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설교(27) 이사야(사6:1-13)
● ‘구약의 복음서’라는 이사야서를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는 남유다에서 활동한 선지자다. ‘이사야’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이사야의 부친은 아모스(선지자 아닌)였고,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다.(스알야숩-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다/마헬살랄하스바스-탈취는 급히, 약탈은 속히 이루어짐) 이사야는 왕궁에 자주 출입하며 왕 및 제사장들과 긴밀한 접촉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이로보아 그는 귀족 가문의 출신이거나 왕족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유대전승에 따르면 그는 웃시야왕의 사촌이었던 것으로 전한다. 유다의 제 10대 왕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서 소명을 받았으며,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왕을 거쳐, 제 14대 므낫세왕 때까지, 거의 60년이라는 오랜기간 선지자 사역을 한 것으로 전해 내려온다. 유대전승에 의하면 이사야는 므낫세왕의 우상숭배에 반대하다가 톱으로 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이사야가 활동했던 당시의 국내외 정세는 한치 앞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둡고 힘든 때였다. 북쪽에는 앗수르 제국이 자리잡고, 남쪽으로는 애굽이 자리잡고 있어, 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남유다를 비롯 인근의 소국들은 강대국 눈치를 보며 생존하고 있었다. 북이스라엘과 인근 국가들이 앗수르의 강력한 정복 전쟁으로 인해 멸망당할 때, 마침 남유다는 친앗수르 정책으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그리고 히스기야왕 때에는 인근 국가들과 함께, 애굽의 힘을 업고 동맹하여 반앗수르 정책을 펼쳤지만, 동맹국들은 앗수르의 침공을 저지하지 못하고 차례로 멸망하게 된다. 남유다 역시 두 차례에 걸친 앗수르의 침공을 받아 멸망 일보 직전에 이르렀다가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으로 간신히 구원을 받게 된다.
종교적으로 볼 때도 이사야가 활동할 당시의 남유다는 실로 암담한 시기였다. 이사야가 선지자로 부름받을 때 왕이 웃시야였는데, 남유다를 통치했던 웃시야는 즉위 초기에는 비교적 선정을 베풀었으나 후기에는 제사장 직분을 침해하는 등의 악행을 행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 문둥병에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 뒤를 이은 요담은 대체적으로 선정을 베풀었으나 유다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하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요담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아하스는 신당을 건립하는가 하면 자신의 자녀를 이방신 몰렉에게 인신 제물로 바치기까지 하였다. 온 나라가 여호와 신앙을 떠나 패역했으나 다행히 아하스왕의 아들 히스기야는 즉위하자마자 과단성 있게 종교 개혁을 단행하여 유다 전역에 퍼져있는 우상숭배 제거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덕분에 앗수르의 침공으로 남유다도 북이스라엘처럼 멸망 일보직전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심판의 때를 연장시키셨다.
이처럼, 선민 이스라엘 백성 중 북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해 온 백성이 천지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렸고, 이제 남유다마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의 시대에, 이사야선지자는, 하나님께 대한 무한한 경외심과 신뢰를 바탕으로 선지자 사역을 감당하며, 다윗 왕조를 향한 불타는 충성심과 애국심으로 나라와 겨레를 위해 중보기도했던 사명자였다. 그리고 백성의 죄악을 고발할 뿐만 아니라, 회개를 전제로 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예언하며, 택한 백성의 장래에 대한 확고한 소망과 구원을 전파했던 복음적 선지자였다. 이런 점 때문에 이사야선지자는 여러 선지자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손꼽히고 있다.
●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 6장은 이사야가 선지자로 소명받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은 우리가 이사야 선지자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잘 이해하고 넘어가야만 한다.
먼저,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는 어느날 성전에 있다가 환상을 보게 된다. 아직 선지자로 부름받기 전이었는데, 왜 이사야가 성전에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그가 제사장도 아니요 레위인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성전에 있었다는 것은, 특히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심히 패역한 시대였음을 감안할 때, 적어도 이사야는 심각한 영적 부담감을 안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말해 이사야는 그 암울한 시대에 잠들지 않고 깨어 있었던 신앙의 사람이었다.
이사야는 보좌에 앉으신 거룩한 주님의 모습과 주를 찬양하는 스랍들의 모습, 그리고 천지를 울리는 천사들의 찬양 소리 환상 가운데, 두려워 떨며 고백한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그러자 한 스랍이 제단 숯불을 가져와 이사야의 입에 대며 부정한 입술이 깨끗하게 되었다고 선포한다. 그리고는 8절 이하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발적으로 소명에 순종함으로써, 남유다 백성의 완고함을 책망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사야가 본 환상이다.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사 6:1) 이사야는 그 영광이 온누리에 충만한 만군의 주 여호와의 모습을 환상으로 보았다. 이사야는 환상을 통해 천하에 가득한 광대한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는데, 이 경험은 이사야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사고의 틀을 완전히 깨어버렸다.
누구든지 이사야서를 읽게 되면, 그 뛰어난 문학적 표현과 함께, 그 속에 담긴 심오한 사상, 아름답고도 신선한 이미지, 광대무변한 상상력, 생동감 넘치는 문장 전개 등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되는데, 전체 성경은 물론이거니와 히브리 문헌들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이런 내용을 어떻게 이사야가 기록할 수 있게 되었는지 그 해답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사야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환상 중에 뵙게 됨으로써, 그 충격과 감격적인 경험이 그를 사로잡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시야는 넓어지고, 그의 사고는 풍부해졌으며, 그의 인격은 고결해졌다.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 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회오리 바람에 불려가는 초개 같도다”(사40:15-26).
