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설교(44) 요한(계1:1-20)
●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요한의 존재는 특이하다. 요한은 예수의 공생애 초기부터 제자로 부름받아 3년동안 동행했으며, 오순절 다락방 성령강림 이후 처음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초대교회가 제자리를 잡고 이방세계로 복음이 본격적으로 전파되어 나갈 때까지 오랫동안 활약했던 인물이다. 이 기간 동안에 교회는 유대교의 종교적 박해와 로마제국의 정치적 박해 및 이단의 공격 등 대내외적인 시련을 거치면서 교회의 조직 정비, 정통 교리의 정립 등을 이루게 되는데, 다른 사도들은 일찍 순교하였지만, 요한은 AD100년경까지 살면서, 교회가 세워지는 이 모든 중요한 고비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요한복음, 요한서신, 요한계시록 등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아래 기록된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교회사에서 요한이 차지하는 위치는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에 못지않다.
● 요한이란 이름은 히브리어 이름 ‘요하난’을 헬라어로 소리나는대로 적은 것인데,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이다. 요한은 갈릴리의 어부였으며, 야고보의 동생으로, 그의 부친은 세베대, 모친은 살로메였다. 모친 살로메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자매지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친자매일 경우, 요한은 예수님과 이종사촌간이다. 따라서 잦은 교류는 아니었을지라도 요한은 제자로 부름받기 전 이미 예수님과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요한은 어부로 소개되고 있으나, 또한 집에 종을 부리고 있었고, 예루살렘에도 집이 있었다고 한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셨던 곳도 예루살렘의 요한의 집이었다고 전해진다. 또 대제사장과 친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요한의 아버지 세베대는 수척의 배를 소유하고 있었던 수산업 부호로서, 갈릴리 호수의 민물고기를 잡아 예루살렘과 지방에 공급하는 그 지방의 유지로 통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살로메는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러 다니실 때에 재정적으로 주님을 도왔으며, 요한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하속에게 붙잡혀 끌려다니실 때, 베드로는 문밖에 서있었으나 요한은 대제사장의 집 뜰 안으로 제재를 받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다른 제자들과 달리 그 현장에 있었으며, 주님께서는 요한에게 모친 마리아를 돌보아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살로메가 예수님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나중에 주님의 좌우에 앉혀달라고 청탁을 한 것도 이런 전후사정을 고려할 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 요한의 이름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세례 요한의 제자로서였다. 그는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일컬어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주님을 따르기로 했다. 일단 주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요한은 모든 것을 버리고 곧 주님을 따랐으며, 그 후로 그는 주님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사역하시는 현장에 요한의 거의 빠지지 않는다. 회당장의 딸이 죽음에서 소생했을 때, 변화산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림자처럼 주님을 따라나녔고, 최후의 만찬석상에서는 주의 가슴에 기대어 자리에 앉았을 정도였다. 주님이 체포되었을 때 베드로는 겁이 나서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따라갔으나 요한은 주님의 곁을 떠나지 않고 따랐다. 십자가에 주님이 처형되었을 때에는 요한은 끝까지 지켜 서서, 주님으로부터 어머니 마리아를 돌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주께서 부활하신 날 아침에 그는 베드로와 함께 주님의 무덤으로 달려갔으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 나타나셨을 때 누구보다도 먼저 주님을 알아보고 외친 것도 그였다. 이런 그였기 때문에 후년에 밧모섬에 유배가 있을 때, 그곳에서 주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역사를 마무리 짓는 풍요한 계시를 받고,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처럼 재림주의 모습에 접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 요한은 주님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사랑이 충만했던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결코 나면서부터 사랑이 많았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보아너게, 즉 ‘우뢰(천둥번개)의 아들’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불같은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던 것 같다.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해 마지막 여행 길에 올랐을 때, 도중의 사마리아인들은 주님을 환영하지 않으므로, 요한은 화가 나서,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말했다. 과연 ‘우뢰의 아들’답다. 성급하고 활화산같이 불끈하는 그를 주님께서는 책망하셨다.
또 요한은 가버나움에서,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도로서의 자부심이 강한 한편, 편협하고 배타적이며 외골수의 성격을 지녔던 인물이다. 주님께서는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하고 말씀하셨다. 자기와 행동을 함께 하지 않고 이해를 나누는 자가 아니면 자기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러한 편협한 태도는 성화되지 않은 옛사람의 모습이요 육적인 마음의 특징이다.
한번은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좌의정과 우의정의 벼슬을 요구한 적이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저들의 모친 살로메가 청탁한 것으로 나온다.) 다른 제자들을 앞질러 영화를 누리려고 하는 의도에 다른 제자들이 분개한 것도 당연하다. 이만큼 그들의 마음에는 야심이 가득 차 있었다. 성급하고 편협하고 야심에 차 있는 것은 모두가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초라한 재료를 사용하여 사랑의 사도로 만드신 주님의 솜씨는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 어떻게 요한이 이같이 변하게 되었을까? 물론 그에게는 자비로운 아버지 세베대(여호와의 선물)가 있었으며, 아들의 성공을 바란 나머지 주님에게 철없는 부탁을 하여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정도로 아들을 끔찍이 사랑한 어머니 살로메가 있었다. 그리고 형 야고보와의 사이도 좋았던 것 같다.
