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설교

성령으로 말미암은 새 생활 / 갈라디아서5:1-26 / 차용철 목사

성북동 비둘기 2023. 5. 6. 10:33
728x90

 

성령으로 말미암은 새 생활

 

갈라디아서5:1-26 / 차용철 목사

 

<序言>

 

1-2장에서는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한 복음을 변명했고, 3-4장에서는 율법과 비교하면서 복음의 기본 교리를 설명했고, 이제 5-6장에서는 이미 다룬 교리적인 내용들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강령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 장은 앞에서 다룬 교리적인 내용들을 갈라디아 교인들의 현실 상황에 적용시킨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자유를 지킬 것에 대한 권면 (1-6), 미혹하는 자에 대한 단절 요구(7-12), 그리스도인의 실천 강령(13-18),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19-26)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자유를 지킬 것에 대한 권면 (1-6)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주셨으니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1). '자유'는 죄와 죽음과 내세의 형벌에서 해방된 자유를 말합니다. '멍에'는 수레를 끄는 소에게 수레를 연결시키기 위해 목에 씌워 놓은 나무 틀을 말합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죄와 죽음과 내세의 형벌에 종속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은 율법에 종속된 삶이었습니다. 허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자는 그것들에 종속된 상태에서 자유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어 구원을 받은 자는 다시 율법에 종속된 상태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아무 유익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2).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는 조건을 믿음 외에 율법을 추가했는데 그 율법의 대표적인 요구를 할례로 제시했습니다. '할례'는 남성의 생식기 표피 끝을 자르는 의식입니다. 그래서 할례를 받는 것은 율법을 구원의 조건으로 주장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해 주신 것을 불충분하게 여기는 것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의 효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의 공로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례를 받아 율법 아래 들어간 자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3). 신명기27:26"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2:10-11에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할례를 받아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는 사람은 율법이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가지게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율법을 모두 온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의롭게 될 수도 없고 구원을 얻을 수도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했습니다 (4).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구원을 얻으려는 자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와 그것을 믿음으로 의롭게 하시려는 방법을 거절한 자로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려는 칭의와 구원의 은혜를 포기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라고 했습니다 (5-6). 율법의 행위로 칭의와 구원을 얻으려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와 구원을 얻으려는 자는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성령에 의해 주어지는 믿음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근거로 칭의와 구원이 주어질 것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질 것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2:8).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칭의와 구원을 얻는 데에는 할례를 받았는지 할례를 받지 않았는지 하는 것들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유대인으로서 이미 할례를 받은 자이든 이방인으로서 할례를 받지 않은 자이든 오직 하나님이 사랑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성령에 의해 가진 믿음만이 효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전7:17-20, 요일3:16, 4:10).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칭의와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교리를 떠나 다른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효과와 공로를 거부하는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과 믿음의 원리를 떠나 율법과 행위의 원리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완전함을 무시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2. 미혹하는 자에 대한 단절 요구 (7-12)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달음질을 잘 하더니 율법주의자들이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7). 갈라디아 교인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진리의 말씀을 잘 순종하여 신앙 생활을 잘했는데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이 미혹하여 신앙의 달음박질을 계속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권면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8). 여기에서 '권면'(πεισμονη)은 긍정적인 권면이 아니라 자신들의 잘못된 주장을 따르도록 설득하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의 설득은 미혹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진다고 했습니다 (9). '누룩'(ζυμη)은 빵을 만들 때 반죽을 부풀게 하는 효모(yeast)를 말합니다. 누룩은 반죽을 할 때 적은 양의 누룩을 넣어도 하루 이틀 두면 반죽 전체에 퍼집니다. 바울은 이 누룩의 성격을 부정적인 비유로 삼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좁은 의미에서 보면 갈라디아 교인 한 사람이 처음에는 율법주의가 주장하는 할례같은 한가지를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용납하면 후에는 율법주의가 주장하는 전체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을 경고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넓게 보면 갈라디아 교인들 중에 적은 수가 율법주의의 교훈에 미혹되었지만 그대로 방치해 두게 되면 갈라디아 교인 전체에 퍼져 갈라디아 교인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것입니다. 바른 신앙을 거지지 못하게 하는 교훈은 그대로 방치하면 순식간에 전체에 퍼집니다. 죄나 죄의 욕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알게 하기 위해 구약시대에는 누룩을 넣은 떡을 먹지 못하게 했고 소제를 드릴 때에도 누룩을 넣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13:3, 2:11).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않을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지만 갈라디아 교인들을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10).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라디아 교인들이 율법주의 교훈을 따르려는 마음을 품지 않게 해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렇지만 갈라디아 교인들을 미혹하여 갈라디아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천명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했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겠느냐고 하면서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1). 바울은 지금까지 자신이 할례받는 것을 묵인했다면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지 않았을 것이지만 할례받는 것을 잘못된 것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할 때 할례받는 것을 묵인했다면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에 걸림돌이 제거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받아 들이는 자들에게 있어서도 율법의 대표행위인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지금까지 칭의와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받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와 율법주의 교훈을 철저히 배격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도 어지럽게 하는 자들을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12). 갈라디아 교인들도 율법주의 교훈으로 미혹하는 율법주의자들을 완전히 거부하고 더 교제를 단절할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5:33"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이서1:10에는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2:6에는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고 했습니다. 잘못된 교리나 인본주의 교훈을 철저히 배격해야 우리와 교회 공동체의 순수한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3. 그리스도인의 실천 강령 (13-18)