하나님 앞에서는 아시아 대륙이나 아메리카 대륙도 티끌과 같다. 슬라브 민족이나 앵글로색슨 민족도 물통에서 떨어지는 하나의 물방울에 불과하고, 천하를 호령하는 제왕과 권력자들도 메뚜기와 다을 바가 없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사야의 눈에는 이 세계는 결코 위협적인 것이 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기를 남들과 비교해보고 마음이 위축되기도 한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러러보면 인간의 시야가 넓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대범했다. 백성에게 죄가 있으면, 정정당당히 우주의 대법정에, 하늘과 땅을 향해 고발했다.“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사 1:2).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에 감격하여 이렇게 외치기도 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삼림과 그 가운데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사 44:22-23).
이사야는 하나님과 더불어 외치고, 하나님과 더불어 노래했다. 그러므로 그 목소리는 천지를 진동시킬 만큼 우렁차게 들렸다. 특별히, 참된 위대성의 최대의 요소는 성결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늘 정결한 그릇을 찾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행할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양이 아니라 질에 있다는 것이다. 18세기 잠들어 있던 영국 전체를 변화시킨 것은 7명의 깨어있던 청년이었다. 오늘 이 나라에 교회가 없어 이토록 어두운가? 말씀이 부족해서 그토록 수많은 영혼들이 기갈에 허덕이고 있는가? 이사야는 환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단 숯불로 자신을 정화시켜주셨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그는 진정으로 담대할 수 있었다. 하나님 앞에 성결한 존재로 설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이사야와 같은 위대한 사역자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오늘 나는 누구인가? 여러분은 누구인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성결한 존재들이 되어, 생명을 살려내는 이 시대의 사명자들이 다 되어야 할 것이다.
● 이사야선지자에게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 보아야 할 성품은 ‘건전성’이다. 이사야선지자는 그의 흔들리지 않는 불굴의 믿음이나,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비전과 통찰력, 불타는 애국심과 충성심으로도 위대한 선지자이지만,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그의 통전성과 건전성이야말로 그를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만든 중요한 성품이다.
그는 인간의 욕심에 끌려 오산하거나 실패하는 일이 없었으며, 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일이 없었다. 그에게는 에스겔과 같은 영계의 통찰력이 있었으며, 다니엘과 같은 정치적인 식견도 갖추고 있었다. 그는 미래의 희망에 부풀어 오르면서도 현실에 충실했다. 그에게는 아모스와 같은 강인성이 있는 동시에 호세아와 같은 인정미가 있었다. 그는 특출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결코 고립되지 않았다. 한 가지 면에 장점을 갖는 것도 좋지만,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원만함, 그러면서도 손바닥 뒤집듯 쉬 변하지 않는 건전성이 참으로 필요하다.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요 주님의 제자라고 한다면, 무슨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이런 건전성이 있어야 한다.
이사야서의 전반과 후반은, 이사야의 성격의 두 측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포고하고, 심판을 선포하는 장면은 얼마나 단호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힐 만큼 엄격한지 모른다. 하지만, 40장 이하의 예언들은 이와는 판이하여, 마치 봄바람같이 매우 온화하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기가 막히게 전한 선지자가 또 있을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사랑의 선지자 호세아의 말보다도 더욱 정답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42:3).”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43:1-4).”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49:15).” 이사야가 전한 하나님은 어머니처럼 다정하다.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라.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하나님은 남편이나 아버지처럼 자애로우시다.
이사야서의 전반은 추상같이 준열하고, 후반은 봄바람처럼 따스하다. 그래서 제2 이사야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이것을 딴 사람이 쓴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하여 이사야서를 양분해버린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으로 이사야서에는 폭넓은 이사야의 인격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사야는 항상 전진했다. 그의 영혼은 갈수록 더욱 원숙해 갔다. 그리하여 인생 후반에 이르러서는 딴 사람처럼 변했다. 여기서 그의 위대성을 찾아볼 수 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절묘하게 하나가 된 상징물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된 인간을 그냥 두실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사랑의 본체시다. 그래서 우리 대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공의의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자녀가 아무리 귀하고 사랑스럽다고 해서, 버릇없이 키우거나 무절제하게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귀한 화초라고 해서, 아침저녁 계속 물과 비료를 줘 보라! 얼마 가지 않아 그 뿌리는 썩고 말 것이다. 절제와 자유, 공의와 사랑, 강함과 부드러움, 이 모든 것을 갖춘 건전성이 참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건전성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늘의 지혜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의 영에 충만하여 이런 건전성을 얻었다. 그런 점에서 이사야는 참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선지자였다.
육은 언제나 연약하고 노쇠하기 쉽다. 그러나 영은 언제나 고매하고 신선해야 한다. 이사야는 6장에서 하나님의 영광 앞에 엎드려 일단 죽었다가 하늘의 생명으로 새로 탄생했다. 우리도 낡은 것, 땅의 것, 육의 것과 사별하고,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보고, 시대의 조류에 밀리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시온의 대로를 걸어가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이다.