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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설교(34) 호세아(호1:1-2:1)

성북동 비둘기 2023. 6. 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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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선지자는 남유다에서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4명의 왕이 다스리던 때에, 북이스라엘에서는 제13대 왕 여로보암 2세 시대부터 BC722년 북왕국이 앗수르에 멸망당하기 직전까지 활동했던 인물이다. 즉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왕조의 말기에 70년 가까운 긴 기간을 선지자로 봉사한 것으로 보인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13대 왕 여로보암 2세는 북이스라엘 왕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41년간 통치했는데, 이때 북이스라엘은 최전성기였다. 당시는 북방의 앗수르가 고대 근동의 최강대국으로 서서히 부상하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앗수르의 제일차 공격 목표가 된 팔레스틴 지역의 국가는 아람(수리아)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두 왕국을 계속해서 괴롭혔던 아람이, 앗수르의 공격으로 급격히 쇠약해진 틈을 타서, 여로보암2세는 아람을 공격하여 그 수도인 다메섹을 정복하고 영토를 확장시킴으로써 그 지계가 하맛 어귀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이로써 북왕국은 통일 왕국 다윗과 솔로몬 이후 최대의 정치적,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대외적으로 평온기를 맞은 북이스라엘은 내부적으로는 크게 부패하여 하나님을 떠나 쾌락을 좇아 행하며 패역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나라 안에는 죄악이 들끓고 나라 밖으로는 앗수르가 흥하여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므로, 북이스라엘로서는 잠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와 탐욕에 젖어 살고 있었다.

 

이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분연히 일어난 선지자가 남유다 드고아 출신의 아모스였다. 아모스 선지자는 남유다 출신으로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이다. 그는 사회의 부정의를 규탄하며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했다. 그러나 아모스의 열띤 외침으로도 안일한 북이스라엘 백성을 일깨울 수 없었다. 이리하여 몇 해가 지나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 에브라임의 시골에 있는 호세아를 부르셨다. 호세아는 눈물의 선지자, 사랑의 선지자였다. 하나님께서는 의의 망치로 때려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과 눈물로 녹이려고 시도하신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는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과 포로 생활에 대한 예언을 선포하면서 회개를 촉구하였다. 하지만 북이스라엘은 회개는커녕 더욱 패역을 일삼았으며, 결국 여로보암2세 이후 갑자기 국운이 기울기 시작하는데, 13대 왕 여로보암2세 이후 마지막 제19대 왕까지 제대로 통치를 한 왕이 없었다. 여로보암2세의 아들 스가랴는 즉위한지 여섯 달 만에 살룸에게 피살된다. 살룸은 왕이 된지 한 달 만에 므나헴에 의해 다시 살해된다. 1년 사이에 왕이 세 번 바뀐 것이다. 므나헴은 북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독재자였으며, 앗수르 왕이 침략하자 백성들에게서 은 1천 달란트(34)를 거둬들여 그것으로 적을 매수하여 왕위를 유지하였다. 결국 이것은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고 반란의 빌미가 되었다.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위를 계승했는데, 2년 만에 다시 군대장관 베가가 반역하여 브가히야를 살해하고 왕위를 빼앗는다. 그리고 베가 역시 호세아의 반역에 의해 피살되었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으로, 앗수르에 대항하여 애굽과 연합하였으나 실패하고 결국 북이스라엘 온 백성들과 함께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다.

 

이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던 이방 신의 종류만, 바알, 아세라를 비롯 성경에 무려 16가지나 기록되어 있다.

 

아드람멜렉-전쟁과 사랑의 신/ 아남멜렉-자녀를 희생제물로 요구함/ 아세라-바알의 아내/ 아시마, 아스다롯-풍요와 하늘의 여왕, 성적인 신/ 바알-, 바람, 구름, 땅의 풍요를 관장하는 신/ 바알세붑, 그모스-땅의 신/ 몰록(밀곰), 느보-지혜, 문학, 예술의 신/ 네르갈-지하세계, 사망의 신/ 닙하스, 니스록, 림몬-천둥, 번개, 비의 신/ 숙곳, 브놋-전쟁의 여신...

 

한마디로 깜깜한 시대였다. 어찌 하나님께서 선민으로 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이 이토록 타락할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영적 간음이 나라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호세아는 선지자로 부름받은 것이다.

 

호세아라는 이름은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구약의 여호수아라는 이름과 신약의 예수라는 이름과 뜻이 동일하다. , 호세아 선지자는 그 이름 속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당신의 신실하심과 사랑으로 타락한 북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예언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호세아 선지자의 개인적인 신상에 대해서는 브에리의 아들이며 북왕국 이스라엘 출신이고, 음녀 고멜의 남편으로서, 세 자녀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를 두었다는 기록 외에 성경에 별다른 내용이 없다. 이스라엘의 전승에 의하면 호세아 선지자의 부친 브에리도 선지자였다고 한다.

