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성경인물설교(13) 여호수아(수24:14-31) / 박영철 목사

성북동 비둘기 2023. 6. 2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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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동안 광야 가운데서 이끈 지도자는 하나님의 종은 모세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과정에서의 지도자는 여호수아였다. 참으로 힘든 시기에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대한 이 두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이나 훌륭한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백성들이 마음놓고 살 수 있으며 안심하고 따를 수 있었던 지도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여호수아는 그런 면에서 우리 마음에 여러가지 생각을 갖게 한다. 우리나라는 건국 이후 지금까지 세월이 갈수록 존경받고 백성의 사랑을 받는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다. 그동안 지도자들로 인해 백성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었는지 모른다. 교회는 정치가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지도자를 위해서 책임 있는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이다. 하겠다. 훌륭한 지도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충성되며, 사심없는 깨끗한 양심과 공의로운 마음을 가진, 비전과 사랑의 사람이어야 한다.

 

가나안을 정복한 위대한 지도자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로, 본명은 구원이라는 뜻의 호세아였다. 모세에 의해 여호수아로 불리게 되었는데,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히브리말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뜻이다. 이것이 후에 예수아로 바뀌었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헬라식 이름인 예수로 불리웠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수아와 같은 뜻이다.

 

따라서 가나안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승리와 안식을 가져다 준 여호수아는, 장차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고 당신의 백성들에게 구원과 참된 안식의 축복을 가져다 주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이라는 격랑의 시대 한복판에서 백성을 이끌었던 위대한 지도자 여호수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여호수아를 통해 몇가지 교훈을 얻고자 한다.

 

1) 충성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여호수아는 결코 나면서부터 위대한 지도자, 장수는 아니었다. 그에게도 긴 준비시대가 있었다. 40년간의 광야생활 동안 여호수아는 모세 수하에서 충성되고 성실한 자세로 섬기며 배웠다. 단 한번도 지도자 모세를 배반하거나,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신앙에서 벗어나거나, 게으르지 않았다. 훌륭한 부하라야 훌륭한 지도자, 장수가 될 수 있다. 사람을 섬기는 도리를 배우지 못하면 제대로 된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그는 생생한 산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장차 이스라엘의 영적, 군사적, 정치적 지도자로서 연단 받았다. 하나님께서도 여호수아의 이런 성품을 잘 아시고 모세를 뒤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셨으며, 지도자로서의 탁월한 역량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심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충분히 점령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실해야 한다. 충성스러워야 한다. 성경은 게으름을 악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고까지 명하고 있다. 게을러서는 아무 것도 결실을 거둘 수가 없다. 성실하지 않으면 실력도 쌓기 어렵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부지런하여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도 힘드는데,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어서야 어떻게 은혜를 받고, 성령의 열매들을 맺으며 살 수 있겠는가?

 

일반 회사나 직장에서도 충성스러운 일꾼이 있어야 그 회사가 든든히 성장해 갈 수 있다. 자기것만 챙기는 삯꾼들만 있어서야 어떻게 그 기업이 견실해 질 수 있겠는가? 교회도 마찬가지다. 보아주는 사람 없어도, 화려한 칭찬 없어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많아 질 때, 든든한 교회가 되고, 저력 있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 기업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공동체에서는 충성스러운 일꾼을 찾고 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를 희생하는 충성된 일꾼을 만나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말았다.

 

동산교회 교우 여러분, 어떤 상황에 있든지, 충성되고 성실한 일꾼들이 되어, 교회, 직장은 물론 어디에서나 인정받고 또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값진 삶을 사시기 바란다.

 

2) 청렴하며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가나안 정복 후 각 지파별로 토지분배하는 일은, 외부의 적들과 싸우는 정복 전쟁 못지않게 내부의 갈등이 빚어질 우려가 있는 미묘하고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탁월한 행정적 수완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일을 은혜롭게 마칠 수 있었다. 특히 여호수아는 청렴하고 사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큰 무리 없이 진행시킬 수 있었다.

 

19장에 보면, 이스라엘 12지파 모두의 기업 분배가 끝나자, 마지막으로 여호수아가 자신의 기업을 분배받는 사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맨 마지막에 지도자 여호수아가 기업을 분배받았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 사실은 여호수아가 진정으로 백성들만을 위한 지도자였음을 보여준다. 흔히 많은 지도자들이 어떤 공적을 쌓으면 당장 자신의 사리사욕만 챙기기 바쁜데,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기업을 받고 난 연후에야 자신의 기업을 얻었다. 이는 그가 사심없는 지도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그는 백성들이 기업을 모두 받기 전까지는 자신의 사적인 이익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그의 이러한 위민정신은 그가 요구한 딤낫세라성읍이 에브라임 산지의 완전히 파괴되어 있는 성읍으로 새로 건축해야 할 보잘것없는 성읍이었다는 사실에서 더욱 부각된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여호수아의 관심은 오직 이스라엘의 장래 문제에 관한 것뿐이었다. 실로 지도자로서의 신실성이 드러난다.