 

 

바울은 지금까지 할례로 대표되는 율법주의를 경고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자유에 대해 논했습니다. 본 단락에서는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되고 오히려 성령을 따라 거룩하게 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제까지는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율법주의자에 대해 경고했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자유를 육체의 쾌락의 기회로 여기는 율법폐기론자들에 대해 경고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종 노릇하라고 했습니다 (13-15).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고 했습니다 (13). '자유'1-12절에서 언급한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자유를 말합니다. 율법은 죄를 알게 하고 범죄자를 정죄하고 죄인에 대해 죽음을 선고합니다. 거기에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율법을 그리고 온전하게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그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그 정죄와 선고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평생 율법에 종 노릇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율법과 죄와 죽음에 종속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로 그의 대속을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아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으로 인정받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율법과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와 정죄로부터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육체'에 해당하는 '싸륵스'(σαρξ)는 기본적으로 뼈와 피와 살과 피부 등으로 구성된 신체를 가리키지만 때로 육체가 가지는 연약성이나 육체가 상징하는 죄성(罪性)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는 말입니다 (7:5, 8:5). 여기에서는 죄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과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하게 해 주신 것을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으로 잘못 알아 육체의 죄성을 따라 방종하는 삶을 사는 기회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서로 사랑으로 종 노릇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에 해당하는 '아가페'(αγαπη)는 희생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서로 사랑으로 종 노릇 하라는 것은 서로 자발적인 희생과 헌신으로 사랑하는 것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은혜로 주신 자유는 율법과 죄와 죽음의 종 노릇하던 데서 해방시켜 주신 것인데 그것은 방종과 타락으로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핵심 사상인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가 요구하는 서로 사랑을 실천하는 삶에 얽매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얽매임은 율법에 얽매이는 것처럼 의무와 두려움 때문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평안과 기쁨으로 얽매이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온 율법이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말씀에서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14, 19:18). 모든 율법의 정신과 목적은 사랑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희생으로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22:37-40, 19:3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래서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15). 동물은 먹이 감을 물고 먹습니다. 그처럼 서로 동물적으로 상처를 주고 공격한다면 피차 간에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율법주의 교훈과 관련하여 서로 미워하고 분쟁하면 안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욱 율법의 정신과 목적인 사랑을 행해야 합니다. 로마서13:10"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4:10-12에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했습니다 (16-18).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니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17). '육체의 소욕'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본성인 죄성을 의미합니다. 죄성은 태어날 때부터 유전되어 내려오는 죄의 성품과 욕망입니다.

 

'성령'(聖靈)'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거룩한 영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한 분이지만 3(:자리,위치)가 존재하는데 3위는 각 인격적 특성에 의해 1위는 성부, 2위는 성자, 3위는 성령으로 불립니다. 성부는 하나님으로, 성자는 예수님으로 성령은 성령님으로 불립니다 (3:21-22, 14-16, 28:19, 고후13:13). 어떤 사람들은 성령님을 신적 세력인 능력(Power)이나 힘(Energy)으로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임재의 상징으로 보여 준 불, , 바람, 구름, 기름, 비둘기 등을 성령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인격적 성품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의 활동을 보면 우리에게 말씀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사역을 명령하고 일을 시키고 책망하고 인도하고 간구하시고 교제를 하십니다 (2:7, 딤전4:1, 15:26, 14:26, 16:13, 9:20, 16:6-7, 13:2, 20:28, 16:8, 8:14, 8:26, 고후13:13). 때로 근심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속기도 하고 모욕당하기도 하고 훼방당하기도 하고 소멸당하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63:10, 7:51, 5:3-4, 10:29, 12:31-32, 살전5:19, 2:31-32, 4:30-32).

