없는 조직이나 공동체는 퇴보하거나 실패하기 쉽다. 도마는 어렴풋한 생각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의문을 가지고 그대로 지나갈 수는 없었다. 올바른 지식과 인식을 얻고 전달하는 완전한 방법은 바른 질문에 있다.
도마의 오랜 의심은 드디어 강한 믿음으로 변했다. 그의 의심만큼 신앙도 깊어졌다. 사실 우리는 끊임없이 교회와 신앙, 그리고 자신의 삶에 계속 질문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질문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
● 이후 도마는 주님을 위해 능력 있게 사용되었다. 염세주의적이고 의심에 가득 찬 제자였던 도마가 열정적인 선교사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바벨론과 페르시아(이란)에 교회를 설립했고 나아가 인도에도 교회를 설립하고 복음을 전파했다. 전승에 의하면, 도마는 인도에서 선교하다 순교하였으며, 인도 마라폴에 묻혔다. 그곳에 끼친 그의 영향력은 여러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오늘날 세상에 속속 드러나고 있다.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보고서야 예수님의 부활을 믿은 도마를 향해 예수님은 보고 믿는 믿음도 좋으나 ‘보지 않고 믿는 믿음’ 이 더 복되다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도 도마와 같이 ‘내가 예수님을 한 번 보고, 혹 이적을 한 번 체험해 보면 더 잘 믿을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임을 기억하여, 우리 성도들은 보지 못하는 중에도 믿음으로 복된 믿음을 소유하는 자들이 되자.
뿐만 아니라, 주님 앞에서 분명한 신앙고백을 한 도마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된 삶을 담대하게 살았던 것처럼, 비록 우리 자신 역시 부족하고 어리석은 인생들이지만,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분명히 확증하고 점검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증인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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