 

우리는 오늘 읽은 성경 본문에서, 다른 선지자들과는 구별되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를 부르신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선지자로 부르시면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너는 저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이렇게 외쳐라!”였는가? 아니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1:2).”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호세아를 부르시면서, 제일 먼저 명령하신 것이, 음란한 여자, 창기와 같은 여자와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사용된 음란하다라는 말은 단순히 마음이 음탕한 것을 의미하지 않고 이미 행동화된 음란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말이 본문에서는 복수형으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음란한 행위가 연속되었음을 뜻한다. 즉 호세아가 맞이한 고멜이라는 여인은 음란한 행위를 직업으로 삼는 창녀였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만일 여러분에게 이런 명령이 떨어졌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아니, 대부분의 사역자들에게도 이런 응답이 왔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고 거부할 것이다. “아니, 하나님!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까?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세요. 제가 잘못 들었겠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성결해야 할 선지자로 하여금 왜 하필이면 창녀와 결혼하도록 하셨는가? 이러한 요구는 율법에도 어긋나는 것으로 호세아의 선지자 활동에도 큰 장애가 될 일이었다. 때문에 많은 신학자들은 호세아의 결혼이 환상 중에 일어난 하나의 가상이라고 이해하기도 했다.(제롬, 칼빈)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러한 부도덕한 명령을 하실 수 없다는 점에서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말씀에 충실하여, 특히 디블라임의 딸 고멜이라는 구체적인 언급을 볼 때, 고멜이 실제 인물이었으며, 또 호세아가 나중에 집을 나간 부정한 아내 고멜을 몸값을 치르고 데려오는 장면 등을 볼 때,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 역시 실제 사건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호세아의 결혼이 실제적 사건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이러한 불법적인 명령을 하셨을까가 문제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명령의 근원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찾아야 한다. 호세아가 음란한 여인을 취하는 것이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우상을 숭배한 북이스라엘을 사랑하는 일 또한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다. 공의의 하나님이 죄를 용납할 수 없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음란한 북이스라엘을 사랑하실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을 버리실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죄는 징계하시되 그들 자체는 여전히 사랑하사 다시 회복시키기로 하시고 그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해, 그리고 호세아로 하여금 하나님의 그러한 참 사랑을 먼저 깨닫고 그 사랑을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정으로 실감나게 선포하도록 하기 위해 고멜과 결혼하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엇인가? 십자가에는 죄는 징계하시되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녹아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호세아를 통해 계시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그러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호세아의 반응이다. 현숙한 아내에 대한 소망은 모든 남성들이 갖는 큰 소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탕한 여인을 아내로 맞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온순하게 순종하는 호세아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받게 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의 삶 속에서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가? 나의 계획, 나의 욕심, 나의 자존심, 나의 체면 등과 말씀이 부닥칠 때, 말씀이 이기는가? 아니면 나의 인간적인 생각과 욕심이 더 많이 득세하는가? 그런 점에서 자기의 욕망과 이기심에 하나님의 뜻을 억지로 끼워 맞추어서라도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성취하는 현대의 성도들에게 호세아는 좋은 순종의 본을 제시한다.

 

집을 나가 창부가 된 아내를 찾은 남편의 심정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 가자고 그녀의 손을 붙들기 보다는 뺨을 후려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아내를 구타하는 몰염치한 자라고 규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아내를 버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도덕적으로 그리 거리낄 것이 없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결혼의 계약을 파기했고 혼인의 순결을 배반했으며 가정을 파괴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러워진 그녀를 향해 집에 가자고 손을 내미는 호세아의 행동은 선택한 백성이 비록 타락할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내 돌이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보여준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호세아의 유일한 권고는, 다만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6:1).”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10:12).”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데에는 더욱 깊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2:8).”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4:1).”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6).”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11:3).”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이야말로 모든 은혜의 원천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은 이스라엘이 그것을 모르고 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것을 모르고 세상에 매여 제 맘대로 살았기 때문에 저들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4:6).”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지식은 세상 학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을 가리킨다. 아무리 세상 학문의 박사라 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깜깜한 인생을 살아가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모르면, 우주와 인생과 역사와 인간을 올바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6:3).” 호세아의 아내 고멜도 자기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남편의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음행의 악령이 그녀의 마음을 우매하게 하여 남편의 사랑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5:4).” 고멜의 마음은 곧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호세아는 행동으로 그녀에게 사랑을 알려 주려고 했다. 15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을 지불한다는 것은, 가난한 선지자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많은 희생을 감수하여 그것으로 그녀의 몸값을 치루고, 음행한 그녀를 데리고 왔던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전 생애를 통해 알아야 하는 참 진리이다. 그런데 호세아는 구약 시대에 신약의 이 진리를 전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가장 복음적인 선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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