 

성령의 임재(臨在)의 방식에는 성령의 내주와(內住) 성령의 현재(顯在)가 있습니다. 성령의 내주는 예수를 믿는 자 안에 거주하는 방식을 말하고 성령의 현재는 예수를 믿는 자 밖에 혹은 위에 임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성령의 내주는 주로 바울과 요한의 서신서인 고린도전후서와 갈라디아서와 요한일서에서 나타나고 성령의 현재는 누가의 저서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나타납니다. 성령의 내주를 말할 때는 전치사 엔(εν-in)이 사용되고 (고전3:16, 12:13, 고후1:21, 요일2:27) 성령의 현재를 말할 때는 에피(επι-on,over,above,upon)가 사용됩니다 (4:18, 2:3, 8:16, 10:44, 19:6). 성령의 내주는 성령의 내적 증거라 하기도 하고 성령의 현재는 성령의 외적 경험이라고도 합니다. 성령의 내주는 신자의 신분을 증거하고 성령의 현재는 신자의 사역을 위한 능력을 부여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내주는 성령의 인격적 열매를 맺게 하고 성령의 현재는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게 합니다. 성령의 내주는 보편적이면서도 단회적이면서도 잠재의식적입니다. 성령의 현재는 특정적이면서도 반복적이면서도 경험적입니다. 성령의 내주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때에 일어나며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며 의식하지 못한 채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현재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이후에 신앙적 열정을 가질 때 일어나며 누구나 의식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내주는 모든 믿는 자에게 있습니다 (14:16-17). 고린도전서3: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고, 고린도전서12:13"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했고, 고린도후서1:21"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했고, 요한일서2:20"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라고 했고, 요한일서2:27"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공통점은 기름부음(성령의 내주)가 모든 성도에게 있음과 성도에게 이미 있음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우리에게는 누구를 막론하고 성경께서 내주해 계십니다. 그 성령님은 우리가 천국 갈 때까지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성령이 떠나거나 다시 들어오는 것처럼 표현된 경우가 있는 것은 성령이 본질적으로 떠나거나 다시 들어온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인동형론적 표현으로서 사람이 그렇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인격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범죄하면 마음에서 감동을 시키지 않으니까 떠난 것 같고 회개하면 감동을 시키니까 다시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뿐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에 들어온 성령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28:20, 14:16-17, 8:26-27, 1:29, 살전5:19).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우리가 본질적으로 죄인으로서 멸망받을 존재인 것을 인지하게 해 주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시인하게 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알게 하고, 구원받은 기쁨과 평안이 있게 하고, 기록된 성경 말씀을 깨달아 그 말씀대로 살도록 감동시키고, 기도를 도와 주시고, 분별력을 가져 바른 판단을 하게 해 주시고, 양심에 죄에 대한 가책을 느껴 회개하게 하고, 죄성을 제어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상처를 위로하여 치우해 주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인격적 성장을 가져오도록 돕고, 하나님의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합니다 (5:8, 요일5:1, 고전12:3, 8:15, 고전2:12-14, 5:18-21, 16:13, 8:26, 고전12:1, 3:10, 5:16-18, 22-23).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은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못하도록 역사합니다. 죄의 성품과 성령의 인도는 서로 대치되기 때문에 서로 하려는 일을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했고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6). 여기에서 '육체의 욕심''육체의 소욕'과 같은 뜻으로서 죄성을 말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가책을 주고 감동시키고 인도를 할 때 그 인도를 따르면 죄성의 욕망을 이루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욕망인 죄성을 따라 살지 않으려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령을 인격적으로 받아 들이고 성령이 생각을 지배하도록 하고 성령의 감동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성령은 하나님께 대해 부정적으로 인도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성령은 언제나 하나님께로 인도하며, 하나님 말씀에 맞게 인도하며, 우리의 영적 성장에 유익이 되게 인도하며, 우리에게 자유와 평안과 기쁨을 얻도록 인도하며, 하나님 나라인 교회 공동체의 질서를 따르도록 인도하며, 교회 공동체에 유익과 덕을 세우도록 인도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8).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는 율법과 죄와 사망에서 자유했지만 죄성을 따라 방탕하게 살면 안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므로 죄의 욕망을 다스려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거부하며 죄성을 따라 살면 자유를 얻었을지라도 율법에 종 노릇 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고, 만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죄성을 다스리는 자는 율법에 종 노릇 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자유한 자로서 여전히 삶에서도 율법에 대해 자유한 자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율법주의자들의 교훈을 따르는 것이나 율법폐기론자의 교훈을 따르는 것이나 같은 것을 말하려는 것일 것입니다.