 

교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목회자를 비롯, 책임있는 위치의 일꾼들이 청렴하고 헌신적일 때, 그 교회는 쓸데없는데 힘을 낭비하지 않는 능력있는 교회가 된다. 소망을 잃지 않고 한마음으로 전진할 수 있는, 감동이 있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3)결단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전사로서 여호수아가 처음 출전한 것은 아말렉과의 전쟁이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이리하여 여호수아는 저장에서 적과 싸우게 되었다.(17:9-16) 그런데,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쟁의 승패가 여호수아의 전술과 용맹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었다. 승리의 원동력은 산꼭대기에서 들어 올린 모세의 손에 있었다. 즉 승리는 사람의 수나 병기의 우세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 이것이야말로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군사로서 먼저 배워야 할 최대의 과제였다. 오늘도 영적인 전쟁을 계속해야하는 십자가 군병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승리의 비결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란 광야 가데스까지 진출했다. 모세는 가나안땅을 탐지하기 위해 12명의 정탐꾼을 파견했다. 그들은 40일 동안의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 그곳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참으로 기름지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 주민들을 두려워했다. ‘그곳 모든 백성은 키가 장대만하고 또 네피림 후손인 거인족을 보았는데,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습니다.’(13:28-33)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밤새도록 통곡하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말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14:2-4)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회중 앞에 엎드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때 그 땅을 함께 정탐한 여호수아와 갈렙이 분연히 일어나 회중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두로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14:7-9)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돌로 그들을 쳐 죽이려고 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결국 하나님의 눈밖에 나서, 자신들의 말대로 메뚜기처럼 흩어지고 광야에서 죽어갔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그 믿음대로 살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눈으로 적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이것이 바로 신앙이다. 배워서, 경험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합한 자가 되어, 믿음의 눈이 열려야, 골리앗같은 상대도, 물맷돌 하나로 넘어뜨릴 수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로 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신앙적 체험을 바탕으로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결단을 촉구한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는 곧 우상을 섬기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두 마음을 품고 당신을 섬기는 자를 원치 않으신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고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일치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결단력이 없이 우유부단하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주위의 상황을 보아가며 눈치껏 살아간다. 그렇게 하루하루 허송세월만 하다가 결국에 후회하는 삶을 산다. 우리가 제대로 신앙적으로 성장하려면 결단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하지 못한다면, 또 다시 지금과 같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바로 오늘 이 시간이 선택의 순간이고 결단의 순간이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토기장이는 진흙의 반죽 상태가 가장 좋을 때 자신의 원하는 모양대로 토기를 만든다. 진흙이 굳어버린 다음에 모양을 만들려고 할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만사에는 때가 있다(3:1). 바로 현재 이 순간이 마지막 때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단은 철저히 신앙중심이요 하나님 중심이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4)책임있는 영적 가장이었다.

 

한편 우리는 본문에서 백성들에게 신앙적 결단을 촉구하면서, 스스로 결단한 여호수아 자신의 선언에도 주목해야 한다. 즉 그는 이스라엘 백성 전부가 하나님을 떠난다 할지라도 자기와 그 가정만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선언하였다(15). 이러한 그의 선언은 이미 수십년 간 젊은 시절부터 갖고 있던 신앙의 표현이었다(14:9). 이처럼 신앙적 결단은 다수의 군중심리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일대 일의 관계에서 내려져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었으면서도 가장으로서 가족의 신앙을 돌보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아니했음을 증거해 준다. 이처럼 가장은 무엇보다도 가족의 영적 문제를 책임 질 수 있어야 한다. 제사장 엘리가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패가망신한 사례(삼상 2:12-17)는 성도들에게 경종을 올려 주기에 충분하다.

 

성경은 우리에게 가정이 매우 중요한 곳이라고 가르친다. 가정은 사회에 있어서 가장 작은 기본 구성 단위이며 또한 가장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도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러 예루살렘으로 올랐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성한 장소이다. 이 가정이 작은 교회로서의 역할을 잘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부모된 자들 특히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그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자라나도록 지도해야 하는 신성한 책임이 있다. 짝믿음 가정의 경우, 현재 교회에 출석하며 가정 복음화에 대한 열망을 가진 사람이 그 가정의 영적 가장임을 명심하고, 최선을 다해 가정의 영적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힘을 쏟아야 한다.

 

오늘은 여호수아를 통해 몇가지 신앙적 교훈을 살펴보았다. 사랑하는 동산교우 여러분! 우리도 여호수아를 본받아, 성실히 충성되게, 그리고 사심없는 헌신으로 주님의 몸된 제단을 섬겨나가도록 하자. 그리고 신앙적 결단력을 가지고 스스로을 끊임없이 성화시켜 나가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천국의 소망을 이루어 나가도록 최선을 다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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