그러나 요한을 참으로 사랑의 사도 요한이 되게 한 것은, 주의 십자가와 오순절 성령강림이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새삼스럽게 참된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자신이 눈 앞에서 마지막 피 한방울, 물 한방울까지 쏟으시면서도, '주여, 저들은 알지 못합니다. 알지 못해서 저러는 것이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시던 주님의 모습이, 어찌 그의 심령 속에서 지워질 수 있었겠는가! 십자가를 통해 요한은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사랑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순절성령강림은 그 사랑의 능력을 그에게 제공해 주었다. 십자가와 오순절성령강림을 통해 요한은 고집불통과 성급함과 무정함과 교만을 녹여버리고, 대신 사랑으로 자신을 가득 채운 새 피조물이 된 것이다. 이후 요한 사도는 더욱 담대해지고 통찰력 넘치는 지도력을 갇추게 되었으며, 마침내 교회의 기둥이 되어, 다른 사도들이 하늘나라의 주의 품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는 박해 시대에 90세가 넘도록 살아 남아, 갖은 환난을 이겨 나아갔으며, 그러한 가운데서도 그의 마음에는 늘 사랑이 차고 넘쳤다. 모든 성경 가운데서 가장 사랑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 위대한 사랑의 사도가 된 것이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발하게 된다(눅 6:45).” 오늘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는 생각은 무엇인가? 여러분의 입술로 어떤 말을 많이 하고 있는가? 안된다. 어렵다. 불가능하다. 아이구 힘들어 죽겠네. 가망이 없어. 제까짓게 뭘 하겠어. 이 망할 녀석아.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나봐! 어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버리셨겠습니까? 오늘 이곳에 나오게 하신 것만으로도 하나님은 다시 여러분에게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고집불통, 교만한 요한을 사랑의 사도로 변화시키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기를 오늘도 기다리시고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죽을 맛 나는 세상살이가 아니라, 살맛나는 세상살이로 바꾸어 가시길 원하십니다.
전승에 의하면, 요한은 늙어서까지 오래 활동을 했다고 한다. 거동이 불편해서 간신히 집회에 참석해서도 설교에서는 늘 “자녀들이여, 서로 사랑하시오.”라며 사랑만을 역설했다고 한다. 요한은 사랑의 감수성이 풍부한 사랑의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그의 삶 전체에 주님의 사랑이 관통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뢰의 아들’을 최대의 ‘사랑의 사도’로 만드신 주의 구속의 능력은 참으로 위대하다.
● 요한은 사도행전 초반에 베드로의 활동과 함께 등장한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쳐줄 때 요한도 함께 있었다. 베드로가 빌립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로 성령을 부어주기 위하여 사마리아로 갈 때 그와 함께 동행하였던 사람도 요한이었다. 이후 베드로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함께 요한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들'이라고 불리웠다.
요한은 예루살렘이 로마인들에 의해서 파괴되기 바로 직전에 소아시아에 있는 에베소로 옮겨간 것 같다. 이 전략적인 지역에서 그는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었으며, 그 지방의 다른 교회에 대한 관할권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그가 보낸 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편지에서 잘 나타난다. 그의 형 야고보는 사도들 중에서 최초로 순교자였다. 이와는 달리 요한은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 있었던 사도였다.
에베소에서 지내는 동안 요한은 몇 년동안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함께 있었다고 전해진다. 폴리갑은 요한의 제자였는데, 그는 몇 번이나 에베소에서 가르치던 요한의 말씀을 회상하고 있으며, 요한이 트라얀 황제가 즉위할 때까지 그 곳에서 지냈다고 말한다. 에베소에 있는 동안에 요한은 도미티안 황제 때, 터어키 연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유형지인 밧모섬으로 유배되었다. 이것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예수의 사랑받던 제자이자 복음전파자이며 사도인 요한은 도미티안이 죽자 추방되었던 섬에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오랫 동안 교회를 섬기며 살았다. 그는 부름을 받아 이웃에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갔다. 어떤 교회에서는 주교를 임명하였고 또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교회들을 설립했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성령에 의해 지명받은 어떤 한 사람에게 감독직을 임명했다. 그리하여 그렇게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교회들을 돌아 다니면서 믿음의 형제들을 위로했다.
다른 모든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죽을뻔한 위험을 수없이 겪었으나, 요한은 노년인 A.D. 100년경에 에베소에서 평안하게 죽어 갔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다. 사도요한의 무덤은 모든 다른 사도들의 유해들과 달리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더욱 분명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도들의 유해는 지금까지 그런데로 잘 보존되어 있으나, 사도요한의 유해는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사도요한의 유해가 어떻게 되었다는 전승이나 역사적인 기록의 흔적조차도 없다니! 마치 모세의 무덤이 없듯이!
● 성급하고 과격하며 야심으로 가득찼던 요한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점차 사랑의 사도로 변신해 갔다. 이는 주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으나 아직 과거의 좋지 못한 성격과 습관을 버리지 못한 많은 성도들에게 많은 격려를 해 준다. 실로 이제는 우리도 우레의 아들에서 사랑의 사도로 변모한 사도 요한처럼 온전히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새로운 모습과 성품으로 바뀌어야 하겠다.
요한은 주의 부름을 받자 처지와 환경에 머뭇거리지 않고 즉시 주를 따랐으며, 모든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진 상황에서도 예수의 십자가 형장까지 따라간 용기있는 제자였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데 있어 적당한 타협이 아닌, 무엇보다도 자신의 귀한 것까지도 포기하고 주를 따를 수 있는 결단과 주위의 여건에 굴하지 않고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참으로 중요함을 재차 보여 준다.
예수의 사랑 받는 제자로 불리어진 요한은 그의 서신을 통해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자주 언급함으로써 우리에게 사랑의 실천의 중요성을 교훈하였다. 실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독생자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은 우리 성도들이 그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사랑의 실천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 주를 따르는 우리도 사도 요한과 같이 일생이 다하기까지 사랑을 전하는 사랑의 사도가 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