 

베드로전서2:11"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이 중생(重生)한 자는 방종할 것이 아니라 부단히 성화(聖化)를 이루어야 합니다. 영적 성장을 해야 합니다 (2:12, 벧후3:18, 4:13). 그 방법은 죄의 욕망을 제어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8:12-14"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가책과 감동과 인도를 할 때 그를 순종해야 합니다.

 

4.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 (19-26)

 

육체의 일은 15가지입니다.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체의 일은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19). '육체'에 해당하는 '싸륵스'(σαρξ)는 기본적으로 뼈와 피와 살과 피부 등으로 구성된 신체를 가리키지만 때로 육체가 가지는 연약성이나 육체가 상징하는 죄성(罪性)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는 말입니다 (7:5, 8:5). 여기에서는 죄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분명하니'의 기본형 '파네로스'(φανεροs)'외부적으로' '나타난' '드러난' 등의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는 죄성이 외부적으로 드러난 현상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19-21). 예수님이 이런 것들이 우리를 더럽힌다고 했습니다 (7:21-23).

 

첫째는 성()과 관련된 죄악 3가지입니다.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입니다. '음행'(πορνεια)은 간음, 간통, 매음 등을 의미합니다. '더러운 것'(ακαθαρσια)'불결' 불순'의 뜻으로서 도적적 불결함을 의미하나 여기에서는 성적인 불결함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했습니다. '호색'(ασελγεια)'방종' '방탕' '음란' 등의 뜻으로 더러운 성적 탐닉을 말합니다.

 

둘째는 종교와 관련된 관련된 죄악 2가지입니다. 곧 우상 숭배와 주술입니다. '우상 숭배'(ειδωλολατρεια)는 피조물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예배하는 것으로서, 하나님 아닌 다른 대상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고 신봉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술'(φαρμακεια)은 약물을 이용하는 마술이나 마법을 가리키는 바 악의 세력과 결탁하여 속임수로 기만하는 마술로서 우상숭배와 관련된 것입니다.

 

셋째는 대인관계와 관련된 죄악 8가지입니다. 곧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입니다. '원수 맺는 것'(εχθρα)'적의' 악의'의 뜻으로서, 개인적인 증오심이나 적개심을 가지므로 발생되는 갈등을 말합니다. '분쟁'(εριs)'언쟁' '논쟁' '다툼'의 뜻으로서 언쟁이나 논쟁으로 다투기를 일삼는 행위를 말합니다. '시기'(ζηλοs)'열심' '열정' '경쟁'의 뜻이나 여기에서는 부정적인 열심으로서 경쟁 관계에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을 말합니다. '분 냄'(θυμοs)'욕정' '격노' '분노'의 뜻으로서 마음 속에 있는 분함을 터뜨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당 짓는 것'(εριθεια)'음모' '당쟁' '다툼' '쟁투'의 뜻으로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당한 모략이나 음모를 일삼는 행위를 말합니다. '분열함'(διχοστασια)'불화' '알력' '구분' '선동' 등의 뜻으로서 다툼을 넘어 분리를 주도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단'(αιρεσιs)'선택' '당파' 등의 뜻으로서 원래 어떤 견해나 주장 혹은 어떤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왜곡하거나 부인하거나 훼방하거나 대적하는 사람이나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시기와 분쟁은 당 짓는 것과 분열을 낳고 당 짓는 것과 분열은 이단 을 낳습니다. '투기'(φθονοs)'악의' '질투' '투기' 등의 뜻으로서, 악의를 가지고 시기하고 질투하여 남에게 해를 가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고자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넷째는 이방인의 생활과 관련된 죄악 2가지입니다. 곧 술 취함과 방탕함입니다. '술 취함'(μεθη)'술 취함' '중독'의 뜻으로서 습관적인 음주나 지친 음주를 말합니다. '방탕함'(κωμοs)'술 마시며 떠들기' '소동'의 뜻으로서 술에 취해 흥청거리며 떠들어 대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는 육체를 따라 규모 없이 사는 생활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21). 육체의 일은 앞에서 열거한 15가지만이 아니라 그와 같은 것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열거한 것들은 대표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것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21). 바울은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어 구원을 받은 자는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하게 되었다는 것을 가르치면서도 그 자유를 오해하여 죄성을 따라 육욕대로 살아서는 안 되고 성령을 따라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지금도 그 사실을 강조하여 경계한다는 것입니다. 죄성을 따라 사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계했습니다. 계속적으로 죄성을 따라 살면서 돌이키지 않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βασιλειαν θεου; the kingdom of God)는 미래의 종말적 의미도 있지만 현재의 실존적 의미도 있습니다 (17:21, 12:28, 11:12). 현재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미치는 전 영역을 말합니다. 넓게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활동 영역을 말하고, 좁게는 예수를 믿는 개인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지배와 인도를 받는 부분을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 개인이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부분을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믿음으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은 자에게 주시는 계속적인 은혜입니다. 율법의 정죄와 죄의 속박과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하고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통치 하에 사므로 얻는 누리는 복입니다.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에서 '유업으로 받는다'(κληρονομεω, to be heir)는 말은 상속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상속자는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물려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은 구원을 상실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속적인 은혜를 누리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죄의 성품을 따라 살게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 평안, 기쁨, 행복, 소망 등 모든 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다음에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죄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 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8:5-8"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했고, 로마서8:12-14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9가지입니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바울은 19-21절에서 언급한 육체의 일과 대조하여 성령의 열매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육체의 일은 죄성을 따라 사므로 나타나는 행위들이지만 성령의 열매는 성령의 인도를 따르므로 나타나는 인격적인 행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臨在)의 방식은 성령의 내주(內住)와 성령의 현재(顯在)가 있습니다. 성령의 내주는 성령의 내적 증거라 하기도 하고 성령의 현재는 성령의 외적 경험이라 하기도 합니다. 성경에 성령의 내주는 전치사 ''(εν -in)이 사용되었고 (고전3:16, 12:13, 요일2:27) 성령의 현재는 전치사 '에피'(επι -on,over,above)가 사용되었습니다 (2:3, 8:16, 10:44, 19:6). 성령의 내주는 신자의 신분과 관련되어 있고 (고후1:21 요일2:27), 성령의 현재는 신자의 사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4:18, 10:38). 성령의 내주는 성령의 열매와 관련이 있고 (5:22-23) 성령의 현재는 성령의 은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고전12:8-10, 12:6-8). 성령의 열매는 므나 비유와 관련이 있고 (19:12-27) 성령의 은사는 달란트 비유와 관련이 있습니다 (25:14-30). 본 장에서는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따를 때에 죄성을 제어하고, 인격적 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성장을 해야 합니다 (2:12, 벧후3:18, 4:13). 인격적 변화는 성령님을 따른 결과로서 인격이 말씀대로 만들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로서 9가지입니다 (22-23). 19-21절에서 육체의 일을 15가지로 말하면서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라 함으로서 죄성으로 인하여 나타난 행위들이 수없이 많으나 대표적인 행위를 거론했다는 것을 암시했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본 단원에서 성령님을 따르므로 맺혀지는 인격적 열매들도 9가지를 말하지만 대표적인 것만 언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αγαπη)은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희생적이고도 무조건적이고도 절대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αγαπη)은 이성적인 사랑(ερωs)이나 혈통적인 사랑(στοργη)이나 우정적인 사랑(φιλια)과 구분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성품을 가지고 계십니다. 요한일서4:16"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대속 사역으로 구원을 얻게 해 주신 것으로 잘 나타났습니다. 로마서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아는 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요한일서3:16"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의 대강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복음10:27"~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라고 했습니다. 구원을 받은 자가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말씀의 깨달음을 통해 그 사랑을 깊이 경험하게 되고 계속적으로 인도를 받으면 그 인격이 그 사랑을 본받기를 사모하게 되고 그 사랑이 점점 이루어져서 삶에까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3:4-7"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희락'(χαρα)'기쁨'이라는 뜻인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성령의 인도와 섭리를 인지하는 자에게 존재하는 기쁨을 말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자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